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규칙을 배워야 하는 이유
며칠 전 운동을 끝내고 잠시 약국에 들렀다.
몇 가지 사야 할 영양제를 사기 위해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웬일로 주차 자리가 없다.
좁은 공간도 아닌데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았다.
우리 차 뒤로 또 차들이 줄 지어 빙빙 몇 바퀴를 돌았다.
몇 바퀴 더 돌다 늘 주차했던 자리로 왔는데 세상에 세 칸 평행 주차를 해 놓은 차가 있었다.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무섭게 노려만 봤다.
멀지 감치 걸어오는 운전자는
나랑 눈도 안 맞추는데 혼자서 말이다.
비상등을 켜고 서 있으니 아주 느린 걸음으로 와서 차문을 열고 올라탔고, 유유히 사라졌다.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성질낼 법도 한데 웬일로 화 안 내고
오히려 그러려니 봐준다.
그런데 틀렸다.
여기, 남아공이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거다.
이런 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동안 이곳에서
황당한 일을 겪거나 상식 밖의 일을 겪었던 터라
이런 일도 황당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나는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몹시 못 견뎌한다.
나의 FM 성향이 옛날에는 지금보다 강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고,
어른이 하라는 대로만 했다.
안 그럼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 꼭 지켜야 하고
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자랐다.
그 당시 사회도 그랬고,
그게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보니 FM이 꼭 좋은 게 아니었다.
이 말은 친구들, 선배,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자주 듣던 말이다.
약간의 비꼬는 말로 들리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살면서 보니 사람들은 나 같지 않았다.
규칙을 좀 비켜가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지금은 융통성도 있고 FM에서 꽤 많이 벗어났다.
그리고 늘 창의적인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FM인 사람은 창의성이 적다.
이게 또 교육의 문제라 말하고 싶다.
기질적 영향도 크지만,
주입식 교육의 폐해 말이다.
길들여지는 것.
아무튼,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이건 아니다.
그저, 잠시였다고 하더라도
상식 밖의 평행 세 칸 주차를 하고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에 몹시 불쾌했다.
차가 빠지자마자 뒤에서 돌던
자동차 세 대가 나란히 자리를 메웠다.
무사 주차를 하고 약국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이었다.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이 지역의 흑인 어린이들에게
규칙, 배려, 협동, 인내를 알려주고 싶다.
매주 화요일 2세부터 6세 사이의 아이들을 만난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한다.
오늘도 만나고 왔다.
아이들을 보면서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중간에
현지 부족어를 쓰는 교사를 끼고 활동을 한다.
내가 원하는 의도를
100% 전할 수 없어 아쉬울 때가 많다.
몇 주, 몇 달 동안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율동을 했다.
다양한 활동을 제시하면서
비슷한 시간 분배를 해서 활동했다.
아이들이 이제는 안다.
지금 인사했으니까 이제 책 읽고,
이제 두어 가지 활동을 하고,
손을 씻고, 간식 먹고 집에 간다.
그 지역은 빈민촌이라
이런 활동과 일상을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어른들도 수두룩하다.
오히려 교사로 섬기는 자원봉사자들이
더 신나 하기도 한다.
배운 적 없어서 모르는 일
경험이 부족해서 알 수 없는 것
누구에겐 당연하지만
다른 이에겐 당연하지 않은 삶
그런 모습을 보고 겪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배워서 알아도 어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이곳의 빈민가의 기회조차 없어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워서 알면 좋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