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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28. 2023

어른들도 넘어질 때가 있구나

타인을 위한 에너지




 오늘은 4월 27일 Freedom day로 공휴일입니다. 내일은 School Holiday이며, 다음 주 월요일 5월 1일은 Workers day입니다. 목금토일월까지 장기간의 휴일이 시작됐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저도 늑장을 부리게 됩니다. 아침을 일찍 주지 않아도 되고,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고 차에 태워서 등교시키지 않아도 되니 아침 시간이 여유롭습니다. 함정은 그렇게 여유로운 아침 시간이 되면 더 시간을 잘 써야 하는데 한 없이 늘어져서 아침도 늦게 먹고, 아침 운동도 빼먹고 하루 루틴이 엉망이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던 가지 않던 매일 루틴이 똑같아야 하는데 말이죠. 누구는 그럴 겁니다. 뭐 하루 그런다고 큰일 안 난다고요. 맞아요. 큰일은 안 납니다. 하지만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못해 일이 밀리거나, 운동을 하지 못해 몸이 축축 처지는 느낌을 느끼게 되지요.


 어제저녁에 미리 아이들과 오늘 아침이 되면 산에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산에 갈 사람?" 했는데 다들 저요!라고 소리쳤죠. 저는 철석 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고 아점을 먹고 나니 이미 시간은 10시가 넘었습니다. 역시 운동 가긴 글렀다고 생각했죠. 이미 정오를 향해 가는 시간에 햇볕이 몹시 뜨거워서 아마 이 시간에 나가면 새카맣게 탈 겁니다. 결국 해야 할 일들을 하고 낮에 나가기로 했죠.

낮이 되니 볼멘소리가 들립니다. 쉬고 싶다. 눕고 싶다. 오늘 그냥 안 나가면 안 되냐 등등 아이들이 말이 많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죠. 나는 오늘 산에 가서 만보를 걸을 거야!


 오후 2시쯤 나섰습니다. 문장 수업이 있는 날이라 에어팟을 챙겼고, 앉아서 듣지는 못하지만 귀로 듣기로 했습니다. 걸으면서 들으면 꽤 집중이 잘 됩니다. 필요한 메모는 휴대폰에 하면 됩니다. 한국과 시차가 있어서 7시간 느린 이곳에서 한국시차에 맞춰 활동하는 저의 생활의 지혜입니다.  물론 혼자가 아닌, 남편과 두 아들 녀석을 데리고요. 첫째 별이는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서 쉬게 두었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인 별이는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합니다. 음악 듣고, 친구랑 연락하고, 책도 읽습니다. 오늘은 그릭요거트를 만들겠다고 했었기에 혼자 바빴던 모양입니다. 그냥 뒀어요.


 

무료입장이 되는 산도 있지만, 오늘은 입장료 인당 40 란드를 내야 하는 산으로 향했습니다. MTB 산악용 자전거도 탈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는 산입니다. 자전거는 없어서 걸을 목적이었죠. 처음부터 10000보를 걸을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엘 형제에게 너무 가혹한 듯하여 짧은 코스로 40분만 걷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걷다 보니 초행길이라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표지판을 보면서도 여긴지 저긴지 헷갈려 갔던 길을 돌아 다른 길로 돌았는데 아까 왔던 길이고, 그렇게 돌다 보니 1시간 30분을 걷게 됐습니다. 약 80분 정도 걸었을 무렵부터 날도 더운데 아이들이 힘들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1시간도 훌쩍 넘었는데 지쳐 보이지만 목적지를 향해 계속 걷는 아이들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걷고 또 걷고, 하늘도 보고 풀도 보고, 달렸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며 계속 걸었습니다. 저는 걷는 게 좋습니다. 남아공은 계단도 거의 없고, 일부러 이렇게 걷지 않으면 걸을 일이 없어서 걷기는 마음먹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오래 걸을 수 있는 날은 마음도 몸도 가뿐해져요. 그렇게 걷다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제 다리에 힘이 풀려서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순간 악! 비명을 질렀죠. 매우 지쳐하던 막내 요엘의 손을 잡고 있었던 터라 같이 넘어질까 봐 온몸에 힘을 잔뜩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이가 제게 말을 걸었어요.


어른들도 넘어질 때가 있구나?
엄마! 나 때문에 안 넘어진 거예요.
내가 잡았어! 내가 잡아준 거야.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나는 너를 안 넘어지게 하려고 몸에 힘줘서 겨우 안 넘어진 건데, 너는 네가 내 손을 잡아 주고 있어서 안 넘어졌다고 생각하는구나. 네가 힘들어하니까 내가 네 손을 잡아 준 건데, 너는 네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럼, 어른들도 넘어지지, 넘어지는 데 일어나면 돼.
요엘이도 넘어지면 잘 일어나잖아. 그렇지?
엄마 안 다쳤어. 손 잡아줘서 고마워,
요엘이 덕분에 엄마가 안 넘어졌네~


그전까지 힘들다며 빨리 내려가면 시원한 음료수를 사 먹겠다고 터덜터덜 걷던 녀석이 갑자기 힘이 어디서 솟았는지 제 손을 더 꽉 잡아줍니다.


"엄마 내 손 잡아. 내가 또 넘어질 거 같으면 안 넘어지게 잡아줄게요!"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왔지?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 어린 여덟 살 아이도 누군가를 자기가 보호하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자신의 힘듬은 잠시 내려놓고 힘을 내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손을 놓고 가야 할 땐 자기 뒤만 따라오라더군요. 이건 미리 이야기 안 했는데 요엘은 이미 2번이나 미끄러져서 손바닥에 노란 흙이 묻었다며 투덜거렸지요.


 

사람의 본성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하고, 힘을 나누어야 할 상황이 오면 힘을 냅니다. 안에서 에너지가 생겨납니다. 내가 너무 힘들 때,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에는 내가 처한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외부로 시선을 돌리면 됩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거나, 나보다 더 힘든 사람에 굳이 초점을 맞추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의 필요를 찾아봅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주려는 마음이 사람의 본성이거든요. 내 안에서 없던 에너지가 나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세 살배기 아이도 옆에서 직접 일으켜 주지 않아도 손뼉 치고 응원만 해줘도 일어납니다.

어른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지요.


넘어져도 잘 일어난 요엘이와 나를 위해,

서로가 넘어지지 않도록 힘을 준 우리를 위해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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