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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24. 2021

엄마 방은 주방이지!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


TVN 프로그램인 <신박한 정리>를 몇 회 본 적 있다. TV 아침 프로그램에서 정리에 대한 팁이 나올 때면 눈은 크게 뜨고, 귀는 활짝 열고, 손에는 펜을 쥐고 열심히 받아 적었던 적도 있었다. 덕분에 집안 살림을 정리하는 몇 가지 노하우를 알게 되었고, 꽤 오랫동안 잘 활용하고 있는 꿀팁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양말 말아 접는 법, 수건 접는 법, 탄 냄비 닦는 법, 물떼 제거하는 법 등 더 많은 팁을 프로그램과 글을 통해 얻었다. 정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영역이고, 스스로 하지 못하거나 귀찮아서 누가 좀 해줬으면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나 역시 제발 누가 좀 우리 집에 와서 깔끔하게 정리 좀 해줬으면 하는 바람 가득 품고 산다.




정리 정돈, 보육교사이기 전부터 내게 붙었던 수식어는 정리의 여왕이었다. 교사로 지내면서는 정리 정도는 일상이었다. 아이들의 교구를 정리하고 분류하는 일, 교실 내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은 언제나 교사 몫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 집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항상 거실의 책장 위, 피아노 위에 언제쯤이면 물건 하나 올라오지 않고 깨끗하게 지낼 수 있을지를 아직도 생각한다. 겉보기에 모델 하우스와 같은 깔끔한 집을 한번 가져보는 소박하지만 거대한 소원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주부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정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준다. 집안 정리와 인생 정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몇 달 전 이사할 위기에 놓였었다. 집주인이 집을 팔 테니, 우리도 다른 곳으로 이사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비좁은 집이 맘에 안 들었었고, 거실의 카펫 때문에 집 먼지가 많아 늘 이사를 고려하고 있었지만, 이사는 사실상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집 주인의 말은 50:50으로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머지않아 집은 팔렸고, 새집 주인은 우리에게 렌털을 이어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코시국에 우리가 나가면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는 일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지금 사는 집보다 저렴한 집을 구하기도 힘들고 위치적으로도 너무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이라 이사를 망설였고, 결국 같은 가격에 재계약을 하기로 했다. 가장 시급한 건 집 안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었다. 집 안의 구조는 6개월에 한 번씩 이동을 해왔다. 같은 공간에서 몇 가지 가구를 이동하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시너지는 상상 이상이다. 나오지 않을 각이지만 ‘고정관념’을 버리고 한번 해보자며 방 전체의 가구를 이동시켰다. 이사한 것만큼이나 힘들었지만, 덕분에 아이들 방을 각각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더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가구의 배치가 새로운 자리를 찾자 집은 새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덩달아 방이 생긴 아이들은 신이 났다.


책의 목차를 읽고 첫 장을 넘기면서 ‘공간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에 읽어 보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말 내가 느낀 공감이 맞는지 책을 읽어내려 가보기로 했다. 공간이 바뀌면 기분이 달라지고, 기분이 달라지면 매일의 일상이 바뀝니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면 결국 인생이 달라집니다.(14p)의 부분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초반에 다 담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먼저 책의 중간마다 등장하는 전후의 공간 정리 사진은 감탄을 자아냈다. 우리 집도 좀 저렇게 바꿔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공간의 제약이 있어 늘 짐을 이고 사는 느낌이지만, 다 필요한 물건들이라고 생각하면 덜어낼 것 없다. 사실 이미 바다 건너오면서 반은 덜어내고 왔다.


단 1평이라고 엄마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55p)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 집의 가구를 재시동하기 전에 내 자리는 없었다. 그저 잠을 자는 안방뿐이었고, 거실 식탁을 서재 겸 사용했다. 밥 먹는 시간이 되면 노트북이며 책 가지를 다시 다른 쪽으로 옮겨 놓기 바빴다. 번거로웠다.


”아빠는 아빠 방이 있고, 누나랑 나랑 형아는 저 끝방이 있고, 우리 다 같이 자는 방은 안방이잖아.“


막내는 갑자기 각자의 방을 나누기 시작했다.


”엄마 방은? 엄마 방은 없네?“


그 말을 듣고 있던 내가 엄마 방이 어딘지 묻자,


”엄마 방은 주방이잖아.“


그랬다. 아이의 생각에는 주방은 엄마 방이었다. 거실의 식탁 위치를 바꿨다. 식탁을 벽 쪽으로 붙이고 정말 1평도 안 되는 만큼의 자리를 확보했다. 노트북 하나 올리고 책 한 권 둘 수 있는 정도의 자리다. 의자 뒤로 몇 가지 책과 노트 부자재들을 놓는 자리를 마련했다. 단 1평도 안 되는 자리이지만, 이 자리는 ‘엄마 지정석’이 되었고, 아이들은 가끔 이 자리를 넘본다. 아이들은 엄마가 앉아서 글도 쓰고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는 옆에서 놀이한다. 시끄러운 거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자리가 좋다. 소원이 있다면 이사를 가서 정말 구석이라도 좋으니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내 공간을 만든 것이다. 테라스라면 더 좋겠다.


이 책에서는 정리의 기술 모으기 와 분류하기, 미니멀라이프 보다 먼저 라이프 추구하기


자신의 기준을 맞추기, 오른손 잡이 왼손잡이의 물건 배치 방법, 작품과 상패 등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하기, 사용, 전시, 보관의 상태로 분류하기 등 소소한 집안 살림 관리 노하우까지 나온다. 그리고, 공간 컨설팅을 했던 저자가 만났던 다양한 사람의 사례가 등장한다. 연예인도 정은표 씨의 사례도 나온다. 또, 생을 마감하기 전 집이 너무 더러워 자신이 떠난 후 더러운 집을 보여주기 싫어서 정리 컨설팅을 의뢰했다가 다시 삶을 살기로 마음을 돌이킨 사람 이야기도 등장한다. 내가 알기로는 공간 정리 비용이 저렴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공간 정리에 대한 로망이 있고, 갈급함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돈이 먼저 가 아닌 것이다. 공간 정리가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가 중요하고 특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꼭지였다. 많은 사람이 공간을 정리하는 걸 어려워해서 의뢰하는 것처럼 생각 정리가 안 되어서 생각 정리 법에 대한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도 했으니까,


공간 정리가 가져다주는 인생 정리에 대한 의미를 한 권을 다 읽고 보니 알 듯하다. 이 공간 컨설팅을 하는 저자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보면서 인생을 더 넓고 깊게 보고 경험하고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우리 집 주방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언제 정리하지?




< 비포 사진은 찍어 두지 않아서 비교   없지만, 분명 공간 이동으로  하나가 생겼다. 덕분에 첫째  별이는 자기 방을 갖게 되었다.>


비워야  것이 많다는 것은 후회와 불안이 많다는 것이다. 일단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버려야 한다. 특히 지난 관계에 대한 미련 말이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흐지부지되어 이유도 모른  외면당한 관계로부터 생채기가 남았다. 그때마다 ’ 사람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하라 말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감정은 가끔 나를  바닥까지 끌고 내려간다. 완전히 덜어내야 하는 감정, 후회와 미련이다.  하나는 너무 잘하려는 의지와 비교의식이다. 마음과 기준만을 너무 높게 잡지  , 남과 비교하지  , 비교는 어제와의 나와만  .  마음에 새기면서 살고 있다.  인생에서 남겨야  것은 나의 기록과 이야기. 그리고 나의 가장  업적 아이 셋이다. 버리기를 위한 버리기가 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추어 살지 않도록, 고정관념을 깨고 공간도 삶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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