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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31. 2021

죽은 아이를 위한 새신.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암을 걸리는 것은 허허벌판을 지나다
예고 없이 쏟아붓는 지독한 폭우를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우산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고스란히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뿐이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급기야 마지막 장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최근에 지인 중에 암 투병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이유 모를 갑작스러운 잠수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다. 그 뒤로 들은 소식은 암 진단이었다. 내가 그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공감한들 몇 퍼센트나 공감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읽게 되었다. 책 속에 나오는 여러 사례가 마음을 울렸고, 암 환자 전문 의사로서의 고충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해외 나와 살다 보니 갑자기 한국에서 양가 부모님의 사고 소식이 들리면 어쩌나, 같이 사는 남편이 어느 날 암 진단이라도 받으면 어쩌나, 내 아이 중 한 명이 아파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가끔 불쑥불쑥 올라온다. 그저 불안이면 괜찮고, 앞서 봤던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책에서 나온 처방처럼 생각 자르기를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재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고 긴 싸움을 해나가고 있을까? 얼마 전 유명한 유튜버가 혈액 암을 앓다가 하늘의 별이 된 사연을 들었다. 밝고 긍정적인 데다가 머리를 싹 밀어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민머리인데도 너무나 아름답게만 보였다. 내가 대머리였어도 그런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다웠을 거다. 솔직히 그녀는 암쯤은 이겨 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말한들 당사자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지나왔을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할 수 없을 거다.


본 책의 내용 중에서 몇 가지 사례가 기억난다. 그중에 아이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엄마’ 이 한마디 뒤로 동이 틀 때까지 아이의 사망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품에 안고 있었던 엄마의 사연에 눈물을 떨궜다. 덕분에 아이의 시신은 동이 트고 나서도 따뜻했다는 의료진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아이가 떠나기까지 병원에서 신던 마지막 신발인 슬리퍼를 태우면 저승 가는 길 발이 시릴까 봐 차마 태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몇 달을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은 태워 버리고, 아이의 새 신을 사서 태웠다는 엄마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모든 관계에서는 거리와 선이 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라는 게 있다.


가끔 나이 지긋이 들었는데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의사나 젊은데 버릇없기까지 한 의사를 보면 어디서 배워 먹은 버릇인지, 의사를 하려면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철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을 때가 있었다.


"제 말대로 하지도 않으실 거고, 기분 나쁘면 가세요. 의사가 서비스 직도 아닌데, 제가 친절해야 될 필요는 없잖아요!"


응급실에 온 노부부에게 되바라지게 말하는 젊은 의사를 보면서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맞다. 의사는 서비스직은 아니다. 그렇다고 친절할 필요는 없다는 말에는 기함했다. 한편으론 하루 종일 환자에 시달려 얼마나 피곤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고집부리며 의사 말대로 안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일평생 환자 진료만 하면서 아픈 사람만 보고 사는 사람인데 어쩌면 그들이 아프지 않은데 다행인 건 아닐까 사려도 된다. 저자 말대로 600명의 환자를 혼자서 상대하면서 일일이 다 감정 이입하고 가족 같은 마음으로 돌본다면 가슴 아플 일이 600번이나 생기는 건데 얼마나 힘들까 하는 감정 오지라퍼로서의 공감이 되었다.


누군가를 돌볼 때에는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어야 이타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기심과 이타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볼 수 있고 스스로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이기심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다니 보니 공감이 된다. 하물며, 환자의 보호자들이 환자를 생각한다고 자기 몸을 홀대하면서 환자를 돌볼 수 없지는 않은가?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질병과 삶의 마지막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나와 있다. 사실 그 태도는 도 아니면 모와 같게 느껴진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한 번쯤 고심해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같은 질병으로 같은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읽고 자신의 마지막과 가족의 마지막까지 한 번 생각해 보며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떠나고 난 뒤 타인의 기억에 남을 내 마지막이 어떻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해 보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내가 떠난 뒤에만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 이 삶에서 드러난다. 




사실, 전에는 장기기증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죽고 나서 내 몸의 일부를 좋은 곳에 써서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게 없겠지만, 한편으로 죽고 난 내 시신이지만 내 몸을 해체한다는 것은 상상 안 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죽고 나면 썩어 없어질 몸 이왕이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다. 일단 암이 아니라면 내 장기를 기증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본 책에서 암은 장기기증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죽을 날을 어림잡아 받았다면 기 쓰고 애쓰지 말고, 그저 가족들과 좋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많이 웃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추억을 남기고픈 마음이다. 몇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전화해서 지난 고마웠다고 말도 전하고 싶고, 보고 싶다고 전하고도 싶다. 크리스천으로서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 친척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거다. 그리고 평안하게 천국 길에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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