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로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25. 2023

열받아야 글이 잘 써진다.

부부싸움 대판하고 글쓰기




"그러니까 물티슈로 닦지 말고!
걸레로 좀 닦으라고! "

중요한 건 물티슈이냐 걸레이냐가 아니었다.

남편과의 연애 스토리로 에세이를 쓰던 차에 다 갈아엎고 싶다 오늘.

젠장.  




결혼 14년 차.

결혼생활 14년 동안 부부싸움 한 일이 손가락에 꼽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싸움은 신혼 초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해 살 때다. 첫 아이를 임신했고 바깥일을 보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냥 일이면 괜찮았을 텐데 동호회 모임에 가서 퇴근이 늦어졌었다. 그 당시 산후 우울증아니, 산중 우울증이 있을 때였다. 우울증이라고 하기도 뭐 하지만, 감정선 상태가 매우 말랑거려 작은 일에도 큰 서운함으로 번질 시기였다.  혼자 밥 먹는 게 싫었고 속상하거나 서운한 감정을 말로 쏟아내지 못해 속으로 다 삭혔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 하루는 그냥 겸상을 하던 중 목구멍에 밥알이 매여 꺽꺽거리며 눈물을 흘렸던 때다. 어떻게 보면이건 부부싸움 축에도 못 낀다. 남편은 그저 말도 안 하고 토라져 눈물을 쏟는 아내 앞에서 당황했을 테니까,

그런 시간이 쌓여 언젠가 한 번 크게 말다툼이 났었다. 그래도 그 당시 서로 하루 이틀 말 안 할 뿐 큰 소리는 그 시간으로 끝났다.

두 번째는 아이가 유치원 다닐 시절이었다. 아침 등원차를 태워야 하는데 서로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등원차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아 호닥거리다 말싸움이 크게 났다. 간혹 말도 티격 거리다 서로 얼굴이 붉어져 서로 살갑게 대하지 않을 정도였지, 얼굴에 실핏줄 터질 정도로 싸워댄 적이 없던 터라 아이들은 분위기에 얼었다. 호닥거리며 남편에게 부탁할 건 부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다 커버해서 하려고 했다. 그래도 부족한 시간에 혼자 가제트 만능팔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럴 거면 너 일 그만둬! 당장 그만둬!" 

이렇게 말한 남편 말에 성질 나서 당장 원장에게 문자로 출근 못 할지도 모르겠다며 문자를 보내는 척했다.

그날 출근길에 통학차를 놓친 아이들을 내려다 주러 가면서 차 안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서럽고 분하고 속상하고 결혼생활이 싫었다. 아이들도 싫고 남편은 꼴도 보기 싫고 혼자이고 싶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생각도 안 하고 눈물을 못 참고 펑펑 울어댔다. 직장에 도착해 동료 선생님은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보고 토닥거리며 이야기를 들어줬었다.  그때 나왔던 말은 이거였다.

"선생님도, 선생님이 뭐든 다 껴안아야 직성이 풀리죠? 남에게 맡기는 거 잘 못하죠?"

그 말을 듣는 데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내 일을 부모님, 남편에게 맡기는 것도 어려워했다. 떠넘기는 것, 짐을 지우는 게 싫어 내가 조금 더 힘들고 말지 하는 마음이 크다. 친구들 관계에서도 그렇게 살아왔고 내 인간관계 방식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는 게 맞다는 공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미덕이며 착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평생 따라다녔다.

이 내용과 비슷한 내용을  <오늘도 마침표 하나> 공저에 실었다. 인생, 인간관계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는 콤플렉스얘기다.   


물론 그 이후로도 소소하게 싸우거나, 대화나 말 꼬투리에서 시작된 말싸움이나 감정싸움으로 인해 2~3일간 서로 스치면서도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나다니는 일도 수차례 있었다. 대판 싸우지 않을 뿐.

그런데 오늘은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한다고 하는 남편은 억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성에 안 찬다. 왜 이건 안 하는지, 그건 왜 안 보이는지, 말 안 하면 남자는 모른다는 그딴 핑계는 좀 이제 그만 좀 댔으면 좋겠다. 요청하란다. 필요할 때 말하지 안 해놓고 왜 구시렁거리냐는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그거 말 안 하면 모른다는 게 이해 안 된다. 화장실 변기 청소도 내가 보기에는 한 번은 안 하는 데 자기는 했단다. 바닥 청소 걸레질은 왜 안 하냐며 말해도 자기는 물티슈로 다 했는데 왜 안 했다고 말하냐며 목소리가 커진다.

남편은 헌신적이다. 가정적이다. 다정하다. 아이들에게 보다 나에게 더.

남편이 나에게 다정하고 헌신적인 게 좋지만, 나보다 아이들에게 더욱 자상하면 좋겠다.

아무튼, 남편은 평소 설거지도 잘하고, 간혹 밥도 한다. 청소기도 돌리고 물티슈로 바닥도 닦는다. 쓰레기도 가져다 버리고 말해야만 하는 부분도 있지만 14년 차 정도 되니 말 안 해도 하는 부분이 늘었다. 누가 보면 감지덕지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붙어 있는 시간이길다보니 못마땅한 부분이 많다. 남편이라고 없을까,  

며칠간 저녁 먹은 설거지 본인이 다 했는데 아는 척을 안 해줘서 서운했던 건지 오늘 그 얘기도 터져 나왔다. 솔직히 가끔 내가 한숨 쉬면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밥하고 힘겹게 걸레질하면서 구시렁 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 보란 듯이 해. 주. 는 날도 있다. 내가 해준다는 거 보여주는 거처럼.

집안일은 같이 하는 거다. 도와주는 게 아니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다 집어치우고 그냥 이야기의 핵심이 물티슈로 닦지 말고 걸레로 닦아달라 화장실 청소도 좀 해달라 변기나 세면대로 보일 때 지저분하면 좀 닦아달라 나만 하는 거 같으니 같이 좀 해달라며 힘들다 하소연하는 거였다. 눈에 보이는 거 안하면 직성이 안풀리는 내 고질병도 있지만 요즘엔 그렇다고 바로바로 못한다. 다른 일이 더 많다. 엉덩이 붙이고 한번 앉으면 좀 처럼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여튼, 이야기의 꼬리는 '네가 나를 무시한다. 인정 안 한다'로 흘렀고 격양된 목소리와 울그락 불그락 거리는 얼굴, 부들 떨리는 입꼬리가 주체가 안 됐다. 이야기의 끝은 , 그럼 메이드 써!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하던가! 아님 내가 하는 게 티가 안 나니까 매일 내가 청소할게 그럼 됐니?로 끝났고, 나는 성질이 나서 타자기로 성질을 푸는 중이다.



 각자 30년 40년을 다른 가정환경, 사회환경에서 살아왔다. 14년 살았으면 생활패턴이며 생각이 맞춰질 법도 한데 쉽지 않다. 금슬 좋은 잉꼬부부 맞다. 사이좋은 편이다. 대화도 자주한다. 그래도 삶의 구석구석에서 자질구레, 시시콜콜하게 안 맞는 부분들은 쉽사리 맞춰지지 않는 법이다. 그 흔한 신혼부부들이 치약을 어디서부터 짜는지, 썼던 수건을 또 쓰느니, 양말을 뒤집어 놓느니 이런 일은 다반사다. 그저 그냥 다름을 느끼고 맘에 안들 때 그를 나에게 맞추려기보다 들릴 정도의 혼잣말로 '이봐 또 이렇게 해놨네. 으이그.' 선에서 칠 뿐이다. 강요해도 안된다는 걸 알기에 그건 그만한다. 그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좀 더 부드럽게 대화하고 요청하면 싸움이 안 날 텐데 말이다.


나도 틀렸다.

좀 더 부드럽게 요청하고, 그 간의 수고를 인정해 줬다면 이런 시간은 없었을 거다. 생각해 보니까 나는 그에게 요구한 게 많았는데, 그는 나에게 요구한 게 없었구나 싶다. 내가 욕심쟁이로 끝난다.열받으니까 글이 막 써져서 단숨에 써내려 왔다. 결론은 자아성찰로 끝나는구나. 역시 글쓰기는 사람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글 쓰는 동안 화가 다 삭혀졌다. 이따가 부드럽게 다시 이야기해야겠다.


그깟, 물티슈인지 걸레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

내 기준일 뿐.

매거진의 이전글 실패의 흔적은 완주의 훈장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