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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ug 18. 2023

숙주랑 두부 사러 가기

한 번 하면 열 번도 가능하다. 




남아공살이 6년 만에 홀로서기 중이다. 남편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졌다. 

남아공에 온 이후로는 늘 같이 이동했다. 차가 한 대 일뿐 아니라, 같이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가끔 남편과 따로 일을 봐야 할 일이 있으면 나는 집에만 있거나,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타고 외출하곤 한다. 이제는 남편이 집에 없어도 차만 있으면 나 혼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무서워서 하지 않던 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일을 볼 때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만 먹으면 얼른 바깥일을 보러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긴장은 된다. 여전히 남아공의 치안은 겁이 난다. 간혹 혼자 밖에 다니면 남편은 목소리를 높인다. 귀찮아도 혼자 못 가게 말린다. 위험하다며 말이다. 


"혼자 있을 때는 차 문 꼭 잠가." 

"집에 있을 때도 혼자 있을 때 현관 열어두지 말고." (철문이 2,3개 된다. 전부 열쇠로 열어야 한다.) 


며칠 전에는 자동차 수리를 받으러 갔다가 아이들 픽업시간과 맞물렸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20분 거리, 큰 도로를 건너야만 한다. 자동차 수리점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40분 거리, 아무리 걷는 걸 좋아하는 나도 차도 중심 도로를 걸어서 갈 엄두를 못 낸다. 

차 부품은 오지도 않고, 아이들은 이미 끝나서 나왔을 테고 마음이 급해졌다. 급한 대로 미안함을 무릅쓰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다행히 시간이 맞아 지인도 아이들 픽업해서 집에 막 들어왔는데, 다시 차를 끌고 우리 아이들 픽업을 도와줬다. 무척 감사했다. 그 사이 나는 자동차 수리점에서 집까지 걸어서 약 20-30분 걸리는 거리를 열심히 뛰어서 약 15분 만에 도착했다. 지인이 집에서 떠나 학교에서 집까지 애들 픽업해서 오는 시간에 맞춰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낮 도로는 사람 없이 한가했다. 그리고 쌩쌩 달리는 차들이 여유롭게 지나다녔다. 자동차 2차선 도로 양 옆은 주택가이다. 조용한 주택가. 

아무도 없으니 오히려 안전한 것 같지만 가끔 나타나는 시커먼 흑인 청년들이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그냥 흑인이어서가 아니다. 가끔 대낮에도 타깃 삼아 못된 짓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전 불감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내 몸 내가 챙겨야 하는 게 맞다. 지갑과 휴대폰, 집 열쇠가 들은 크로스 백을 하나 메고 있었다. 앞으로 달릴 땐 가방이 보이지 않게 뒤로 돌려 맸다. 사람이 뒤에서 올 땐 가방을 앞으로 안고 걸었다.

'아, 가방 그냥 차에 두고 열쇠랑 휴대폰만 들고 올 걸' 

걷는 내내 생각했다. 그날 산에 다녀와서 복장도 운동복이었다.  운동을 더 할 겸, 시간을 맞출 겸, 위험한 상황을 피할 겸, 열심히 뛰었다. 아이들이 도착한 시간과 맞물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날도 내가 걸어서 집까지 갔다는 사실은 남편과 지인들에게 걱정이 되는 요소가 됐다. 그냥 삶이 이렇다. 


이런 이유로 혼자 다니는 게 썩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몇 번 해보니까 그냥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라는 마음이 더 크다. 사람 오가는 길에서 무슨 일이나 일어날 까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만 하는 곳이긴 하다.) 


혼자 다니는 여자 많다. 남아공에 사는 여자들 혼자 운전하고, 혼자 장보고, 혼자 아이들 픽업하는 사람도 많다. 외국인 중에도(아시안을 포함 다른 나라 사람) 혼자서 차 끌고 일 보는 사람이 많다. 내 지인들도 꿋꿋이 잘 다닌다. 아무런 문제 없이!  

그런데, 아시안은 좀 더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아무리 머리 염색하고, 피부색이 차이가 나도 외국인은 눈에 금방 띄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시안이고, 몸집도 왜소하고 머리색도 검다. 그냥 봐도 아시안인 게 티가 풀풀 난다. 눈에 띄지 않고 섞이고 싶어서 1,2년 차 때에는 노랗게 염색도 했었다. 그래도 아시안은 티가 난다. 


오전에 처음으로 중국가게에 혼자서 두부와 숙주를 사러 다녀왔다. 차마, 한국가게까지 혼자 차를 끌고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중국가게로 갔다. 가는 길은 수월했다. 아는 길이지만, 네비를 보고 따라갔고, 오전 시간이라 차도 별로 없었다. 그전에 복싱 무료 클래스를 신청해 둔 게 있어서 클래스 건물에 주차를 하고 가뿐하게(?)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  사실은 엄청 힘들어 땀에 찌들어 나왔다. 이곳 모든 주차장에는 주차를 봐주고 팁을 받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마저도 혼자일 때는 긴장이 된다. 

남편이 없이 혼자 외국인들만 있는 모임에 가본 적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영어를 더 못했을 때였는데, 오늘은 느낌이 좀 달랐다. 모임에 들어가 50분 간격 한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 역시 운동은 격할수록 좋다. 


혼자 차 끌고 무슨 두부랑 숙주 사는 게 대수냐 싶다. 좀 유난이긴 하다. 그러나 차를 끌고 나가는 사실보다 주차하고 볼 일을 보고 다시 차에 올라타 집까지 오는 시간이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누군가 내게 쓱 걸어와 이유 없이 말을 걸려고 할 때면, 그 사람이 흑인 남성이라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반사적으로 발차기라도 할지 모르겠다. (나 태권도 유단자다. 오늘은 복싱 배웠다.)   


혼자 운전하고 다녀오는 것도 한 번 하니까 두 번, 세 번도 쉬워진다. 지금까지도 뭐든 그랬다. 조금 겁이 나는 것도 일단 시작하고 보면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 했다는 건 열 번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백 번도 할 게 될 거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살았었고, 여기서라고 못할 게 없으니까. 

하겠다는 마음과 의지가 중요한 거 아닐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닥치면 다 하게 되는 것처럼 그냥 마음먹고 하면 되는 거다. 뭐가 되었든. 


남편은 요즘 치아가 너무 아파서 치과치료를 받고 있다. 뭔가 속 시원한 진료를 받지 못해 석연치 않아 한다. 오늘 저녁에도 이가 시리고 전체가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봤다. 보다 못해 안쓰러워 한 마디 던졌다. 


"혼자 한국 다녀와! 나 이제 혼자 마트도 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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