낭만 조종사 에이스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Red Baron

by 캡틴박 Pilot

‘나보다 낮은 고도의 적기는 이미 죽어있는 것과 다름없다’


1차대전의 영웅 중 한명으로 최고의 에이스 전투기 파일럿 독일에 붉은 남작 리히트호펜의 일생과 비행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적기 80대를 격추했다고 합니다. 임무 외에 무단으로 비행했던 비공식 격추까지 포함하면 100대가 넘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2008년에 제작된 <Red Baron>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영국 어떤 조종사의 장례식이 시작되는데요. 갑자기 하늘에서 독일전투기가 날아들어서, 무덤에 꽃다발을 투하하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물론, 이 독일전투기에 타고 있던 것은 붉은남작이였구요. 꽃다발에는 ‘친구이자 적에게’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목숨을 건 공중전에서 싸우는 적이지만, 서로에게 경의를 표할 줄 알았던 것이지요.

전쟁 중에 적기의 총탄에 머리에 부상을 입고, 두통과 현기증으로 시달리고 있을때, 상부에서 명예제대를 권유받지만,

최전방에서 죽어가는 동포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이유로 계속 비행을 하다가 25살의 젊은 나이로 전사하게 됩니다.


때문에 독일군 뿐 아니라, 연합군에게서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가 적군 조종사의 장례식에 꽃을 떨어트린 것처럼, 붉은남작의 장례식에도 연합군에서 꽃을 보냈는데요.

거기에 이렇게 씌여있었습니다. ‘우리의 용감하고, 존경스러운 적수에게’라고 말이죠.


오늘 이야기의 시작은 붉은남작의 출생에서 시작되고, 그의 마지막 비행이야기로 끝맺을 예정입니다.

그의 마지막 비행으로 달려가는 이야기인 셈이죠.


그는 1892년 5월에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각종 운동과 승마, 사냥을 즐긴 붉은 남작은

17살에 황실기병대에 장교로 입대했지만, 그의 훈련이 끝날 때쯤 동부전선에서 적군에 기관총 공격으로 독일 기병대의 대부분의 말이 사망합니다.

졸지에 말이 없는 기병대에 근무하게 된 우리의 붉은남작은 행정업무와 아무런 할일이 없다는데 절망하고, 공군으로 전출을 신청합니다.


세계1차대전은 1914년에 발발했습니다.

세계대전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실어나르던 평화로운 비행기를 살인기계로 만들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조종사들은 ‘하늘의 기사’로 찬양 받았습니다.


붉은남작 리히트호펜이 공군으로 전출된 것은 1915년 5월이었습니다.

처음에 그가 맡은 임무는 후방석 기총담당이었습니다.

비행기 뒷자리에 앉아서 뒤에서 쫒아오는 적기를 향해 기관총을 사격하는 역할이었지요.


그러다가 그의 인생의 스승인 오스왈드 뵐케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뵐케는 독일 공군 최고의 전략가이자 에이스 파일럿이었습니다.

공중전에 관한 책도 썼는데요. 그가 붉은남작에게 가르친 엑기스가 녹아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에 내용을 말씀드릴께요

1. 태양을 등지고 비행하라! 적이 그대 비행기를 보지 못하리라

2. 공격을 시작하면 끝을 내라

3. 아주 근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하라

4. 항상 적기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

5. 항상 적기 뒤쪽에 위치하도록 기동하라

6. 적기가 당신을 향해 급강하 한다면, 적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라

7. 너무 적진 깊숙히 들어가지 말고, 항상 퇴로를 준비하라

8. 4대에서 6대의 팀으로 움직여라


5개월 뒤에 그는 조종교육을 시작합니다. 첫비행 훈련에서 붉은남작은 평균이하의 조종사로 평가됩니다.

혹시 지금 훈련중인 학생조종사 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비행이 어렵고 잘 늘지 않아도 희망을 가지세요. 세계최고의 에이스도 훈련 때는 잘 못했으니까요.

심지어 리히트호펜은 첫 솔로비행에서 추락합니다. 지금 같으면 당장 조종훈련 중지되고, 다른 병과로 전출되었겠지만, 당시는 항공기가 개발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서, 비행기가 많은 결함이 있었고,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조종사 수급이 부족해서, 훈련을 계속하게 됩니다.


훈련 중 추락사고에도 불구하고, 뵐케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아 에이스부대 야스타2편대로 배속됩니다.

이제부터 붉은남작 인생에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1917년 4월 JG1 비행대대 지휘관이 됩니다. 이 때부터 자신의 비행대대원들 비행기를 화려한 원색으로(눈에 너무 잘 띄는) 도장해서 그의 비행대대가 날아다니는 서커스단이라고 불렸습니다.

그의 비행대대가 종종 열차 화물칸에 비행기를 싣고, 위급한 지역에 급파되었기 때문에, 열차에 줄줄히 늘어선 모습이 정말 서커스단 순회공연처럼 보였을 것 같기도 하네요.

이 때는 그의 스승 뵐케는 사망하였고, 붉은남작이 국민영웅으로 칭송 받았고, 자서전을 출판해서, 이 책은 이 이후에 전세계 전투기 조종사들의 필독서가 됩니다.


1917년 7월에 공중전을 벌이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추락합니다. 두개골이 골절되고, 비행중 시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할 정도의 중상이었죠.

치료 후 3주 후에 비행에 복귀하였지만, 후유증으로 두통과 현기증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굉장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이 때 쓴 자서전에 전쟁에 냉혹함과 고통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그는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과의 공중전을 소망했고, 프랑스 전투기 조종사들을 싫어했는데요.

자서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 프랑스 조종사들의 공격은 마치 병에 든 레모네이드 같다. 공격에 끈질김이 부족하다

반면에 영국 조종사들은 게르만 혈통이라서 그런지, 비행을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1918년 4월 21일 아침 그의 포커삼엽기를 포함한 JG1 편대를 이끌고 붉은남작이 그의 인생 마지막 이륙을 합니다.

그는 추락으로 인한 부상의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스승의 가르침을 깜빡 잊은 것인지 모를 이유로

적기를 쫒아 적진 깊숙히 그것도, 낮은 고도로 비행을 했습니다.

적의 총격으로 추락했습니다.

몇 명의 호주 지상군이 붉은남작의 비행기가 추락한 지점으로 달려와 그의 마지막을 지켜 보았다고 합니다.


붉은남작 만프레트 리히토펜은 25살의 나이로 그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2차대전에서 붉은남작보다 많은 격추대수를 기록한 조종사들이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부상 전에 붉은남작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1대1로 공중전을 한다면 그를 이길 조종사는 이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남의 생명을 빼앗는 비행을 했지만, 적군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호적수 조종사들의 죽음을 애도할 줄 알았던 1차대전에 에이스 붉은남작의 인생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차 대전 전투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