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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14. 2023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

 기대했던 재미난 싸움은 없었다




 

  20대 초반이었나 밤늦은 시간 내 방에 있는데 창 밖에서 싸우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밑으로 내려가지는 못하고 창문의 커튼사이로 빼꼼 밖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호통 치는 굵은 목소리,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큰일이 날 듯하여 경찰에 신고전화를 넣었다. 내가 전화를 하자마자 경찰이 왔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도 같은 마음으로 신고를 했는지 내 신고 전화 전에 경찰이 출동한 모양이다. 이렇게 싸움의 결말은 경찰의 개입으로 큰일은 안 난 것 같았지만 뒷 일은 모르는 이었을 거다.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개자식.



 

  오프라인 카톡 채팅방이 활성화되고 난 이후로 채팅창의 다양한 기능과 발전되는 옵션을 보면서 감탄한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던 채팅방이 현재는 어마무시하게 많다. 일반 채팅창과 오픈 채팅창을 구분해서 쓸 수 있는 기능 덕분에 구분이 되어 그나마 관리가 되는 중이다. 오픈채팅창만 해도 족히 50개는 되는 거 같다. 이 중 방안에 몰린 인원이 1000명 가까이 되는 방이 3개나 있다.

  사람을 모으는 일, 한 사람 중심으로 모여 그 방에서 가진 규칙을 지키고 서로 소통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는 일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잘 굴러가는 오픈 채팅방을 볼 때면 신기하다. 한편으론 나는 언제 그런 그룹을 이끌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본다. 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도 마음도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이제는 욕심의 차원이 아니라 앞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리더의 역할과 군중의 심리와 집단지성의 힘이 놀라운 뿐이다.


  오늘 오전에 일이 하나 있었다. 나와 관련된 일은 아니었고 나는 방관자였으나 이 일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속해 있는 오픈 채팅방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이었다. 그리고 그 소란이 커질까 봐 걱정하면서도 가만히 지켜보는 입장에서 마음이 두근거리는 동시에 구경하기 딱 좋은 눈으로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불구경은 하나도 재미없고 그 타는 연기와 매캐한 냄새도 싫다. 두려운 현장을 보면 내 속이 타들어가는 듯하다. 그런데 싸움 구경은 피 터지게 싸우는 상황을 몰래 숨 죽여 귀 막고 눈 질끈 감으면서도 본다. 끝이 궁금해 지켜보게 되는 이상한 기운이 있다. 어쩌면 위험 천만한 상황을 지켜보는 상황일지라도 끝까지 어떻게 되는지 구경하는 방관자의 심리도 있는 것 같다. (나 나쁜데?)  사실이 그렇다.


 아무튼, 단체 톡방을 처음 만들 때 취지가 공지 전달 용도로 만들어진 방이고, 사적인 질문이나 잡담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대문에 걸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공식 행사만 전달하는 방이다. 요즘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톡방의 경우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이렇게 운영하는 곳도 많이 있다. 오늘의 이슈는 어떤 광고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있는 사람이 건의 사항을 톡방에 남기면서 시작됐다. 긴 공지사항 아래 한 사람의 고견을 전달하는 톡을 남겼는데 수분이 지나지 않아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가 떴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은 여기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며 메시지를 가린다고 말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메시지를 가린 일 때문에 의견을 낸 사람은 기분이 언짢았다. 그리고 또다시 가리지 말고 의견을 받고 설명을 해달라고 남겼다. 그러나 같은 상황은 반복이 됐다. 관리자는 아무 대꾸 없이 지웠고, 의견자는 계속해서 의견을 올렸다. 그러는 상황이 계속 지속이 됐고 나는 톡방을 째려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만 같은 불안함을 예감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동안 원래 톡방을 만든 취지가 담긴 첫 공지 사항을 위에 관리자는 공지로 이제 달아 올렸고, 확인하지 못한 상대방은 계속 같은 의견을 피력하며 기분 나쁘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채팅방 관리자는 메시지를 가렸다. 이쯤 되니, 두 사람의 태도에 불만이 생겼다. 내가 불만 가질 일은 아니다만 답답함이 더 컸다. 둘 중 누군가 한 사람은 이런 상황이 발생되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있는 톡방에서 이럴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해결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공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데 둘 다 팽팽하게 맞서는 게 보였던 탓이다.

  사실 규칙이 맘에 들던 안 들던 톡방에 초대될 때부터 그런 규칙이 있었으니, 의견을 내는 사람은 이 방에 올리지 않는 게 맞다. 그리고 말을 살만한 행동을 한 사람도 의견을 낸 사람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관리자의 태도가 더 못마땅했다.  이쯤 되면 상대방의 나이나 이해도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법한 사진도 있는데 액션을 개인적으로 취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해결점을 찾아 더 이상 이렇게 사람이 많은 방에서 썩 좋지 않은 분위기는 내리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둘 다 그만하시고 개인톡으로 하시죠!

올리지도 못하는 말을 톡창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배짱도 없는 주제에.

뭐 거기 껴서 뭐 하나, 좋을 거 하나 없다. 지지다. 누구 편을 들것도 아니고 내가 나설일도 아니다. 그렇게 약 20분의 시간이 지나고 관리자의 긴 장문으로 설명은 충분히 되었고, 이제야 이해한 의견자는 정중한 인사를 남겼다. 상황은 조용히 종료됐다.


누구의 잘 못이 더 클까를 따지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얼른 상대방의 불편함을 알아차렸다면 개인적으로 가이드해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 다른 이유가 충분히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저 자존심인가 싶은 마음에 씁쓸했다. 상대방의 필요에 좀 더 민감할 수는 없는걸까.

그러면 내가 손해보고 피곤하고, 그래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걸까?


살다 보면 답답한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도 많이 부딪힌다. 그럴 때 누군가 나서서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쉽게 풀리는 일들이 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오지랖은 코치의 덕목이다. 인생에도 코치가 있다면 어떨까 싶은 순간이었다.


나는 어떤 코치인가.

나는 어떤 코치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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