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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10. 2023

작품에 걸맞은 가치를 매긴다는 것

그 꽃길 내가 깔아줄게 

작품에 걸맞은 사람이 된다는 것 작품에 걸맞은 사람이 된다는 것 



얼마 전, <엄마도 그림대회 나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편 올렸다. 

https://brunch.co.kr/@namagong2018/107


내가 그린 그림을 소녀들을 위한 단체 기부전시회에 참여했다.  

첫 번째 그림은 자이언트 북 컨설팅의 이은대 작가님이 구입해 주셨다. 

두 번째 그림은 나의 벗 리나가 구입했다.

두 사람 모두 전시회 현장에는 오지 못했지만 휴대폰 속 사진만 보고 흔쾌히 구입을 하겠노라 대답했다. 

사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정말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기분 좋게 구입을 해주었다. 

(이은대 작가님 제 그림은 어디에 걸려있나요? ^^) 


두 번째 그림이 걸린 구매자 집 거실 벽면


기분이 좋은 마음과 팀에 대한 감사의 마음, 성취감까지 표현하고자 쓴 글이었다. 



화구가게나 갤러리를 지날 때 혹은 쇼핑목 중앙에 전시된 그림이나 벽화를 볼 때에도 그림을 보면서 저런 그림을 얼마나 하나? 하는 생각을 이따금 했다. 먼저 그림을 보며 어떻게 그렸을지 감탄하고 나도 저렇게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림을 보면서 또 다른 놀라운 점은 가격이었다. 그림 한 개 가격이 백만 원도 넘고 몇 백에 심지어 천만 원까지도 되는 그림을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드라마에서 부자들이 몇 천, 몇 억을 주고 사들이는 작품도 봤지만 그건 드라마고, 현실에서 실제로 그렇게나 많이 주고 그림을 누가 살까 싶은 마음이었다. 저런 그림들 너무 멋진데 비싸서 안 사니까 세일하는 거 아냐? 혹은 저거 안 팔려서 맨날 저기 걸려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했다. 작가에게 참으로 실례되는 생각이 아니었을 수 없다. 그런데 속 마음이 그랬다. 그리고 그 가격을 누가 정하는지도 궁금했다. 그림 협회 같은 데서 내놓은 기준이 있나? 그냥 이전부터 내려오는 그림 적정가격선에서 사람들이 정하는 건가? 그런 궁금증말이다. 




4년 전 처음 내 그림을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려서 팔았던 때가 기억난다. 그림을 산 사람은 MKYU에서 같은 과목 수강을 하고 인스타 그램에서 소통하며 만났던 언니였다. 당시 디지털 드로잉에 목을 매고 매일 같이 그림을 그렸던 때였다. 그 당시 내가 몰입했던 영역은 그림이었다. 내가 꾸준히 그려서 올리는 그림을 보고는 늘 응원을 해주더니 어느 날 그림을 주문했다. 


나는 네 그림에서 사람 냄새도 나고 따뜻함이 느껴져서 너무 좋더라.


부모님이 하시는 토마토 농장을 돕는 중인데 홍보용 포스터와 로고 주문이었다. 나는 전문가도 아닌 아마추어이니 돈 받고 그림을 팔기가 좀 그렇다 그러니 그냥 선물로 그려 주겠노라고 했다. 그 언니는 나의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그 시작을 본인이 해주고 싶다고 했다. 언니는 한사코 나에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손사래 치며, 내가 그린 그림의 가치가 반짝거리도록 만들어 보라고 말했다. 원하는 브랜드 네임과 상징을 알기 위해 전화로 수분 간 통화했다. 그리고 며칠간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고민했다. 일단 그림은 그리겠는데 내가 그린 그림이 맘에 들지도 고민이었고, 그림을 사겠다고 선뜻 말할 정도의 값어치가 있을지도 고민됐다. 가장 어려운 건 가격책정이었다. 


"언니, 얼마면 사겠어요?" 

네 그림 가격은 네가 정해야지. 
네 가치를 네가 스스로 매긴다고 생각하고 정해봐.
네 가치는 네가 만드는 거야. 


세상 제일 어려운 말이었다. 나의 가치를 나 스스로 매기라고? 어떻게? 세상에......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 보니,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매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내리는 평가나 그들이 나에게 붙이는 점수로 내가 정해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까도 생각했다. 여하튼 당장 그림을 팔아야 하니, 마음속으론 나도 인정하고 타인도 인정할 수 있는 가격 책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터무니없이 많이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과 수고가 너무 헐값에 팔리는 것도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했다. (꼴에 또 자존심은 있다) 그 당시 나는 나도 언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만큼의 가격을 책정했고 언니는 일언반구 어떤 말도 없이 흔쾌히 그림을 구입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할 거라며 칭찬을 마구 부어줬다. 나는 줄 수 있는 것은 덤으로 다 주었다.  로고는 다른 그림으로 바뀌었지만 포스터는 아직까지 잘 사용하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너무 고맙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지금 그리면 더 잘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이번에도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에 내놓으며 가격을 매길 때는 팀에서 정했기 때문에 나는 가격에 대한 책정은 안 했다. 그저, 내가 그린 그림을 누군가가 관람하고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하면 좋겠다 싶었다. 아무도 안 사더라도 오프라인 전시회가 어디 쉬운가, 폰티콘 전시팀에 끼여서 내 그림을 올릴 수 있다는 자체에 만족했다. 그런데 그림이 두 전다 팔리고 보니 뛸 듯이 기쁘기보다는 뭔가 잔잔한 뿌듯함이 내게 찾아왔다. 그저 관람하는 사람에 입장에서는 그 그림은 잘 그렸네, 이 그림은 못 그렸네로 판단할 수 있는 게 그림이 아니란 걸 그림을 그리다 보니 이해하게 됐다. 물론 특출 나게 깊은 표현을 해내는 거장들을 보면 감탄사가 나오지만 전문가도 아닌 일반들이 그린 팀원들의 그림도 충분히 빛났다. 내가 그 그림에 어떤 가격을 매기기보다 그저 그림에 담긴 의미와 뜻을 감상하고 자신의 가치를 한층 더 빛나게 만드는 행위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내가 그 언니가 내 그림을 산다고 그려보라고 했을 때 나는 자격이 안되고 실력이 안되니 못 팔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내 그림을 누군가가 구입했다는 것 자체로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림을 꾸준히 그렸기 때문에 내 그림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었던 거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나 스스로의 자존감을 올려주었다. 결국 선택과 실행의 나의 몫이지만, 설사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그 꾸준함이 어디 가지 않는다.  

꾸준함에 대해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결국 결과를 내게 마련이다. 

그 쌓인 시간과 기록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비록 지금은 명장이 아니더라도 명품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나 스스로 내 가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많은 인내와 고통이 따를 수 있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게 될 거다.

좌절의 순간에 숨고 싶고 다 놓아버리고 싶을 수 있다. 

슬슬 지겨워질 무렵 손 놓아버리면 속이 시원하고 편안할지 모르지만 

지난 기록은 그냥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을 뿐 현재진행이 아니다. 


글을 쓰다 보니 어떤 날은 글을 술술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안 써져 서랍장에 꼭꼭 넣어두기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러니까 어제 글을 3편을 쓰다가 마무리가 안되어서 쓰다가 저장, 쓰다가 저장했다. 

그리고 세 번째 쓰던 글로 오늘에서야 마무리한다. 




 















그림 가격. 

그 그림의 품격에 맞는 작가 

내 글의 가격 

내 글에 맞는 품격 잇는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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