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꿈꾸며,
꿈의 도시 Paris 그리고 에펠탑.
이 안에, 너 있다.
까칠한 재벌 2세 남자 한기주(박신양)와 강태영(김정은) 주연의 드라마 <파리의 연인> 방영 당시는 2004년도,
그러니까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다. 당시 박신양의 카리스마 넘치는 " 애기야 가자!"는 친구 선후배 사이에서 유행어였다.
툭하면 애기야 가자를 외치는 교회 오빠들과 친구들,
뭐만 하면 "이 안에 너 있다"를 말하면서 분위기를 한껏 즐겁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마저도 자기 배를 가리키며 "이 안에 똥 있다"를 외쳐대기도 했다. 로맨스는 마다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로맨스는 더구나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덕분에 로망에 빠져 지냈던 시기였다.
파리가 궁금했다.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파리는 너무 멋졌고, 나도 언젠가 그곳에 가서 젤라또 사 먹고, 우아하게 앉아 트렌치코트를 입고 커피 한 잔 마셔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대학생 시절, 용돈 모으고 원조 받아 삼삼오오 짝지어 배낭여행 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당시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에 다니던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매일 출근해서 아이들과 복닥거리고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해서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오는 빠듯한 일상을 살았다. 왜 그때는 더 나이가 들고 가정이 생기면 그런 시간 갖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 모르겠다. 아니, 했을거다. 했지만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갈 용기가 없었다. 그저 휴가 낼 수 없는 입장을 핑계 삼아 용기 없음을 묻어뒀을 거다.
결혼을 하고 독일 시누이가 사는 곳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9박 10일 신혼여행. 겨우 결혼 휴가를 내고 떠났다. 독일에서 네 식구가 한국으로 결혼식 참석하러 오느니, 우리가 독일로 가고, 여행 비용을 부담해 주는 것이 더 낫겠다는 시누이 가족의 결론이었다. 좋았다. 독일 가본 적도 없었고, 그때는 휴양지로 신혼여행 가느니, 관광지로 여행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휴양지로 갈 걸 그랬나 보다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이유는 신혼 아니면 언제 휴양지가 서 여왕대접받으며 쉬어보겠냐는 거다. 그냥, 철없고 뭣 몰랐던 그때는 시누이 가족과 조카를 보고 독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신났다. 독일에 가서 조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나름대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8시간의 파리 경유 코스가 있었다. 8시간, 파리에서 8시간 동안 뭘 할까 고민을 했다. 여유롭게 음식점에 가서 차 한 잔만 마시고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여행을 하기에는 시간이 짧았다. 남편과 내린 결론은 노트르담 성당을 시작으로 세느강을 지나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에펠탑을 찍고 오기로 했다. 8시간 안에 돌아와야 비행기를 탄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여유롭게 보낼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했다. 우리의 목적은 그저 유명한 곳 앞에 서서 사진만 찍고 기록을 남기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사진 찍고 걷고 찍고를 반복하며 목표는 이루었지만, 낭만은 한껏 느낄 수 없이 그저 바빴다. 지금 생각하면 교통수단 이용해서 에펠탑 보고, 한 곳 정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올 걸 그랬나 보다 하는 후회도 조금 된다. 사실, 꿈에 가득 부풀어 처음 노트르담 성당 앞에 서는 순간 실망감과 함께 입이 떡 벌어졌다. 꿈의 파리는 어디 가고, 쓰레기만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세느강의 물은 그리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앗, 나의 로망."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파리의 전경 하나는 너무 멋졌다.
거대한 성당 건물이며, 여유로운 공원의 사람들 모습도 좋아 보이기만 했다.
어둑한 밤, 빛나는 가로등을 뚫고 나오는 에펠탑 전경도 보고 그 아래서 여유도 만끽해보고 싶다.
실제로 보면 사진 찍고 감탄하고 끝일 건데, 왜 그렇게 그게 하고 싶을까?
모르겠다. 다시 가고 싶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다시 가서 여유롭게 거리를 걷고 싶기도 하다.
독일 시누네 가기만 하면 여행할 수 있을 텐데, 코로나도 경제적 핑계도 핑곗거리가 쌓여만 간다.
그저 빨리 그날이 오기를 바라는 염원을 가득 담아 그림으로 승화시켜 본다.
위대한 성취를 하려면 행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꿈꾸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To accomplish great things, we must dream as well as act.
-아나톨 프랑스 (Anatole France)-
꿈꾸다 보면 그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