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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05. 2023

실패의 흔적은 완주의 훈장이다

줄넘기에서 찾은 발견  




회초리에 맞아 선명한 붉은 줄이 수십 개는 부어올랐다.
한번 내려칠 때마다 너무 아파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도 내가 해내야 하는 목표가 있어서 숨을 고르며 참았다.
그렇게 땀방울을 쏟으면서 참아내고 나니 30분이 되었다.


 

     오랜만에 줄넘기를 했다. 집에만 있으면 계속 앉아서 일하고 공부하고 잡일하고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과 집안일하는 시간 빼고는 거의 하루 종일 앉아 있다. 이러면 건강에 꼭 적색 신호등이 켜진다. 체력이 한없이 저하되면서 스멀스멀 병이 찾아오려는 느낌이 싫어서  움직이려고 한다. 평소에는 gym에 가서 운동도 하고 가끔 산에도 가고 동네 산책도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게다가 아이들이 방학을 하던가, 아파서 집에 있을 때는 어디 다녀오는 것도 쉽지 않다. 같이 가면 좋은데 일단 gym은 나도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끝낼 예정이기 때문에 더 결제할 수도 없다. 다시 예전처럼 홈트를 하던가 주변을 산책하는 루틴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무튼 오늘의 Pick은 줄넘기였다. 누구한테 야단맞아 붉은 회초리 선이 생긴 게 아니라 줄넘기가 그랬다. 줄이 내 키에 비해 길었던 탓인지 아무리 제대로 넘으려고 해도 몇 번이고 걸려서 잘 넘어가질 않았다.



그거 줄이 당신 키에 안 맞아서 그래. 줄을 좀 줄여봐

집 마당에서 줄넘기하면서 줄에 걸려 똑딱이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걸리는 소리를 듣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속으로는 줄이고 싶지 않았는데 귀찮다 생각 중이었다. 이제 내 키를 거의 따라잡은 별이도 안 걸리고 잘하던데 줄 탓일까 싶기도 했다.  



휙휙 돌아가는 줄넘기가 발에 걸려 멈출 때 또박 또박 때리는 게 얼마나 따가운지 몇 대 얻어맞고 나니까 정신이 차려졌다. 부어 오른팔을 보니 그만할까 싶다가 할 거면 제대로 하자며 줄을 줄여서 줄넘기를 이어갔다.


줄넘기 30분 달성 목표를 세워놓고 어떻게든 중간에 쉬던 안 쉬던 30분은 채우겠다는 심산으로 시작했다. 줄넘기를 하려는 이유는 운동량 및 칼로리를 태울 수 있는 가장 간편한 운동 아닌가. 다른 장비 다 필요 없이 줄넘기랑 운동화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각 시간마다 500개만 해도 하루에 줄넘기 1500개를 뛴 게 된다. 그러니 한 번에 30분이면 500개는 채우고도 남는다. 아니, 15분이면 충분하다. 뭐 지금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을 한다는 건 아니다. 그만큼 유용한 운동인 건 분명하다. 줄넘기를 하면서 숨을 헉헉거리며 팔에 난 훈장을 보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래. 실패의 흔적은 과정인거지.
성공으로 간다기보다 목표를 향해 뛰어갈 때 나는 생채기는 훈장이지.
이 흔적은 곧 가라앉겠지만 나는 이 과정이 있었기에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물론 아무런 생채기 없이 단번에 500개, 1000개를 넘고 굳이 팔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개수를 채울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서 그만둘까 싶다가도 마음먹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그저 계속하다 보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이치다. 그것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거다.


그깟 줄넘기 하나에 뭐 거창하게 성공과 실패를 논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주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순간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인생의 작은 점을 볼 수 있다.

지금 하는 모든 일의 과정에 실패가 있을 수 있고, 상처도 나고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멈추지만 않는다면 원하는 지점까지 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의 상처와 흠집은 훗날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는 멋진 훈장이 될 것이다.  줄넘기 줄을 줄여 실수의 횟수를 줄였던 것처럼 뭔가 하다가 잘 안되면 수정하면 된다. 모든 과정에는 지혜가 필요한데 줄넘기 줄을 줄이는 행위가 지혜로운 거다. 계속 얻어맞는데 이겨내겠다고 계속 앞만 보는 것도 미련한 거다. 가는 길에서 옆도 보고 위도 보고 아래도 볼 수 있는 여유와 귀도 열어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도 요령이다.   


아까는 좀 아팠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사실 흔적도 없어졌다.


이렇게 경험을 통해 줄넘기에서 교훈을 얻는 인생 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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