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에서 발견된 사진 뭉텅이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사진 한 뭉텅이를 발견했다. 임신한 아이의 입체 초음파 사진이 나왔을 때였나? 아이가 누굴 닮았나 궁금해져 시댁에서 받아왔던 신랑의 어릴 적 사진이었다.
시댁에서 뭉텅이 채로 건네받은 사진을 넘겨보는데 아까 봤던 거 같은 사진이 또 나오고, 유치원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갓난아기 때 사진이 나오고 하는 통에 정신없이 사진을 넘겨봤던 기억이 난다. 다 비슷비슷한 사진 같아서 중간부터는 엄청 빠른 속도로 사진을 넘겨보기 시작했는데 시부모님은 내가 너무 대충 보는 것 같아 서운하셨는지 “그렇게 해서 뭘 알아볼 수나 있겠냐”며 핀잔을 주셨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 종이봉투에 담아 사진들을 가져왔는데 그대로 방 한편에 처박아 뒀던 거다. 요즘처럼 사진을 인화하지 않는 시대에 살면 집에 안 쓰는 빈 앨범이 있을 리 만무하니까. 뭔가 해결해야 할 숙제를, 엄밀히 말하면 짐을 받아온 느낌이었다.
반면 내 사진은 어릴 적 유행했을 패턴의 하드커버 앨범 3개에 잘 담겨있다. 결혼할 때 “이제 네가 가져가라”며 드디어 묵은 짐을 덜어낸다는 듯 나에게 주셨던 기억이 난다. 앨범을 열어보면 사진들이 시간 순서대로 차곡차곡 꽂혀 있다. 몇 개월 때 사진인지, 이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넉넉하지도 않은 메모란을 이용해 꼼꼼히도 적어놓으셨더라. 앨범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을 선물로 받은 느낌이었다.
이때 느꼈다. 사진은 인화하는 것만큼이나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그래서 나는 그 다음 날 사진 앨범을 구매하기로 했다. 처음엔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사진 옆에 메모까지 할 수 있는 걸 구매하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주신 앨범의 최대 단점은 사진의 개수대비 앨범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공간을 꽤 많이 차지한다는 거. 잘 보관해 오랫동안 기억할 추억으로 가져가자고 마련하는 앨범인데 살면서 부피가 큰 짐으로 남기는 건 취지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꼭 필요한 메모는 인화된 사진 뒤에 남기기로 하고 가볍고 얇지만 많은 사진을 보관할 수 있는 앨범 5개를 구매했다. 앨범 1개에 무려 264장이 들어간다. 앨범이 도착했고 신랑에게 뭉텅이 속 사진을 정리하라고 시켰다. 한참을 방에서 나오지 않길래 문을 살짝 열어보니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비슷한 사진끼리 모아 시간 순서대로 배치해두고 하나씩 음미(?)하며 앨범에 꽂고 있는 게 아닌가. 사진 정리를 하며 옛날 생각이 나 몽글몽글한 감정이 들었나보다.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아 맞다. 그래서 아이는 누구를 닮았냐고? 내 사진과 신랑 사진을 양 옆에 두고 아이 얼굴을 보니 아빠 빵떡이다.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더니 진짜네. 양가 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잘 정리해 둔 앨범을 가지고 나와 보여드리며 딸이 신랑을 닮았음을 모두에게 인정(?) 받았다. 사진을 보기 쉽게 잘 정리해 두니 이렇게 필요할 때 꺼내 보기도 수월해졌다.
우리 부부는 이번 경험을 통해 아이의 사진도 인화해 앨범으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쉽게 찍다 보니 비슷한 사진이 너무 많고 사진첩에만 담아두면 생각보다 예전 사진을 잘 돌아보지 않더라. 수많은 사진 중에 추억하고 싶은 사진을 고르고 골라 인화하고 앨범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나중에 딸아이가 컸을 때 함께 사진을 돌아보는 상상을 하니 입에 웃음꽃이 절로 핀다.
같은 물건도 잘 보관하면 짐이었던 물건도 설레는 물건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