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염려증을 책으로 풀면 어때요
오랜만에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70대 중반의 어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셔서 가까이에서 말할 때도 큰 소리로 말해야 합니다. 간혹 그렇게 옆에 있는데도 큰소리로 말해야 할 때는 마치 제가 화를 내는 것 같아서 큰소리로 말하고도 주춤합니다. 어? 어? 한 번에 못 알아들으시고 수차례 뭐라고 했냐며 되묻는 어?라는 소리에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집니다. 그 탓에 전화로도 잘 안 들려 큰 소리를 내야 하니 화상 통화라도 하게 되면 얼화면을 켠 채 소리를 지르며 대화하거나, 전화기에 귀를 가져다 댄 모습만 보이니 보이스 통화가 차라리 낫습니다. 아직 총명하시고, 센스 넘치는 여성이시라 카톡으로 대화도 잘하십니다. 컴퓨터 조작 능력도 있으시고, DSLR 카메라도 잘 다루시거든요. 기계랑 친한 편입니다. 어머니가 찍은 사진은 사진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져요. 특히 접사 솜씨는 예술입니다. 보태니컬 아트를 배운 후 꽃 그림도 수준급으로 그리셔서 제가 오프라인 전시회할 때 어머니도 꼭 한번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화상 통화를 했습니다. 아이들과 한참 통화하더니 둘째 아이가 전화를 들고 옵니다. 저보고 통화하라는 신호입니다. 한창 공저 글쓰기를 하면서 동시에 책 쓰기 무료특강 준비 프레젠테이션을 만들던 중이었습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어머니 모습이 애처롭게 보입니다. 요즘 미세먼지가 많아 바깥출입을 거의 안 하셨다더군요. 얼마 전 보내드린 온라인 상품권도 여태 사용을 안 하셨다는 걸 보니 바깥에 안 나가셨나 봅니다. 언제고 통화를 해도 내용은 주 내용은 '걱정' 뿐입니다. 미세먼지가 심하면 마스크를 쓰고 나가는 게 아니라 외출을 안 하는 정도니 건강 염려증이 꽤 있으시죠.
나이 들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데 최대한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관심사는 '건강'입니다. 통화에서 99% 가 당신 건강과 우리네 건강이야기로 가득 이루어집니다. 노파심에서 시작된 대화는 전화기를 끊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건강관리는 이렇게 해라.
40대부터 칼슘이 빠져나간다. 영양제도 잘 먹어라.
탄수화물 줄여라.
운동은 유산소도 많이 하고 근력운동을 꼭 해라.
성인병 조심해야 한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체크해야 한다.
온갖 의학용어가 나오면서 건강에 대해서 염려를 늘어놓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꾸 짧게 대답하고 싶어 집니다. 한국과 남아공, 멀리 떨어져 산지 6년입니다. 그러니 눈에 안 보여 걱정이 늘어질 만도 하지요. 이해합니다. 저도 부모이기에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니까요.
밥 좀 잘 먹어라.
게임 그만해라.
책도 읽어라.
운동도 해야 한다.
바깥에 나가서 친구들하고 좀 놀고 들어와라.
밥 먹기 전에 간식 먹지 마라.
이렇게 쓰고 보니 어머니가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100번 이해가 됩니다. 엄마의 마음은 다 같은 거니까요. 나의 아이들도 엄마가 이런 잔소리할 때 대답이 짧다 못해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엄마 마음을 잘 모르겠지요. 그저 잔소리로 들릴 겁니다.
부모와 자녀는 그런 관계인가 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주고 싶은 좋은 것 다 주고 싶고, 당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깊은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자식은 그 위치에 되어봐야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제가 그렇듯이요.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에는 귀를 열고, 듣기 싫은 말에는 일단 한쪽 귀를 닫습니다. 물론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감사히 충고도 피드백도 받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한번 더 생각해 보기 전에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당황스러워할 겁니다.
오늘 통화가 다 끝나고 전화 끝무렵 마지막 통화타자는 남편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저 '네' 하고 대답하면 끝날 것을 이말 저말 억울해하며 토를 달아서 통화는 길어지고 결국 어머니는 마지막에 한마디를 답답하다는 듯 남기셨습니다.
요즘 세상에 유튜브 열면 온갖 자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운동하는 방법, 건강 식단 레시피, 똑똑하게 영양제 고르는 방법 등 무수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지요. 그러나, 그런 이론적인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경험과 조언들이 실제로는 더욱 도움이 됩니다.
글을 쓰고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는 글을 쓰려면 내 이야기가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경험을 들려줌으로써 비슷한 처지에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살아있는 스토리말입니다.
저는 어르신들이 꼭 책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자서전이어도 좋고, 그냥 경험을 통한 생각을 적은 글도 좋습니다. 70년 넘게 살아온 어머니, 80세 넘은 아버님, 60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친정 부모님도 모두 당신들의 지난 시간을 글로 남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어머니! 그 해박한 지식과 수많은 경험담 책으로 써보시면 어떠실까요?라고 진심으로 권하고 싶은 밤입니다.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도 아들이 찍 소리 못하고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말씀을 계속 새겨들을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