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4년의 짝사랑, 그리고 새 사랑
중요한 것은 남이 나에게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다.
고통을 극복하고 실연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느냐다.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어도 상처에서 피가 너무 많이 흐르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매 멀미에도 치료약이 있듯이 실연의 상처에도 치료 약이 있다.
우리가 상실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막아주는 방패와 같은 방파제다.
"소용없어. 난 안 쓰러져."
<모든 삶은 흐른다>ㅣ'방파제'
실연.
실연의 정의는 '연애에서 실패하다'이다.
어제 책을 읽다가 관계뿐 아니라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실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본래의 정의가 연애에서 실패하다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목표 따위를 '연애대상' 삼아 살다 실패를 맛보아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그렇게 인생의 여러 실패를 더듬다가 실제 실연당했을 때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했던 풋사랑 말고 이제 뭐 좀 제대로 알만한 시점이었던 중학교 무렵 교회오빠를 짝사랑했다. 나보다 1살 많은 오빠는 드럼도 잘 쳐, 키도 커, 농구도 잘해, 장난기 많지만 약간 나쁜 남자 스타일이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모습,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 어찌 멋지지 않을 수 있겠나 싶었다. 그 오빠 때문에 내 이상형이 바뀔 정도였으니까.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다 멋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약간 마른 고릴라를 닮기도 한 것 같다. 애 둘 낳은 거 까지 봤으니까, 잘 살고 있을거다.
암튼 중학교 때 처음 만난 후로 약 4년간 짝사랑했다. 내가 그 오빠 좋아하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나를 귀여워는 해주지만 '여자'로는 보지 않는 오빠가 야속했다. 약간 드라마 같은 썰을 풀자면, 그 오빠는 자기보다 10살이나 많은 연상을 좋아했고 잠시 만남도 가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기함 했다. 당시에는 10살 차이, 그것도 연상으로 여자가 10살이나 많다는 사실은 기절할 법했으니까. 아무튼 그런 관계를 알고 나서는 약간의 실망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당시 내가 짝사랑한 지 3년 차 됐던 시기다. 그 사이 오빠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졌다. 다른 여자친구를 만났고, 그 여자친구와 3년을 사귀었다. 이제는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희소식이었다. 적적했는지, 메신저로 나에게 제법 연락이 자주 왔다. 뜬금없지만 반가워 수다를 떨고 장난을 주고받으며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나랑 같은 학년 친구랑 그 오빠랑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기절할 듯 놀랐다. 역시 나쁜 남자구나 넌.
나 스스로 확인 사살하 듯 오빠에게 메신저로 물어봤다.
황당 그 자체였다. 정말 생각도 못했던 소식이었고, 그 사이 나와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심심했었구나. 나는 심심풀이 땅콩쯤 됐었구나 싶었다. 사실, 김칫국도 마셨다. 혹시 나랑...?
그다음말이 더 가관이었다.
이게 무슨, 되지도 않는 말인가 싶었고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물론 그다음 날 친한 친구들에게 대판 욕을 해댔다. 황당하다는 둥, 어이가 없다는 둥, 속상하다는 둥.
그 계기로 나는 완전 마음을 접었다. 나는 그 오빠에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란 생각에 상처 받았다. 그리고 다시는 좋아하는 티를 안 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도 서서히 마음 정리했다. 그 후 한 번도 남녀 관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다른 교회 오빠랑 사귀게 되었다. 이 과정도 참 파란만장하지만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됐고, 짝사랑했던 오빠보다 키도 크고 더 잘생긴 데다 참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그 짝남은 나쁜 남자였다니까!)
그렇게 실연의 상처가 한 번가고, 또 오기까지 다시 약 3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 4년을 짝사랑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만큼 새로 찾아온 사랑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찢기고 상처 났을 때 적절한 처방을 하면 상처는 빨리 아문다. 연고도 바르고 밴드로 감아주면 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메우라고 말들 많이 하지 않나. 내가 경험했던 첫 번째 사람으로 메우는 상처였다.
글로 간결하게 썼지만, 그 사이 일어났던 비바람과 쓰나미로 눈물 콧물 다 뺐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고 아팠는지 모르겠다.
책 한 권은 나올만한 연애스토리'들' 을 소설로 쓸 수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브런치 연애스토리 매거진을 따로 만들까...
남편이 종종 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