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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30. 2023

꽃은 조금 시들어도 아름답다.

꽃은 꽃대로 나는 나대로 






 연휴 중 토요일, 한글학교가 없는 날이다.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 무슨 정신인지 새벽시장을 가겠다고 6시 기상해서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새벽시장, 이 지역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제법 크게 여는 플리마켓이다. 새벽 5시에 열어서 오전 9시에 문을 닫는데, 부스를 차린 사람도 장을 보러 온사람도 어마어마하다. 거기다 절반은 개판이라고 할 정도로 반려견이 많다. 정말 많다. 굳이 상스럽게 개판이라고 말한 이유는 걷다 치이는 게 큰 개들인 탓이다. 개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종의 개와 강아지를 만날 수 있다. 

 

 주차할 장소도 없을 정도로 빡빡한 곳을 지나 플리마켓에 입성하면 그저 살게 없어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난다. 오늘의 목표는 '꽃'이었다. 사실, 지난번 새벽시장에 갔을 때 봤던 스몰 킹프로테아가 눈에 아른 거렸어요. 저걸 일반 마트에서 사려면 200 란드는 족히 줘야 합니다. 그런데 새벽시장에서 90 란드에 팔거든요. 큰 거는 더 비싸지만 저렇게 한 묶음에 90 란드면 남아공에서도 저렴한 편에 속합니다. 다음 새벽시장에 갈 때는 꼭 꽃을 사 와야지 생각했고, 드디어 그날이 되어 소원성취 했습니다. 


 


사람이 말도 못 하게 많았어요. 사진 속의 시간이 오전 7시 30분경인데 옹기종기 엄청 많습니다. 사진 양 옆으로도 사람이 많고 마켓 부스도 규모가 꽤 커서 한 바퀴 도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음식, 채소와 과일, 차와 커피, 액세서리, 옷, 장난감, 꽃과 화분, 빵과 잼류, 나무 가구, 고기 등 웬만한 상품을 다 나온 듯합니다. 부지런해요 다들. 

 남아공은 땅도 넓고 건물도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아서 사람 많은 곳을 일부러 찾지 않으면  늘 한산합니다. 오늘 보고 정말 깜짝 놀랐는데 이렇게 놀란 게 손가락에 꼽힙니다. 




평생 살아오면서 내가 꽂아두고 보고 싶어서 꽃을 산 적이 없었습니다. 꽃은 좋은 데 내 돈 주고 사는 게 왜 그렇게 아까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사주는 꽃이 받아보고는 싶고, 차마 사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던 심보가 있었어요. 그럼 어련히 알아서 생일에라도 꽃을 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남편이 꽃도 한두 번 사주고, 신혼 초에는 근무하는 곳으로 꽃 바구니도 보내주더라고요. 그리고 결혼 후에는 결혼기념일에도, 생일에도 꽃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나는 내가 직접 꽃 사달라고 얘기했어 남편 한데,
자기도 얘기해 봐. 그렇게 안 하면 못 챙겨 받아.

 내가 쓰나 남편이 쓰나 한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데 아깝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말도 안 했죠. 뭐 가지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볼 때 없다며 됐다고 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럼 가볍게 외식만 하고 선물 없이 지나간 해도 있었습니다. 뭐 그게 대수롭냐 싶었죠.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불만이 생기더라고요. 


아니 그거 말 안 하면 모르니! 좀 알아서 좀 사주지! 
이제부터 매년 생일하고 결혼기념일에는 꽃 사줘. 선물도 챙길 거야!


결혼 10년이 넘었을 때 처음 말했습니다. 남편은 왜 말 안 했냐며 말하지 그랬냐고 했어요. 말 안 하면 모르는 남자들, 참 속 터집니다. 그런데 남편 말도 맞아요. 표현을 했으면 아무런 불만도 안 생겼을 것을 혼자 속앓이 했던 시간이 바보 같기도 한 거죠. 그래도 여자 마음이 은근히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있잖아요. 


그렇게 1년에 한두 번 꽃을 받을 때마다 꽃병에 꽃아 두었어요. 무척 보기에 만족스럽더군요. 식탁 위에 올려놓고 괜히 지나가다 서서 바라보고 향기 한 번 맡아보고요. 한마디 던져봅니다. 

넌 좋겠다. 가만히 있어도 예뻐서.
넌 좋겠다. 존재만으로 사람 기분을 좋게 해 줘서.

 1년에 한두 번 보다가 식탁의 빈 꽃병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어요. 이건 듣기 좋게 돌려 말한 거고 꽃병이 비는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주 보고 싶다고요. 그리고 나에게도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이 되니 자주 자고 싶다고요. 남편은 돈 아까워말고 그 까짓거 꽃 사고 싶을 때 사라고 합니다. 이제는 꽃 집이나 마트 꽃 코너를 지나면 저에게 안 사냐고 물어봐요. "살 때 되지 않았어?" 하고 묻죠. 그런다고 한들 저는 저렴하게 떨이로 나온 꽃만 사요. 그래도 아직 시들지 않았고 여전히 이쁜 꽃으로 고르죠. 


 꽃을 떨이로 판다고 해서 조금 시든 게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 피어있는 꽃이 안 예쁠까요? 

제 눈에 똑같이 예쁩니다. 옆에 비교 대상이 있으면 더 비교가 될 수도 있지만, 그거 가져다가 집에 꽂아두면 그냥 그 자체로 예뻐요. 심지어 시들어서 색이 변하고 잎이 떨어질 때까지도 예쁩니다. 어떤 물건을 사도 제 구실만 한다면 비교선상에 놓지 않고도 충분히 빛나는 그 값어치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똑같아요. 옆에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네가 예쁘네 내가 이쁘네 둘 중 누가 더 낫네 하며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나는 나 대로, 나이기에 아름답고 빛나는 거죠. 오늘 잠시 나보다 더 나은 사람, 더 높이 나는 사람, 더 빨리 성장하는 사람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 꽃 글을 쓰다 보니 정리가 되네요. 


나는 나 대로 아름다운 거죠. 

나 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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