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들으면 무조건 추억에 젖는 노래
물고기란 뜻의 사카나 거기에 액션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사카낙션. 물고기 처럼 어떤 변화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 나아가겠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밴드인데,
잊을 수 없어란 곡을 들으면 저는 살지도 않아봤던 80년대의 향수가 마구 솟구쳐 오르기도 하는데요.
근데 여러분 이 밴드 요즘 여기저기 플레이리스트랑 유튜브에 뜨며, 최근에 뜨는 밴드인것 같지만 사카낙션은 사실 활동한지 30여 년이 되어가는 장수밴드라는 점 알고 계신가요?이미 15년 전인 2009년에 한국 쌈지 페스티벌에 출연해 벅스뮤직이랑 인터뷰를 남긴적도 있는 어르신 밴드입니다.
1980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야마구치는 어릴적 부모님이 운영하던 찻집에서 틀어주던 포크송을 듣고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어렸을 때 그는 아버지와 중고서점에 가서 중고책을 박스채로 전부 사와서 읽고는 했는데, 아버지에게 스파르타식으로 받은 이 책읽기 습관은 엄청난 재산으로 남게됩니다. 수많은 천재적인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생각해봤지만 책을 내는건 너무 주제넘은 짓처럼 느꼈고, 오히려 음악의 길을 선택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해야 만들어질 수 있는 음악이란 개념에 매력을 느끼며 음악을 만들어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된것 인데요.
야마구치는 17살에 일본 유명 회사인 빅터 엔터테인먼트의 인재 육성부에까지 들어갑니다. 당시 CD 황금기였는데, 가능성이 보이는 신인을 발굴해 육성하자는 빅터엔터의 취지였는데, 여기에 선발되며 야마구치 입장에선 한껏 어깨에 뽕이 들어갔지만, 메이저 데뷔까지는 여기서부터 10년이란 긴 기간이 기다리고 있었죠.
1998년. 야마구치는 삿포로 제일 고등학교의 동급생이었던 이와데라 등을 모아 밴드 더치맨을 결성합니다.
더치맨은 지역의 인디밴드 치고는 잘 나가는 편이었는데, 막상 위기는 음악성에서 발생합니다. 아직 고등학생이었지만 진지함은 남달랐는지 서로 추구하는 음악장르에 벽이 생기며, 이 차이로 야마구치 이치로를 제외한 3명이 탈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치맨은 오아시스같은 90년대 영국록을 추구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일본에서 아지캉이나 Bump of Chicken을 필두로 한 기타록이라는 장르가 유행을 하며 밴드붐이 생겨났었어요. 일본 곳곳에서 밴드들이 생겨났고, 밴드 포화상태 속에서 더치맨은 특색 없이 묻혀버리며 결국 해산을 하게 된 것인데요.
홀로 남은 야마구치는 멘탈이 흔들렸을법도 한데 꿋꿋이 '혼자 더치맨(ひとりダッチマン)'라고 밴드 이름까지 바꾸며 음악을 끝까지 놓지 않았는데,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빛을 보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 되며, 위기가 찾아옵니다.
“내가 지향하던 음악이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구나, 이제 음악은 취미로 해야겠다”며 23살 때는
음악을 그만두고 카메라맨이 되기 위해 어시스턴트 면접까지 갔는데요. 면접 대기실,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직원과 잠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야마구치는 바닥까지 왔음을 직감합니다.
뮤지션으로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살아온 사회는 압도적으로 다르는 걸 깨달으며 다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인디시절 야마구치는 종종 클럽에서 DJ일을 하기도 했거든요.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듣고 있던 어느날, 갑자기 머리에 띵 하고 뭔가 큰 울림을 느낍니다.
그동안 밴드로 라이브 하우스에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쓰고 애써도 힘들었는데, 클럽의 DJ들은 남의 곡을 가지고도 전부 춤추게 만드는구나…
이 차이는 뭐지? 생각하다가 내가 만든 음악에도 이런 클럽적인 느낌을 도입해볼까?란 생각까지 이어지게 되는데요.그 사이 집나갔던 멤버 이와데라(기타)는 다시 복귀했고, 드러머에 에지마 케이이치를, 같은 알바를 하던 오카자키를 키보디스트로, 쿠사카리를 베이스로 영입하며, 그렇게 사카낙션은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5월 사카낙션은 'GO TO THE FUTURE' 을 발매하며 메이저 데뷔를 하게됩니다.
사카낙션의 음악적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가사에서 나오는데, 어렸을 때 부터 야마구치는 아버지에게 책읽는 습관을 스파르타식으로 주입받았어요. 그래서 가사를 쓸 때는 하루에 책 한권을 다 읽고 그 감동을 한정된 노래가사로 표현해내려고 합니다.
이런 가사에 일렉트로니카 느낌을 더했는데, 야마구치가 무명시절에 DJ를 하며 생활도 했었잖아요. 이 때 디제잉을 하며 습득하게 된 비트와 리듬이 노래에서 느껴지기도 하죠.
2013년 3월 사카낙션은 밴드 이름을 타이틀로 단 ‘Sakanaction’이란 앨범을 냅니다. 이 앨범은 사카낙션 그 자체를 담았는데, 5명의 멤버들이 집에 모여서 중고등학생 시절 방과후에 그랬던 것 처럼 어떤 음악을 만들지 머리를 맞댔어요. 우리들의 음악은 무엇일까? 란 테마로 파고들었는데, 방에 모여서 서로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만드는지를 직면하면서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노래 제목도 ‘뮤직’이라고 붙였는데,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카낙션’이란 앨범명을 붙였고, 여기에 다섯 멤버의 모든것을 담아낸 노래 ‘뮤직’을 만든 것입니다.
이게 바로 대중들한테 먹히며 사카낙션 사상 첫 오리콘 1위를 기록하게 되었고, 연말엔 NHK홍백가합전에 출연하게 되는데요.
사카낙션 음악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바로 ‘향수’인데요. 음악과 뮤직비디오 곳곳에 8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듣기만 해도 그 시절 추억에 흠뻑 젖어듭니다.
영화 바쿠만의 OST로도 알려진 신보물섬 뮤비는 일본의 코미디 프로그램 드리프 대폭소의 오프닝을 따왔는데, 이 프로 80년대에 시청률 40%를 찍었던, 80년대의 희극신 그 자체를 대표하는 프로입니다.
보기만해도 연출에 힘을 쓴게 느껴지는데, 뮤비 속 댄스장면은 상당히 중독성이 있어서 일본에서 수많은 패러디 영상들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데뷔 이후 이름을 알려가던, sakanaction에게 상업적 성공을 안겨준 곡인데, 이 80년대풍 컨셉은 ‘아마, 바람’이란 곡에서도 이어지고 이렇게 이어져온 80년대적 모티브는 ‘잊을 수 없어’에서도 이어집니다. 뮤비부터가 브라운관 TV를 본뜬 색감과 화질에 4:3 화면으로 보기만해도 80년대로 회귀하는 느낌이 드는데,
80년대 일본 경제 호황기 때 그렇게 일본사람들이 해외로 많이 놀러가며 당시 뮤비나 영상들을 보면 리조트, 수영장, 야자수 등이 마치 시대의 상징물처럼 나오거든요. 잊을 수 없어에서도 선글라스를 낀 야마구치가 춤을 추고, 배경엔 야자수가 흔들흔들 거립니다.
뮤비뿐만 아니라 음악성도 80년대의 AOR를 바탕으로 하는데, 야마구치는 마츠토야 유미와 만남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하거든요. 마츠토야 유미는 우리나라에선 mc스나이퍼가 리메이크한 봄이여 오라(春よ、来い)의 원곡자인데, 일본 국민 가수이자 뉴뮤직의 선구자 중 한 명입니다.
뉴뮤직의 선구자에게 영감을 받은만큼, 잊을 수 없어를 들으면, 80년대 어딘가 풍요롭고 여유로운 그 시절이 막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는것 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데뷔 후 차근차근 올라오며 사카낙션의 세계관을 넓혔지만, 그 이면엔 위기도 끊임없이 존재했습니다.
2022년 6월 2일. 사카낙션의 기타 이와데라가 2012년부터 10년 간 불륜을 해왔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며 파장이 일었는데, 공표하진 않았만 이와데라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상태였죠.
불륜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는 사이라고 하는데, 둘다 기혼자로 쌍방 불륜이었습니다, 사카낙션이 메이저 데뷔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연락을 하는 정도였지만, 2012년 라이브에서 조우한뒤로 남녀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고 하죠.
2014년 관계를 한번 해소했지만, 2019년 다시 재회했고 이후 이와데라와 연락이 끊어지며 불륜녀는 매우 불안해 수면제를 많이먹었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결국 인정하며 사죄를 했지만 이미지는 회복될 수 없었고, 불륜사건 이후 한달 후인 2022년 7월에 야마구치 이치로가 건강 문제로 당분간 활동을 중지할 것을 발표합니다.
나중에 야마구치가 인스타에 올린 글에 따르면 우울증이 재발하며 건강이 악화되어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하는데, 활동을 중단하고 회복하고 온 사카낙션은 2024년 4월 다시 완전체로 부활하며 콘서트 투어를 시작합니다.
2016년에 일본 SUMMER SONIC에 영국의 라디오헤드가 온적이 있었어요. 서머소닉은 라인업이 후덜덜하다고 할정도로 일본 이름 좀 날린 밴드들이 거의 참여하는데,
“어떤 일본 밴드의 공연이 제일 좋았냐”란 질문에 라디오헤드는 “단연 사카낙션의 공연이었다”라고 말했어요. 제가 주절주절 설명하는것보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기발한 멜로디, 통통튀는 사운드, 풍요로운 감각들을 직접 느껴보시는걸 추천드리는데,
“살아가본적도 도착한적도 없는 과거의 시간을 노래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인것 같다”
“들으면 무조건 행복해지는 노래...극도의 세련됨”
많은 분들이 음악을 통해 공명하고 있단게 댓글을 통해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제이팝토크를 해봤는데, 어떠셨나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