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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23. 2023

과부하와 고찰

중심 잡기 





어둠에서 손 씻어 보셨습니까?

캄캄한 주방에서 설거지해보셨나요? 

어두운 계단을 발끝과 손끝의 감각을 이용해 더듬거리며 길을 찾아보셨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의 마음을 90% 느껴볼 수 있는 순간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떻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훤히 볼 수 있어 감사함 가득한 것이지요. 매일 이런 상황 속에 있다 보니 상황을 역전시켜 적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연속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도 얻습니다. 오늘도 역시 정전은 되었고 어두운 곳에서 충전이 덜 되어 꺼져가는 랜턴에 의지해 저녁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미리 몇 시에 전기가 나갈 걸 알았기에 식사 준비는 시간 안에 모두 마쳐놓아 덜어서 먹기만 하면 됐습니다. 

  캄캄하긴 하고 아이들이 집에 있는 랜턴을 하나씩 가져가고 나면 저와 남편은 보조배터리와 건전지용 램프를 이용하곤 합니다. 제대로 된 랜턴을 하나 더 사면 되는데 그거 얼마나 한다고 자꾸 잊어버리고 있는 대로 쓰자는 마음에 구입을 못하고 있습니다. 덥석 하나 집어 오면 되는데 말이에요. 


  여하튼, 오늘도 어김없이 다 닳은 건전지를 빼 내고 AAA 건전지가 4개나 들어가는 작은 스탠드를 켰습니다. 노트북 옆에 두고 글을 쓰고 있었지요. 전자책 마무리 작업을 하고 등록하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노트북 왼쪽 서랍 위에 놓인 하얀색의 얇고 긴 스탠드에 불이 들어와 주변이 환해 좋았습니다. 켜둔지 한 15분 정도 지났을까요. 갑자기 피륙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스탠드 말고는 주변에서 소리 날 곳이 없다고 생각했죠. 어디 벌레가 사그락거리나 싶어 틈새를 봤지만 소리는 스탠드에서 나는 듯했습니다. 얼른 집어 들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라 콤팩트하고 가볍습니다. 조심스럽게 귀에 가져다 댔습니다. 

역시, 건전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재빠르게 건전지 뚜껑을 열었습니다. 건전지와 ㅡ (마이너스) 극이 맞닿은 부분에서 하얀 누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연필을 집어 뾰족한 연필 끝으로 얼른 건전지를 빼냈습니다.  AAA 건전지가 4개가 필요한데 3개밖에 없어 다 쓴 건전지 1개를 끼워 넣은 게 화근이었나 봅니다. 휴지로 돌돌 말아 휴지통에 넣고 손을 비누로 깨끗이 닦았죠. 남편은 저를 측은하게 보더니 '네가 또 문제를 일으켰구나'의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충전식 건전지 하나를 건네줍니다. 어둠에 있는 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삶에 불빛이 필요해 다시 끼워 넣었습니다. 


"왜 그랬지? 이거 타다가 폭발하는 거 아냐? 무서운데."

"안 폭발해. 손이나 잘 씻어 또 그 손으로 키보드 만지고 눈 비비고 그러면 큰일 나. " 


백치미 넘치게 심각한 표정으로 구시렁거리니 잔소리를 합니다. 

다시 끼워 넣은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다시 같은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뭔가 끓는 소리가 났고, 재빠르게 열고 역시 연필로 꺼내서 휴지로 닦고 남은 건전지도 다 빼냈습니다. 한참 동안 멍하니 건전지 끼우는 홈을 유심히 바라봤습니다. 



 과부하구나. 뭔가 엉켰다. 

처음에는 3개의 새 건전지 사이에 헌 건지 지를 넣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도무지 생각해도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 헌 건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뭐지? 그리고 두 번째는 3개의 새 건지 사이에 끼운 충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니, 문제가 생긴 건전지는 이미 끼워져 있던 새 건전지 중 1개였죠. 이건 또 뭘까? 제가 생각한 결론은, 헌 건전지가 새 건전지의 성능을 따라잡지 못해 생기는 문제라 결론 지었습니다.꺼내놓은 건전지는 한참동안 누액을 내뿜으며 소리를 냈습니다. 탈이났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하죠. 그런 격인가 보다 하고요. 그러다 생각이 잠시 멈췄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보통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 마주한 무언가가 문제라고 말이죠. 내가 기존에 하고 있던 일에 또 하나를 더 얹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요. 기존에 있던 문제들을 잘 해결하지 못한 채 일이 과중되니까 문제가 터진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떤 상황이나 부수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그 문제를 담는 내 마음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스탠드 본체 자체에서 생기는 문제 일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요. 뭐든 태도가 중요하고 마음이 중요하잖아요. 사람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오늘은 마음과 태도에 초점을 맞추어봅니다. 무슨 일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안에서 좋은 에너지가 나옵니다. 조금 힘든 일도 견뎌낼 수 있는 힘말입니다.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고 기꺼이 하면 뭔가 좀 삐그덕거려도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중심이 반듯하면 좌우로 치우칠 일이 없고 마음이 단단하면 무언가 파고들 틈이 없죠. 다른 측면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현상에 관한 고찰이면 됐습니다. 

그게 어디로 흐르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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