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에 만나면 자신의 이야기는 안 하고 제 이야기만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2시간을 만나면 1시간 반 정도는 제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그것도 기술이죠.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차원에서 참 고맙지 않습니까? 나머지 30분은 주변 사람이나 아이들 교육, 생활에 관한 통상적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떠들고 싶어서 오랫동안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뭔가 <대화> 하고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야기가 오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상담자가 내담자 대하듯 꼬리를 물고 이것저것 묻습니다. 저는 어색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잘 떠드는 편입니다. 잘 숨기지도 않습니다. 거짓말도 잘 못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은 하지 않지만, 별 상관없는 것들은 잘 이야기하죠. 상대방이 말하지 않으면 주변거리로 화제를 돌리거나 제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뭔가 질문을 하면 빙빙 돌려 대충 애 둘러 말합니다. 그런 만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씁쓸합니다. 나를 믿지 못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인지,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후자라면 굳이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라고 절대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관계란게 자연스럽게 문이 열려야 그 안에서 좀 더 편안할 수 있으니까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관계가 또 만나도 싶은 관계잖아요.
그렇지만 사람의 육감은 꽤 발달해 있기에 다 느껴집니다. 핵심은 저에게만 그런 게 아니란 겁니다. 결국 돌고 돌아 알게 될 일도 굳이 말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렇지만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정(精)은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떤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방어기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부정적 경험 없이 부정적 감정이 만들어지지 않고, 긍정적 경험 없이 긍정적 경험이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본인은 큰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보실피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가끔은 안타깝기도 합니다. 모든 것에 태연하고 의연한 듯 보이는데 관계 안에서 벽을 만드는 사람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또 다른 상처가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까지 예상하면서 상대방을 대하는 거겠죠. 안타깝습니다.
저는 이 관계는 잘 유지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한쪽이 기울어 균형이 안 맞거든요. 뭐든 균형이 맞아야 평화로우니까요.
오래전, 한 15년 인듯합니다.
친한 친구가 상담심리학 전공을 졸업하고 학교에 상담교사직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습니다. 중고등학교, 대학 시절을 같이 보냈고 꽤 가깝다고 생각한 관계였습니다. 제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친구와 샤부샤부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친한 친구였기에 서슴없이 제 생각과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친구가 아닌 상담자가 내담자를 대하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순간 조금 불쾌하기도 했지만 직업이 그러니, 그럴 수 있겠지 생각했죠. 그리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한참을 듣더니 해결방안을 제시한 후 제 심리 상태를 떠보더군요.
"에휴, 네가 그렇구나. 너 OO 해서 OO 한 생각하는 거 아냐? 그런 부정적인 마음은 별론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어? "
벌써 15년 전이라 말 토시하나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강 이런 반응이었던 듯합니다. 어쨌든 기억에 안 좋게 남아있으니까요. 제가 원한 반응은 그게 아니었죠. 마음에 벽이 생겼습니다. '아, 내 이야기 이제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이 들었죠. 그 뒤로도 몇 차례 같은 일이반복됐습니다. 조금씩 제 마음을 나누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떤 사건으로 인해 더는 연락하지 않습니다. 당시 관계를 끊을 때 들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친한 관계였니, 그런데 우리 관계는 여기까진 거 같아. 잘 지내고, 안녕."
이 말은 기억이 나네요. 마무리까지 쿨했다고 생각할 테죠. 15년의 시간이 물거품 되는 듯했지만, 한편으론 아쉽고 한편으론 시원했습니다. 불편한 신을 벗는 기분도 들었거든요. 친구는 자신의 어떤 경험과 지식으로 긍정적인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가까운 친구로부터 느낄 수 있는 어떤 진정성도 따뜻함도 없었어요. 반대로 저를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지금도 씁쓸하네요.
제 주변에 좋은 사람 많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도 이제 둘도 없이 평생 친구하자는 관계도 생겼죠.
어른이 되고 보니 관계에 얽매일 거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죽고 못 살아 반쪽이라고 말하던 친구와의 관계도, 가깝게 지내던 지인과의 관계도 말이죠.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고 질문하고 대화를 이끄는 지인도 상담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상담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전공을 살려서 일하지는 않지만, 다양하게 접목시켜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 좋은 공부였기에 제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배워서 남주는 관점에서 보면 배운 것을 활용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습니까,
그러나 관계 안에서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정 없는 '일'적 관계로만 접근하면 마음이 닫히고 말 겁니다. 관계가 피곤해지는 거죠. 저도 그럴 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사람의 성향에 따라 공감만 해줄 수도 있고, 직접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에 더 적극적 이어질 수 도 있으니까요. 그저 씁쓸한 겁니다.
가는 게 있는 데 오는 게 없는 걸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마무리가 되지 않지만,
뜬금없이 든 생각에 ,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생각정리를 할 겸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