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와 사람사이
피부 트러블을 자주 겪었다. 이 공기 좋은 나라에 살면서 무슨 소리냐 묻는 사람도 더러 있다. 공기는 좋아도 석회가 많은 물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요인, 식생활 등의 영향으로 인한 신체 반응이다. 내 평생에 피부 문제는 비립종과 한 달에 한번 마법의 시기마다 한 두 개 올라오는 뾰루지가 전부였다. 남아공에 산 뒤로 기미 주근깨는 기본이고, 극심한 피부트러블을 겪었고 쇄골, 목 뒤, 귀 뒤, 귓속 양쪽 볼, 등에도 피부 반응이 돌아가면서 나타났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만났던 한의사는 면역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드러나는 부분이 피부라고 했다. 식습관을 바꾸고 생활 패턴을 바꾸라고 말이다. 한국의 아리수로 세수하고 샤워하고 먹고 자고 지내는 7주 동안 다른 처방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피부는 점점 나아졌다.
귓불, 구레나룻 밑 피부, 목 뒤, 팔꿈치, 등까지 크지는 않지만 조금씩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귓 볼도 귓 속도 한 번씩 불편해서 만지다 보면 점점 더 심해졌다. 가려워서 만지고 불편하고 거슬려서 만졌다. 습진 연고, 아토피 연고를 발라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 번졌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생긴다. 지금도 귓불과 귓속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상처가 있다.
약국을 세 곳이나 갔고, 주변에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묻고 다녔다. 방문한 가정의학과에서는 목 뒤에 피부병이 머릿니라며 머릿니 샴푸를 처방해 주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처방이었지만, 얼마나 간절했는지 참빗으로 머리를 빗고 머릿니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변화는 없었다. 결국, 증상이 심해져 안 가려고 버틴 피부과를 결국 방문했다. 약 값을 제외하고 진료비만 1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전문 의가 내린 진단명은 습진이었고, 진단을 받기까지 5분도 안 걸렸다. 아토피 혹은 다른 박테리아 감염에 의 한 피부병이라고만 생각했지, 습진이라고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겪어 본 적이 없었으니 생각도 못했다. 뱀 허물 벗듯 피부가 다 벗겨졌고 밤잠 이룰 수 없이 가려웠다. 쇼핑리스트에는 샴푸, 샤워 젤, 연고, 또 다른 연고제까지 적어주었다. 얼른 낫고 싶은 마음에 의사가 사라는 품목을 다 샀고, 하루 3번, 2번, 1번 각각 적힌 사용법 대로 극진히 발랐다. 석 달이면 다 나을 거라던 전문의의 처방으로 생각보다 빠른 한 달 안에 치료가 됐다.
그렇게 상처에 연고를 바른 것도 아니고 그냥 뒀는데 자연적으로 상처가 치료되어 흔적 없이 사라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역시 건드리지 말고 가만 놔두니 없어졌구나' 생각한다. 그리곤 앞으로도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래놓고, 며칠 전에도 아직 익지도 않은 코 옆 뾰루지에 손을 대 덧났다. 역시 가만히 뒀어야 했는데 괜히 건드려 나흘 째 신경 쓰인다. 왜 그렇게 눈에 거슬리는 건 그냥 못 넘어갈까, 덧날 걸 몰랐던 게 아닌데,
물론 무리 수는 있다. 근본문제는 해결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 숨어 있다 다시 올라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들 눈길을 끌거나 성가신 일이 마음에 끌리기 마련이다.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극심하게 겪었던 피부병처럼 근본 원인을 알고 적절한 처방을 해야 말끔히 해결되는 문제가 있다. '문제'라는 건 그냥 둬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전문가를 찾지 않더라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언젠가 해결될 거라 방치하면 더 큰 탈이 난다. 적은 돈으로 해결하려다 점점 더 심해지는 피부병을 몇 달은 달고 살았던 것처럼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꼭 전문인의 개입이 필요하다.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전문인이 괜히 있는 게 아니고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잘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배우면 되고, 배우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전문인을 찾아 배워왔다. 한 가지 영역을 10년 이상하면 전문가 급이 될 수 있다. 전문가 자격증이 있어야만 전문의는 아니지만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게 증명서이든 주변 사람이 증인이 되든,
검증되지 않는 사람에게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대학전공도, 직업도, 악기, 댄스, 운동, 컴퓨터, 프로그램 등 모두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다. 전문가에게 그림, 영어를 배웠고,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배우고 내 안에만 꼭꼭 넣어두면 필요가 없다. 자격증 따낸 걸로 장롱 속에만 넣어두면 쓸모가 없다. 그래서 장롱면허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운전도 못하는 데 면허는 가진 사람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의 폭이 너무 좁다는 생각.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한계가 있다. 온라인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모임을 가지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겠지만 오프라인으로 만났을 때 바로 옆에서 풍기는 사람 냄새는 또 다르다. 전문성에 날개를 달아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라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좀 더 간절하게 생겼다. 다양한 케이스, 다채로운 생각을 목소리로 듣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게 현재 내게 필요한 설루션이다. 고립된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전공 분야의 전문가뿐 아니라 주변의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고 싶고, 닮고 싶다. 성장하는 중에 기댈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