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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11. 2023

언제까지 환경 탓만 할 겁니까?

 마음이 있는 곳에  우선순위가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와서 사십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많이 겪었다. 입 아프게 말하고 백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은 단연코 '정전'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글로 쓴 것만 해도 족히 10회 정도는 되는 듯하다. 그만큼 내 생활에 이슈의 범위가 넓은 부분이다.  처음 남아공에 왔을 때는 당연히 인터넷도 느리고 물이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알아볼 때 수도가 잘 나오는지 수압이 좋은지도 체크 항목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수압이 좋고 물 부족 문제는 없다고 해서 의아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전기!!  

아프리카는 당연히 물도 부족하고 전기도 부족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생활을 하다가 나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 전기는 가족 모두를 자주 멘붕 상태에 빠뜨렸다.  수질도 안좋고 가끔 물 부족 현상이 있지만 전기 만큼은 아니다.

 



나의 첫 에세이 <삼 남매와 남아공 서바이벌>에 적힌 내용처럼 처음에는 정전이 되는 상황도 즐겼다. 이색적이라는 이유와 불편하지만 아프리카에 살려면 이 상황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집에 제대로 된 랜턴도 없던 때라 온갖 촛불을 동원하고 휴대폰 랜턴에 의지해 밥도 하고 책도 봤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어떤 마음으로 적응했나 의아할 정도다. 어쩌면 지금은 그때보다 5년이나 지났고, 나라의 상황도 발전했을테니 더 나은 상황이 되었겠다고 추측하는 게 맞을 거다. 그런데 아니다. 지금은 5년 전보다 전기상황이 더 나빠졌다.

2년 전에는 11일간 정전이 되어 사람 사는 게 말이 아닌 시간도 버텨냈다. 얼음 사다 나르기 바빴고 냉장고 음식은 썩고 녹아 다 버리기 정신없었다. 이 내용도 브런치에 연재하다가 중간에 연재하지 못할 일이 생겨 끝까지 다 적지 못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서 이어서 써 내려가야 한다. 무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전기가 3차례까지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다. 보통은 전기회사 앱에서 정전 예상 시간을 알려주는데 예고 없이 갑자기 나가는 날도 많다.


심지어 어제는 남아공의 한 지역의 철탑이 무너져 주변의 지역이 거의 다 정전이 됐다. 진짜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지역과 옆동네 빼고는 주변 지역이 어젯밤부터 정전이었단다. 다시 11일간의 말 못할 장기 정전이 떠올랐다. 지금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해 봐라. 전기가 하루에 3번씩 툭툭 꺼지는데 가전제품이 멀쩡하고 전기 시스템이 멀쩡한 게 신기한 거다. 말이 하루 3번이지 한번 나갈 때마다 2시간에서 4시간까지 나가니 하루 3번 나간다고 하면 최대 8시간도 나간다. 식사시간 혹은 등교시간에 정전되면 도시락은커녕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고 나가는 날도 많다.  시리얼먹이기 싫어서 브루스타를 켜서 달걀 프라이라도 하나 해서 먹이려고 하면 마치 캠핑 간 듯 느껴질 것 같지만 아니다. 캄캄한 어둠에서 렌턴 의지해 브루스타에 팬 올려놓고 아침 준비하려고 하면 자동 발사 투덜거림이 나온다.


"이 놈의 징글징글한 정전"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잇몸이라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마다 처음에는 즐겼다가 그 담에는 화가 났다가 그리곤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현재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태세로 바로 돌입한다.

최근에는 남아공에 처음 왔을 때보다 줌 수업이 훨씬 더 많아졌고 현재 하고 있는 영어 코칭이며 앞으로 하게 될 라이팅 코칭일도 모두 다 인터넷을 사용해서 일을 해야만 한다. 전기가 나가면 당연히 인터넷이 끊긴다. 그럼 휴대폰으로 데이터를 충전해서 필요한 만큼 아껴서 사용한다. 데이터 충전비가 저렴하지 않다. 휴대폰 통신사에 가서 약정을 해서 약정요금으로 데이터를 쓸 수 있지만, 처음에 왔을 때는 2년 약정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1년짜리 비자 가지고는 받아주질 않아서 약정을 걸지 않았다. 때로는 그게 더 편하기도 했다. 아주 조금씩 필요할 때마다 충전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때로는 엄청 불편했다. 적절한 프로모션이 안 뜨면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경우도 생겼던 탓이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이 잘 안 되는 지역으로 2시간 정도 잠시 가있었는데 마침 그때 줌 수업이 있어서 들어가야 했다. 아이들 노는 동안 1시간 내내 3G가 잡혔다가 LTE가 됐다가 왔다 갔다 안테나는 겨우 2칸 떴다 사라지는 상황에서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답답했던 때가 있었다. 통신사 문제인가 싶어서 휴대폰 통신사도 바꾸려고 알아보는 중이다. 그날은 결국 수업도 못 들어갔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대한민국 평균 인터넷 속도가 평균 약 200 BPM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남아공에서 내가 쓰는 우리 집 인터넷 속도는 90 BPM이다. 이것도 느린 게 아니다.  100도 안 되는 인터넷 속도가 한국에 비해 현저하게 느린 건 맞지만 꽤 양호한 거다. 10년 전, 5년 전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남아공에서도 돈만 더 내면 현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굳이 내가 웃돈을 줘가면서 인터넷속도를 올려야 할까 싶다가도 자꾸 끊어지는 인터넷 때문에 수업에 방해가 될 때는 갈아치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전기가 나가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서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하고 음식도 한다. SNS나 블로그,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린다. 영어 피드백도 하고 사람들과 소통도 한다.

전기가 나가는 시간에는 뭘 할까? 전기가 나가면 남아있는 노트북 배터리 이용해서 또 글을 쓴다. 한글 파일이나 워드에 쓰면 된다. 종이책이 별로 없으니 충전되어 있는 아이패드에서 전자책을 펼쳐 읽는다. 책 읽는 데는 많은 배터리가 필요하지 않다. 산책도 하고 잠시 휴식도 취한다. 미리 프린트되어 있는 자료를 보면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다. 할 일은 늘 산더미다.

때로는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느냐며 불만에 입이 터지는 날도 있다. 그래도 그저 불편하기는 하지만 전기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구분 되는 일을 하면 그만이다.



오늘 영어 훈련 못하셨네요? 오늘 글 쓰기는 건너뛰나요?

누구는 말한다. 바빠서요. 시간이 없어서요. 아 오늘은 진짜 하려고 했는데 무척 힘들었어요.

아 진짜 진짜! 오늘은 꼭~~~! 하려고 했는데 말하기도 부끄럽네요.

그렇게 말한다. 그래놓고 내일이 되면 또 안 한다.

오늘 전기 나갔는데, 에이 그냥 하지 말지 뭐! 나도 때론 환경탓한다.

그런데 진짜 해야 하거나 놓치면 큰일 나는 일은 어떻게든 전기가 되는 곳을 찾아서라도 간다.


우선순위 문제다.

마음의 문제다.

처한 환경 탓 하지 말자.

오늘 못한 일은 내일 또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마음에 달렸다.

만약 간절하게 원하는 일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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