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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ug 02. 2021

가려움증과 절박함

진짜 글쓰기와 그림 때문일까?



약 1년 전부터 쇄골뼈 근처가 가렵기 시작했다. 꼭 운동을 하고 나면 그 부분이 벌겋게 올라오고 가려워 벅벅 긁었다. 상처가 났다. 연고를 발랐다. 같은 행동을 두 달 정도 지속했다. 그리곤 어느 날 갑자기 괜찮아졌다. 이제 좀 신경 안 쓰고 살만하다고 생각할 즈음 목 뒷덜미 머리카락 끝나는 부분이 가렵기 시작했다. 가려울 때면 참지 못하고 벅벅 긁었다. 


"좀 그만 좀 긁어!" 


남편은 습관적으로  긁는 내 손을 잡아챘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려워서 손가락 끝으로 한 다섯 번 긁었다. 최근엔 가려운 부위가 두피 위쪽으로 타고 올라가는 느낌이다. 두피는 건조해졌고, 머리카락은 얇아졌다.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더 많이 빠지는 것 같다. 


"이러다 대머리 되는 거 아닐까? 무서워, 이봐봐 소갈머리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귀신같이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려 고개 숙인 내 머리통을 남편은 원숭이 이 잡듯 샅샅이 살펴봐준다. 머리가 빠지는 것도 두피가 가려워 긁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자꾸 머리가 많이 빠지는 것 같아 정보를 뒤졌다. 도브 뷰티바로 머리를 감으면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샴푸를 뷰티바로 바꿨다. 뻣뻣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는 머리카락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이 덜 빠지는 것 같아서 꿋꿋이 써왔다. 남아공 햇볕이 뜨거워서 그럴까? 남아공 물에 석회가 많아서 그럴까? 애꿎은 환경 탓을 해본다. 물은 중요하다.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럼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은데 나만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다시 또 유튜브에서 두피 가려움증 정보를 찾아봤다. 

'지루성 두피염' 


"어머! 지루성 두피염? 그거 지루성 피부염이 두피에 있다는 건데! 어머머 내가? 나?? " 


놀랐다. 그냥 아토피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루성 두피염이라니, 뭔가 더 중한 병을 가지게 된 기분이었다. (의사에게 진단받은 게 아니니 아직 정확히 어떤 이유이며, 어떤 질병인지 모른다.) 두피염이든 아토피든 뭐든 상관없으니, 제발 가렵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머리카락도 그만 빠졌으면 좋겠다. 탈모 예방법, 샴푸 제대로 하는 법, 비누로 감는 법, 식초로 머리 헹구는 법 등이 나왔다. 몇몇 전문가들은 지루성 두피염이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이라고 말했다. 약간 극단적인 말 같았고, 너무 특정인을 지목하면서 말하는가 싶었다. 이야기의 요지는 오랜 시간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주로 걸리는 병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니 눈이 동그래졌다. 


"나, 나잖아.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 쓰고, 영어 공부하고, 머리 숙이고 앉아 같은 자세로 그림 그리고, 나네? 진짜, 내가 글 쓰고 난 뒤로 이랬다고? 그림 그리고 난 뒤로 이런 거라고?" 


설마, 정말일까? 그런데 나만 그런 걸까? 

컴퓨터 게임은 해 본 적이 없다. 결국, 장시간 앉아서 머리와 눈으로 모든 작업을 하고 모든 열이 머리로 가면서 상체 근육이 약 해져 나타나는 증상이랬다. 코로나 핑계를 대보자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움직임이 줄었다. 행동반경도 좁아졌다. 결국 상황에 적응하며 내 할 일들의 영역을 넓히고 있어다. 다만, 불규칙적인 식생활, 기름진 음식, 페스트 푸드, 영양부족, 스트레스, 수면부족, 물 부족, 잘못된 샴푸 방법,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습관 그리고 뜨거운 바람으로 말리는 드라이기 사용까지 거의 다 해당됐다. 


글도 계속 쓸 거다. 그림도 계속 그릴 거고, 영어공부도 평생 할 것 같다. 그럼 곧 대머리 되고, 머리는 더 가려워질까? 그렇지 않으려면 생활 습관을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한동안 게을리했던 홈트를 다시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살 빼기 위해 했던 운동은 이제 생존하기 위해 하게 됐다. 밥도 좀 잘 챙겨 먹어보려고 한다. 잠도 일찍 자려고 하고, 물도 많이 먹고 있다. 샴푸는 도브 뷰티 바를 계속 쓰면서 식초에 페퍼민트 한 두 방울 섞어 미지근한 물로 헹군다. 머리는 두피만 빠른 속도 찬 바람으로 말린다. 이만하면 조만간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며칠이 지났다. 백 퍼센트 다 잘 지키지는 못했지만, 기분 탓일까? 조금 덜 가려운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도 잠시, 목과 두피가 여전히 가려워 벅벅 석석 소리가 나도록 긁자, 비듬 같아 보이는 각질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맙소사, 정말 신경 쓰인다. 씻고 나서도 휑한 가르마 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는 각질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바디 용품점이나 마트에 가면 헤어 제품 근처에 꼭 간다. 이전에는 미용을 위한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치료를 위한 목적이다. scalp란 단어와 problems, solve라는 단어만 보면 눈이 멈춘다. 30 란드 짜리 비누 하나도 비싸다며 투덜거렸던 내가 오늘은 도브 비누의 절반밖에 안 되는 80 란드 짜리 비누를 덥석 집어 들었다. 일단 써보고 효과 좋으면 또 사겠다는 반의반 심정이었지만, 나을 수만 있다면 뭐라고 하고 싶다. 한국처럼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치료제도 받으면 좋으련만, 이곳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지, 두피 가려움증에 대에 빗대어 보지만, 삶도 똑같다. 사람은 자기의 결핍을 위해 애쓰며 산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잠이 부족하면 낮잠도 잔다.  아프면 약을 먹고, 지식이 부족하면 공부를 하고, 기술이 부족하면 배우고 연습한다. 돈이 부족하면 돈을 벌 궁리를 하기 마련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서 하는 상황이 되면, 그건 결핍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고, 무언가 절박하다는 뜻이다. 살만하니까 이만큼만 하고, 견딜만하니까 이만큼만 하고 사는 영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군가 그랬다. 임계점을 뛰어넘으면 한 단계 도약하며 성장할 수 있는데, 그 임계점까지 가지 못하고 다시 내려오면 절대 임계점을 넘는 경험을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치다가 주리를 틀며 때려죽여도 하기 싫었던 시기가 있었다. 엄마 몰래 학원도 제치고, 선생님한테는 연락도 없이 안 갔다. 결국, 양쪽 다 들켜서 호되게 혼나고 다시 연습실로 들어갔다. 전공자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피아노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지겨워서 때려치우고 싶었다. 계속 같은 곡 치는 것도 싫고 선생님은 어려운 곡만 주고, 아무리 쳐도 늘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하루는 내 손가락이 부러지나 건반이 부러지나 오기를 부렸던 날이 있었다. 급기야 눈물보가 터졌다. 어차피 전공할 것도 아닌데 해서 뭐하나 그냥 말지, 마음먹었다가 다음 날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았다. 피아노를 치는데 뭔가 술술 쳐지는 느낌이 들었고, 선생님의 칭찬이 이어졌다. 되는구나! 되는구나 싶었다. 


평생을 살면서 내가 임계점을 넘어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곰곰이 곱씹어 본다. 넘은 것도 있고 넘지 못한 것도 있다. 아무리 무던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 고로, 더 미친 듯이 노력해야 할 타이밍이다. 바로 지금이 그때인가 보다. 내가 선 영역에서 무던하게 꾸준히 노력하면서도 뭔가 멀리는 아니지만, 살짝 넘고 싶은 영역이 있다. 돋움 발판이 필요하다. 

아이들 간이 계단이라도 가져다 놓고 뛰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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