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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07. 2023

엄마가 보낸 소포

한국에서 남아공으로 온 엄마 마음




고무장갑, 비닐, 영양제, 실리콘 주걱, 기능성 신발 깔창, 메모지. (부탁하지 않은 물건)

효소, 코치 명찰, 코치 명함, 책 몇 가지, 남편 바지, 다엘이 바지, 점퍼, 은별이 수학책, 애들 스포츠 게임 도구. (부탁한 물건)


우체국 4호 박스에 가득 담겨 왔다. 빵빵하게.

비타민B 영양제다. 효소랑 같이 이것저것 챙겨 보냈다. 엄마는.

내가 부탁한 것만 딱. 그것만 보내라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물건도 왔다.

늘 엄마는 부탁하지 않은 물건도 같이 끼워서 보낸다.


비타민B 영양제 뚜껑을 열자 음식물을 나누어 담는 비닐봉지가 나온다.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열개.


"어? 이게 비타민이 아니고 여기다가 비닐을 넣어서 보냈나 봐?"


그게 아니다. 비타민 위에 빈 공간에 뭐라도 더 채워서 보내려는 엄마 마음이었다.

뭐라도 한 개라도 더 보내려는 엄마 마음말이다.


 

그렇게 애를 먹이더니 드디어 도착했다.

선물 한아름 받은 기분은 째진다. 처음에는 그렇게 설레지도 않고 오래 걸려 온 소포가 그저 잘 도착했음에 안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배를 타고 3개월 반 만에 오면 엄청 빨리 오는 거다. 6개월 만에 와도 오기만 하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랬다. 이곳에서 살아온 선배들이.


가끔 분실되기도 하고 1년째 도착하지 않기도 한디거 했다. 그러니 오는 것만 해도 황송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오래 걸려도 오기만 하면 다행인 소포의 항로는 막혔다. 배는 더는 운행을 안 한다. 코로나 이후로 항로는 닫혔고 가끔 열렸다 닫혔다 한다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을까. 매번 내가 원할 때는 거절이었다.


빠른 배송은 일반 항공이거나 EMS프리미엄뿐이다. 중간 EMS는 없다. 우체국 EMS프리미엄은 해외배송 시에는 UPS로 넘어간다. 일반항공은 한 달에서 한 달 반 남짓 걸린다. UPS는 일주일이면 온다. 그렇다고 한들 안 되는 품목도 무척 많아졌다. 배송 품목이 되는 게 뭐가 있나 싶을 정도다. 옷, 책, 생활용품 및 화장품 등 무게가 비교적 가벼운 물건은 받을 수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 아무것도 안된단다. 마른반찬이 먹고 싶은데 여기선 구하기 어려워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세금은 두 배 이상은 되는 듯하다. 대체 남아프리카는 한국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아무튼, UPS로 12kg 소포를 받았다. 보내는 사람도 꽤 많은 세금을 지불하지만 받는 사람도 세금을 낸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한쪽에서 냈으면 됐지. 이 나라 참 희한하다. 우리나라는 안 그런데......


그래도 소포 받으니 좋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냥 '소포가 왔구나'가 아니라, '앗싸! 드디어 도착!'으로 바뀐다. 깜짝 소포도 아닌데, 부탁해서 받은 소포가 점점 더 기다려진다.

"뭐 필요한 거 보내줄까?"라고 물으면 나는 대부분은 한사코 손사래 친다.

"됐어. 나중에."보내는 세금이면 여기서 사고 말겠다는 심산이다.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라 누구에게도 시원하게 보내달라고 말을 잘 못한다. 배송로를 오가는 수고야 고맙지만, 몹시 아깝다. 마음이 어떻건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건 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래도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알턱이 없는 엄마는 하나라도 더 끼워서 보내는 거다.



고무장갑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무장갑 다 쓰고, 현지에서 사서 썼는데 영 맘에 안 든다. 물 차고, 벗겨지고 돌아가고, 그때마다 "여윽시! 한국"이라며 입을 내두르고 이 나라 장갑은 내던진다. 결국, 안 쓴 지 오래다. 그러다 엄마가 보낸 소포에서 고무장갑을 꺼내 바로 설거지에 썼다. 세상 좋다. 더러운 거 손으로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다. 고무장갑이 손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쓰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래봤자 고무장갑인데, 이걸 보낸 엄마 마음이 더 깊이 느껴지는 걸까. 괜히 설거지 마치고 싱크에 걸쳐 두곤 한번 더 쳐다본다.


한국에 같이 살았으면, 내가 아무 때고 너네 집에 갔을 거 아니야.
아니, 여기 가까이 중국, 필리핀만 됐어도 내가 10번은 더 가겠다 너네 집에.

난들 아닐까.


"장모님 어떻게 알고 신발 깔창 보내셨지? 당신이 얘기했어? "


"아니?"


"어? 장모님 꿈꾸셨나? 여윽시! 우리 장모님!"


소포가 왔다.

소포만 온 게 아니다.

엄마 마음이 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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