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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26. 2021

출가정신에 관하여

엄마 품을 떠난 다는 것.



태어나서 한 번도 가출 한 적이 없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한 번 기억이 난다.


”너는 주워와서 주선이야.“


내 이름을 가지고 항상 이렇게 놀리던 외삼촌이 있다. 대여섯 살쯤부터 초등학생이 되기까지, 내 반응이 재밌는지, 항상 같은 말을 하면서 장난을 걸었다. 꼬맹이 시절 그 말이 진심인 듯 느껴져 엄마한테 혼나고 난 뒤 집을 나섰다. 친엄마 찾아갈 거라면서 자그마한 가방을 메고 가방 안에 좋아하는 인형 한 개와 간식거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곤 집을 나갔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 이후론 한 번도 가출을 시도해 본 적이 없다. 엄마 아빠가 맘에 안 들어 도망가고 싶었던 날에도 절대 가출은 하지 않았다. 잠깐씩 교회 수련회나 회사 연수, 그리고 친구 집에서 잤던 날을 빼곤 내 의지로 가출한 적이 없다. 사실, 집이 제일 좋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죽이 맞는 친구와 함께 따로 방을 얻어서 재미있게 살아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응답하라 1988과 같은 그림을 꿈꾸며 말이다.

2019년 6월, 태어나 처음으로 정식 출가를 했다. 결혼을 시작으로 말이다. 친정집에서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친정집과 가까이 살았지만, 친정에 자주 가지 않았고, 요리도 손수 해 먹었다. 신혼이면 아내가 남편에게 요리를 해주고, 둘이서 꽁냥거리는 깨 볶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출가하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는 왜 엄마한테 반찬 해달란 얘기를 안 하니?“


결혼 후 몇 달이 흐르고 엄마는 말했다.


”어? 원래 결혼하면 알아서 해 먹는 거 아니야? 독립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알아서 해먹고 살아야지. 여태 엄마 밥 먹고살았는데.“


결혼 전부터 결혼하고 나면 나는 혼자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런 생각 하는 줄 몰랐다며, 엄마 음식이 맛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고 했다. 게다가 시집보내고 가까운데 살지만 며칠 동안 잠도 편히 못 잤다고 말했다. 속없는 건지, 철없는 건지 엄마가 그럴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 전날은 엄마랑 같이 잔다는데, 애교 하나 없는 나는 결혼 전날 엄마랑 같이 자지도 않았다.

아! 목욕탕은 같이 다녀왔다.

그 뒤로 아이를 낳고 셋이 되기까지도 아이들을 맡기는 일은 손에 꼽혔다. 내 자식이 부모님께 손주이지만, 내 편의를 위해 맡기는 일은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움을 안 받았다는 것은 아니다. 손주들 물질로도 충분히 퍼부어주셨고, 육아로 힘들 때 엄마 반찬이 그리워지면 얻어다 먹곤 했다. 다만, 셋 중 하나가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이상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두 시간 이상 아이들만 맡기는 일이 드물었다. 그렇게 살았는데도 더 독립이 필요했는지 한국에서 비행기로 20시간이나 떨어진 먼 이국땅까지 떨어져 왔나 보다.

내가 가진 출가 정신은 곧 독립이었다.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독립해서 알아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철이 일찍 들은 것인지, 이놈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 탓인지 잘 모르겠다. 먼 나라에서 살면서 가끔은 출가로 인한 지금의 삶에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다시 엄마의 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책임은 무거운 것이지만, 나쁘지는 않다.

그나저나, 엄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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