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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박 Pilot Jul 03. 2020

오늘이 제 인생에 마지막 비행이었습니다

어느 기장님에 마지막 기장방송

승객여러분! 저는 기장입니다.
방금 우리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저는 20대에 비행을 시작해서, 60이 넘도록 비행을 해 왔습니다.
30년이 조금 넘게 비행을 했고, 방금 마지막 비행을 끝마쳤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 비행해 주신 모든 승객님들,승무원님들께 감사합니다.
30년을 더 높이, 더 빨리, 더 안전하게 날아오르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모두 이룬 지금은 이제 여러분께 작별을 말씀 드려야 할 때입니다.
오늘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게 가시기를 기원하면서
지금 공항유도로에서 하기하실 탑승구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다시 한번, 오늘 저의 마지막 임무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njoy your flight!


오늘 제가 다니는 항공사에 "레풀레스"기장님께서 정년퇴임 비행을 하셨습니다.

회사에서는 비행기에서 나오시는 기장님께 준비한 꽃다발을 전해드리고, 오늘 마지막 임무비행을 함께한 승무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셨습니다.

아래 청녹색 링크를 클릭하셔서 제 홈피를 방문해 주세요 ^.^

캡틴박 홈페이지 오픈 :  https://captainpark.co.kr

비행을 마치시고, "레풀레스"기장님은 제가 일하는 항공사에 모든 조종사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Dear Friends! It is the time to tell you "Good bye!"
I wish the best all of you! Fly higher, faster, and more safe flight!

( 이제 작별을 고할 때입니다. 모두 잘 지내세요. 더 높이, 더 빨리, 더 안전하게 비행하세요! ) 

문자를 보고 왠지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비행, 마지막 임무라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니까요.


모든 에어라인 조종사들이 꿈 꾸는 궁극의 목표는 '안전하게 마지막 비행을 마치는 것'입니다.

그 한가지 목표를 위해, 건강을 관리하고, 비행준비를 하고, 규정이나 항공기 메뉴얼을 공부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 역시 지금도 '마지막 비행'을 향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종사는 알람시계로 하루를 시작해서, 알람시간을 맞추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조종사들은 "하루살이 인생"입니다. 

알람소리에 일어나면, 공항에 갑니다.

공항에서 사무실 출근 전에 낯선 나라에서 24시간에서 48시간 동안 '음식'을 사먹기 위한 약간에 돈을 환전합니다.

그리고, 브리핑실에서 비행계획서와 항공기 정비상태, 승무원 명단, 공항 기상예보 등의 서류들을 검토합니다.

그다음, 기장님 주관으로 승무원들에게 비행시간, 예상되는 난기류, 비상절차 리뷰 등을 말하면서 미리 준비한 농담을 말해보기도 합니다.


비행을 마치면, "우와~! 오늘도 안전한 비행을 해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으로 다음날 비행시간에 늦지 않도록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듭니다.

-> 또다시 알람 소리에 잠이 깹니다. 

알람소리에 일어나면, 공항에 갑니다.


이 생활을 무한반복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것에 무뎌지게 됩니다.

기장님들은 그렇게 시간을 도둑 맞았습니다.


제가 부기장이던 시절에 이야기를 드리자면,

예전에 정년을 맞이하신 어떤 기장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기장님은 왜 조종사가 되셨어요?"

그 때, 기장님께서 몇 초간 생각을 하시다가 대답해 주셨습니다.

하늘을 남들보다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었거든


대부분에 조종사들이 이런 비슷한 이유로 에어라인에 입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늘이 좋아서, 비행이 좋아서 조종사를 꿈꾸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나의 마지막 비행을 마친 후에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해 보아야겠다'구요.

그러고 보니, 비행이 끝나면 뭘할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네요.

마치 영원히 비행생활이 계속될 것처럼 착각하고 하루하루를 보내온 것 같습니다.

"레풀레스"기장님의 단체문자를 보니, 왠지 저에게도 마지막 비행이 그리 멀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시간을 도둑 맞는 직업이니까요.


마지막 비행 후에 가장 그리워질 것들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름이 많이 낀 날, 이륙해서 구름을 뚫고 눈부신 햇빛을 마주하는 순간.
너무나도 파란 하늘을 보면서 얼굴은 찡그려 지는데,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번지는 미소.
난기류 심하고, 바람이 강할 때, 사뿐히 착륙하면 조종석에 들리는 승객분들의 박수소리.
화장실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아이에게 '반짝거리는 조종사 견장'을 선물했을 때, 행복해 하는 아이의 표정.

몇 년 전에 인천 공항터미널에서 비행기로 걸어가고 있을 때, 외국 노신사분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길을 물어보시려나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정년퇴임하신 전직기장님이셨지요.

조종사만 보면 반가워서 말을 거시는 거겠지죠.

유럽에서 작년에 은퇴하시고, 가족분과 함께 이제 승객으로 삶을 즐기시는 중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은퇴 후에는 이 노신사분처럼 여행도 부지런히 다녀야 겠습니다.


"레풀레스"기장님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타셨던 승객분들, 그리고 우리 항공사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조종사와 함께 비행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까지 힘든 날씨, 지연 등 여러 어려움들 속에서도 모든 비행을 안전하게 이루어내신 "레풀레스"기장님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한 시간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면서 오늘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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