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23. 2021

입시보다 더한 전쟁

아날로그 백신 전쟁의 현장.


"대체 이 짓을 며칠 째야?" 


추운 날씨에 바깥에서 목석 같이 서서 오들오들 떨었더니, 울화가 치밀었다. 

벌써 며칠 째인지, 

금요일은 1시간 대기 후 4곳에서 퇴짜, 

월요일은 40분 대기 후 4곳에서 퇴짜, 

오늘은 1시간 반 대기 후 역시, 3곳에서 퇴짜 맞았다. 

이미 저 앞으로도 보이는 만큼 줄이 있다. 


"아... 진짜 맞지 말까? 맨날 이 짓 못하겠네......" 


아무래도 백신 맞기도 전에 몸살로 고생할 것 같았다. 오픈 시간 1-2시간 전부터 대기하다가 겨우 오픈 시간이 지나서야 직원이 나온다. 오늘은 여분이 40개예요. 오늘은 70개예요. 오늘은 50개예요.라는 소리를 매일 듣고 있자니 속이 터진다. 그 순간,  뱀 꼬리처럼 길게 늘어졌던 줄은 한순간에 블록 해체되듯 흩어진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왜 미리 공지를 안 하는 걸까? 흰 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씨!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흰 종이 위에 '오늘은 몇 개'라고 써놓기만 하면 서로 덜 고생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피력하고 싶다. 결국 오늘은 몇 곳에서 싸움이 났다. 아침 일찍 와서 추위에서 파카며, 담요며 돌돌 말아 부츠에 모자까지 쓴 사람들이 오들오들 떨다 성질난 거다. 나야 영어로 쏼라쏼라 성질을 못 내겠으니, 얌전히 있는 거다. 따져봐야 뭐 얼마나 따지겠는가, 게다가 요즘 나라가 시끄러워서 인종차별도 무섭다. 


"여기 walk ins 온 사람들은 다 돌아가세요!" (Walk ins 이란 예약하지 않고 가서 대기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 센터에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벌떼같이 모여들어 결국 관계자가 소리쳤다.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다. 남아공 사람들이 하루를 새벽 일찌감치 시작하는 건 잘 알았지만, 백신 대기를 3일 동안 하면서 새삼 다시 깨달았다. 남아공은 하루의 시작과 마감이 빠르다. 오후 4-5시는 모두 퇴근시간이고, 저녁 8시가 되면 온 동네가 캄캄하고 조용하다. 제일 빨리 온 사람에게 몇 시에 왔냐고 물으니 새벽 6시에 왔다는 사람이 있었다. 오픈 시간은 9시, 제일 빨리 온 사람은 6시. 3시간이나 일찍 온 거다. 그에 비하면 나는 7시 반, 8시쯤 갔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추위에서 떨고 있으면 이런 시스템에 화가 난다. 그 사이에 와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나라는 백신이 남아돌아서 버린다는 말도 있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모자라는 걸까,  

 

현재 35세부터 49세까지 백신 접종기간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있다. 8월에 시노백 중국산 백신이 들어온다는 소문 때문이다. 아마도 현재 공급되는 화이자가 다 떨어지면 이후 사람들은 시노백을 맞아야 할 거다. 존슨 앤 존슨을 시작으로 화이자가 접종되고 있고, 그다음은 시노백이라는 소문이 돈다. 지난주 폭동으로 인해 백신센터들이 전부 중단되었었고, 폭동이 잠잠해질 무렵 재오픈했다. 미리 예약을 하라고 했지만, 예약을 해도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기를 하더라도 예약 없이 찾아오는 이유이다.  덕분에 예약자 우선으로 아무리 빨리 도착해서 대기표를 받아도 기본 4시간에서 6시간까지 걸린다. 


3일째 허탕치고 들어와 성질은 날 데로 났다. 


"너희들 엄마가 여기 어지르지 말라고 했지!? 왜 안 치워놨어. 여기는, 아이고~~ 무슨 쓰레기장이 따로 없네. 싹 치워 청소할 거야." 


새벽부터 나갔다가 2시간 만에 돌아와 괜한 화풀이를 아이들에게 한다. 엄마 기분이 왜 안 좋은지도 모른 채 눈치를 보면서 세 녀석이 구름 타고 다니는 듯 소리 없이 속도가 빨라졌다. 돼지우리 같던 집을 청소하고 나니 기분이 좀 진정이 됐다. 책상에 앉아 물 한잔 마시며 잠시 숨을 돌렸다. 

아! 여기 아프리카지. 

애당초, 무슨 일이든 빨리 될 거라는 생각은 접고 살았는데, 백신 접종 또한 오래 걸릴 거라는 건 몰랐던바 아니다. 하지만, 무슨 기대가 있었는지, 내가 서두르면 빠른 시간 안에 고생하지 않고 접종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나 보다. 한숨을 푹 쉬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카톡' 소리와 함께 진동이 울렸다. 오늘 우리처럼 허탕치고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접종을 하고 왔다는 지인의 연락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백신 여분 제한 없이 오래 기다리더라도 맞을 수 있는 곳을 알아내서 맞고 왔다는 거였다. 소식을 듣자마자 검색에 들어갔다. 집에서 10분 거리. 내일 아침 6시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내일도 실패하면 마... 몰라! 안 맞아 안 맞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심 내일은 꼭 성공하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집안 단속을 해놓고, 아침, 점심 먹을 것 까지 정리해 둔 후 첫째에게 쪽지를 남겼다. 밖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첫째가 일어나 나왔다. 


"오늘은 점심시간 넘겨서 올지도 모르니까, 잘 챙겨서 먹고 놀고 있어."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서 4-6시간씩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첫째를 믿고 동생들을 맡기고 나갔다. 코로나가 번진 후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오래 있는 게 더 위험하다. 채비를 하고 나서 거의 센터에 다다를 무렵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저게 줄이라고? 이 시간에? 지금? 몇 대야? 하나 둘셋넷... 와.. 30대도 넘을 거 같은데? " 


길게 늘어선 차들은 아직 열리지도 않은 게이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차에서 내려 주차 전에 줄을 서려고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과 인근 지역에서 걸어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설마, 오늘도 실패하는 건 아니겠지? "


얼른 주차를 하고 줄을 섰다. 세상에 내 앞에 한 40명은 되는 것 같았고, 예약하고 온 사람들과 예약 없이 온 사람들의 줄이 갈렸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차례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내내 이 다리가 내 다리 이은 지 넘의 다리인지 , 이 허리가 내 허리인지 구분이 안 갈 즈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의 3시간 만이었다. 미리 의자며, 커피, 간식거리를 싸온 사람들도 있었다. 의자를 못 챙겨 온 게 후회스러웠다. 그럼 뭐 어떤가, 바닥에 주저앉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해서 영어 낭독 챌린 지도하고, 책도 읽었다. 길고 지루하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활용했다. 그렇게 오전 7시부터 시작된 행렬은 오후 1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우리 차례만 말이다. 끝나고 나올 무렵에도 아직도 길게 늘어선 줄은 끝이 안보였다. 밖에서 보는 풍경은 끝이 아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또다시 신분 확인 절차만 3군데를 거쳐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팔을 걷고 주사 한 방을 맞고, Finish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굉장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하. 이거 한방 맞으려고 내가 몇 날 며칠을 고생을 하다니!" 


말은 그리 했지만, 1차에 코로나 예방 60% 2차까지 맞으면 95% 예방이 된다니 이런 고생은 달게 감수해야 하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돌아 나오는데 어디선가 "본쥬!" 하는 인사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프랑스 사람들은 대기 없이 바로바로 신원 확인 후 입장하는 게 아닌가? 와, 순간 마크롱 대통령님이 위대해 보이고, 우리 대한민국 대체 뭐하나 싶은 원망이 밀려왔다. 며칠 간의 추위에서 덜덜 떨었던 시간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뭐, 그랬다. 좀 서러웠다. 



최근 지인은 1차 접종 후 이튿날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아팠다고 해서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후유증이 가볍다. 주사부위의 약간의 근육통과 목 뻐근함, 피로함과 한기 정도 느껴진다. 덕분에 에라 모르겠다 낮잠을 이틀간 잤다. 아프면 안 되니까, 

누가 그러는데 백신에 북엇국이 도움이 된다더라!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는 카더라 같지만, 귀가 솔깃 집에 없는 북어가 그렇게 아쉽더라. 아쉬운 대로 부대찌개와 갈비탕을 끓여서 먹었다. 물론 현지 소뼈로 가능하다. 이렇게 접종 후 둘째 날이 지나간다. 언제 가서 줄 서고 고생했나 싶게 아침에 안 나가도 된다는 사실에 오늘 아침에는 너무 행복했다. 새벽에 참석해야 할 줌 미팅에 지각하고 늦잠을 자버렸지만, 오늘은 잠이 더 중요했다.  따뜻한 전기장판이 깔린 이불속이 이리도 행복할 줄이야. 

42일 후 2차 백신은 좀 더 수월하길! 





  



 





 




 

작가의 이전글 초록 눈동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