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5일 부산 해운대 백사장의 사진을 보았다. 여름 축제와 젊은 연인들의 웃음과 파도소리, 음악이 가득 울려 퍼지는 바닷가를 맨발로 걸어도 좋겠다. 하지만 인파가 너무나 많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그래도 친구가 부산에 가자고 하면 기차 타고 나누는 담소가 좋아서, 창밖에 스치는 싱그러운 여름이 좋아서,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이 좋아서 냉큼 배낭을 꾸릴 것이다.
나는 여행지에서 일찍 일어나 해변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바닷가를 여행하고 있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바닷가를 걷고 해가 떠 오를 때까지 맨발로 바닷가에서 모래를 밟으며 걸어보자. 고요함 속에 달라지는 빛의 변화를 느끼며 발을 적시는 새 날의 바닷물이 나의 발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서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낡은 생각과 감정을 새롭게 바꿔줄 것만 같다.
우주에는 리듬이 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도 대부분의 생명체가 그러하듯 그 리듬에 따를 때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재작년 여름 부산 해운대에 갔었다. 해운대 바닷가의 7월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마치 시간이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하고도 생생하다. 이 시간에 깨어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우주의 고요와 접속한다.
새벽 4시 반, 하늘은 아직 흐려진 먹빛을 닮은 어둠의 잔재를 머금고 있다. 바다는 검푸른 물결을 잔잔히 일렁이며, 마치 밤의 마지막 속삭임을 품고 있는 듯하다. 언제든 포효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낮게 으르렁 거리는 야생동물처럼 말이다. 백사장은 텅 비어 있고, 모래는 밤새 식은 채로 발바닥에 서늘하게 감긴다. 파도는 낮보다 한결 부드럽게 밀려오고, 그 위로 갈매기 두 마리가 날개를 펴고 천천히 수평선을 가른다.
아침 시간 때에 걷기를 사랑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미국의 사상가이자 자연주의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도 아침 걷기를 즐겼다. 그는 매일 아침 월든 호숫가를 걸으며 사색했다. 그는 “아침은 인간의 정신이 가장 순수한 시간”이라 말하며, 자연 속에서 걷는 행위를 하나의 철학적 실천으로 여겼다. 그의 대표작 『월든』에는 월든 숲과 호수 주변을 걷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걷는 동안 삶의 본질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는 동안 떠올랐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렇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다. 그는 이탈리아 해안 도시 라팔로에 머물며 매일 아침 바닷가를 걸었다. 그는 걷기를 통해 정신의 긴장을 풀고, 사유의 깊이를 더했다. 니체에게 해변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철학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니체가 걸었던 이탈리아의 해안 도시 라팔로(Rapallo)는, 철학적 사유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용히 교차하는 곳이다. 그는 1880년대 중반, 건강이 악화된 이후 이탈리아 해안 도시들을 전전하며 요양하였는데 라팔로는 그가 가장 오랫동안 머문 도시이다. 이곳에서 아침마다 바닷가를 산책하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즐거운 학문‘을 구상을 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니체의 아침 산책을 상상해 본다.
7월의 라팔로, 새벽 5시 반. 하늘은 아직 푸른 안개를 머금고 있고, 바다는 잔잔한 숨결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천천히 고개를 들면, 바닷물은 금빛으로 물들고, 하늘은 분홍빛과 주황빛이 뒤섞인 수채화처럼 번져간다.
해변은 조용하다. 이른 산책자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모래 위에 남고, 갈매기들이 낮은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니체는 이 고요한 시간에 걷기를 즐겼다. 그는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언어가 생겨나며, 철학이 육화 된다고 믿었다. 그 매일 아침 해변을 따라 걷고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벤치에 앉아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여 글을 썼다.
그때 바람은 어떠하였을까?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바닷바람은 시원하고 짭짤하다. 그 바람은 니체의 옷깃을 스치며, 그의 사유를 자극한다. 니체는 그곳을 걷다가 멈추다가 다시 걸었겠지. 니체에게 라팔로의 해변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사유의 무대였고, 위대한 철학자의 존재가 작은 새처럼 전율하며 찾아낸 철학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는 어떠한가?
울프는 영국 남부의 해안 마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아침마다 바닷가를 산책하며 글의 구조를 구상하고, 인물의 감정을 정리했다. 그녀의 작품에는 바다의 리듬과 파도의 감각이 자주 등장한다. 울프에게 바다는 내면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자, 창작의 동반자였다.
“바다는 어둠 속에서 은빛으로 반짝이고, 파도는 조용히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해는 수평선 위로 천천히 떠오르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파도 The Waves (1931)』중에서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이 작품은 여섯 인물의 내면의 독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처럼 등장인물의 심리변화에 따라 감정의 미세한 변화와 흐름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보인다.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중 문학사에 길이 남는 작품을 쓴 대표적인 작가는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이다. 카뮈는 1913년 11월 7일 지중해 연안인 프랑스령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지역은 현재 알제리의 드레안(Dre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지중해 연안에 가까운 도시이다. 그는 이런 말로 유명하다.
“태양, 바다, 바람이 없다면 나는 글을 쓸 수 없다.”
그는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실존적 고독을 이겨냈으며 바닷가를 걷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여겼다. 그의 글에는 해변의 빛과 그림자가 자주 등장한다. 『이방인』의 첫 문장을 보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면 어쩌면 어제.”(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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