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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ug 23. 2023

어제는 감자탕이 쉬어 버렸고, 오늘은 갈비찜을 태웠다.

감자탕에 들깨 넣지 마세요!

어제는 감자탕이 쉬었고, 오늘은 갈비찜을 태웠다.



"감자탕 고기 마감하겠습니다. "


매번 벼르다가 일찍 마감이 되어서 못 산 감자탕 고기 이번에는 기필코 사겠다고 카톡방에 안내가 올라오자마자 주문했다. 주문한 지 20분쯤 지나자 마감  톡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감자탕을 끓일 수 있겠구나 신났다.

감자탕 좋아하는 남편, 끓여주면 잘 먹는 아이들 먹이려면 부지런해야 된다. 남아공에서는 사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 정육점에서도 등뼈 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 마트 방에 올라오는 고기류는 손질이 좀 다르게 느껴진다. 한인 음식점 하시는 분이 이따금씩 감자탕을 끓여서 팔기도 한다. 타이밍이 좋아야 한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으니, 언제나 필요한 건 스피드다. 가끔은 돈만 내면 편리하게 사다 먹을 수도 있는 음식을 포기하기도 한다. 입맛이 안 맞으면 그마저도 별로다.


감자탕 고기 2킬로와 갈비찜 고기 1킬로를 주문해서 받았다. 부랴부랴 재료를 사다가 감자탕을 끓였다. 기본 2시간은 고기 핏기를 빼야 한다. 2시간을 푹 고아야 야들야들해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감자탕 집에서 사 먹을 수 있는 한 그릇도 뚝딱 끓여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공들인다. 재료 준비, 손질, 육수 끓이고, 고기 삶는 시간만 해도 꽤 들어갈 거다.  늘 그렇지만 음식을 하다 보면 음식 장사하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적은 양을 만드는 데도 우왕좌왕인데 그 많은 양을 어떻게 준비하나 싶다. 그래서 음식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딱 맞다.

 

시래기를 사다 둔 게 없다. 현지 마트에서는 안 판다. 한인 야채상을 통해 사야 한다. 보통은 삶아진 것을 사던가, 무청을 삶아서 말려 넣어서 먹기도 했다. 남아공에 와서 생전 처음 직접 무청을 잘라 삶고 옷걸이에 가지런히 널었다. 며칠간 그늘에서 바짝 말렸다. 시래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놀랍고 흥미로웠다.

요즘은 그런 열정도 없다. 그냥 이 없으니 잇몸으로 산다. 시래기는 됐고, 마트에서 흔하게 파는 근대를 사서 넣기로 했다. 시금치, 근대는 현지 마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한 단을 사다가 고기를 삶는 동안 다른 냄비에 푹푹 끓였다.  갖가지 국물, 찌개, 탕 등 남아공에 와서 음식 하면서 이것저것 해 본 덕에 감자탕도 처음은 아니다. 시간 계산을 잘 못해서 저녁에 먹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에 먹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대접에 밥 조금 고기 뼈 하나 넣고 팍팍 끓인 근대와 포실하게 익은 감자 하나 얹어서 한 그릇씩 먹고 학교에 갔다.

한 솥 끓였으니 이제 3끼는 푸지게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아침 감자탕 먹고, 점심에 일이 있어 외출하고 들어와 저녁을 먹으려고 뚜껑을 열었는데, 아뿔싸! 거품이 보글보글, 이게 뭐지? 시큼한 향이 올라온다.


"헉, 쉬었어? 벌써? 아직 실내가 이렇게 추운데? 설마! 안 돼!"


팍팍 끓였다. (쉰 음식음 팍팍 끓인다고 살아나지 않는다! 다만, 막 가려고 할 때 끓이면 괜찮기도 하다.)


"이제 막 가려고 하는 거겠지? 이거 아까워서 안되는데."


마지막 선택이 화근이었다. 들깨를 넣을까? 말까? 따로 넣어서 먹을까? 그냥 국에 넣어서 팔팔 끓일까? 혼자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들깨를 냄비에 부은 게 화근이었나 보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는 게 내 신조인데! 아 이번에는 틀렸다. 할까 말까 할 때도 안 해야 되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다. 가령, 말의 경우 그렇다. 나중에 해도 되는데 미리 해서 일을 그르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대망이다. 아까워 어쩌나.  

따로 넣어서 먹었어야 했는데, 들깨를 넣으면 음식이 빨리 쉰다는 사실을 모른 것도 아니었다. 신혼 초에 여러 번 들깨 넣은 탕 쉬어 본 경험이 있어서 안다.


국물은 맛이 살짝 갔는데 다행히 고기는 멀쩡하다. 등뼈만 건져내서 저녁 시간에 다 먹어버렸다. 국물이랑 근대는 아까워 몇 번을 뚜껑을 열어 들여다봤다. 아슬아슬할 때는 안 먹어야 한다. 못 먹을 걸 뻔히 알면서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 날 오후가 될 때까지 먹지도 못하고 결국 쓰레기통에 버렸다. 못 먹는 음식 나둬봐야 좋을 게 하나 없다. 쓰레기를 발효시킬 일도 없고 뭣하러 끌어안고 있나 자리만 차지하게! 미련 없이 싱크대에 부어 버렸다.


갈비찜 고기도 상하기 전에 요리해야 한다. 

고기 핏물 빼서 얼른 갈비찜을 끓였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물도 넉넉히 넣었겠다 푹 삶자! 고기야, 야들해져라! 생각하며 온갖 재료를 넣고 방으로 왔다.

이상하게 자리 앉으면 다른 거 다 잊어버린다. 주방에 뭐를 올려놨는지, 내가 뭘 하다가 왔는지 조차 잊어버리는 날이 잦아졌다. 설마 치매 초기 증상은 아니겠지 위로해 본다. 자리에 앉아할 일을 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불현듯 스토브에 올려놓은 갈비찜이 생각났다. 갈비찜이 맛있게 졸아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내려갔는데  이게 무슨 냄새인가, 탔다. 타고 있다! 맙소사.

불안할 때는 그 주변을 안 벗어나는 게 맞다. 그림을 그릴 때는 냄비를 몇 번이고 태워 먹었다. 그때마다 정신머리 챙긴다며 보초를 섰다. 요즘에는 글 쓰거나 코칭하다가 냄비 태울 뻔했던 경험이 있다. 화들짝 놀라 내려가면 탄 냄새와 타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절할 노릇이다.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니 냄비 바닥과 고기가 딱 붙어 타닥거리고 있었다. 얼른 고기랑 야채만 건져 다른 냄비에 옮겼다.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양념을 새로 하고 탄 부위는 잘라서 버렸다. 다행히도 많이 타지 않아서 냄새가 가득 베이거나 못 먹을 정도가 아니었다. 기사회생시켜 맛있는 갈비찜으로 둔갑해 식탁 위에 올려놨다.

이건 비밀인데 탄 국물을 다 버렸기 때문에 고기육수가 다 빠져나가 맛이 밍밍해졌다. 물을 넣고, 간장, 물엿, 후추, 간 마늘을 넣고 푹푹 더 끓였지만 뭔가 2% 부족했다. 냉동실에 넣어 둔 마법의 가루! 소고기 다시다를 꺼내 얼른 톡톡 집어넣었다. 가족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가끔 이런 센스(?)가 필요하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싶었다. 부랴부랴 주문을 했다. 찾으러 가려면 장소까지 차를 몰고 20분, 왕복 40분은 걸려 다녀와야 한다. 귀찮은 일이다. 주문 5번 할거 2번만 할 때도 많다. 호기롭게 요리를 해서 짠! 하고 내 줄 생각이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 보고 싶어서, 다들 배 두드리며 역시 우리 아내, 우리 엄마가 해 준 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들어 볼 요량이었다. 다들 어떻게 든 준비된 음식을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내 마음이 한쪽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늘 '완벽'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당당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나 보다. 이게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진 내 마음이다. 살다 보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음식 하나조차도 내 실수든 실력이든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데 다른 일은 어떨까?


웃으면서 털어버렸다.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어쨌든 먹었잖아."

"다음번에는 미리 들깻가루 넣지 말아야지."

"갈비찜 오래 끓일 때도 중간에 살펴줘야지, 타이머를 맞춰야겠다."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 놓고 그대로 하면 된다.


감자탕 고기 올라오면 다시 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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