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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Oct 25. 2023

개미 바게트를 먹을 줄이야

생각을 달리하면 괜찮다.



기다란 갈색 종이로 된 빵 봉투에서 여러 가지 시드가 붙어있는 단단한 바게트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나의 페이보릿 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려고 기분 좋게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는 순간 빵을 집어던졌다.


“아악!”


아주 작고 새카만 개미떼가 군집을 이뤄서 바게트 빵 전체를 덮었다. 하마터면 빵 전체에 뿌려진 시드인 줄로 착각할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최근 들어 가장 기운 빠지는 순간이었다. 빵에 목숨을 걸 일이냐만은, 바로 전날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겨우 찾은 바게트였다. 빵을 또 사려면 20분 거리로 나가야 하고 중요한 건 오늘! 지금!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국처럼 문 열고 나가면 파리바게트 같은 맛있는 빵집을 가까이에 찾을 수도 없다. 원하는 빵을 사려면 오전에 가야 살 수 있다. 그 마트 바게트는 오후에는 다 팔리고 없다. 5시면 마트 문도 닫는다. 오전 8시, 마트는 이제 막 문을 열었을 텐데 나는 지금지금 당장 먹야겠다. 오후에 마트에 들를시간도 없는 날이다.

이걸 어쩐다. 깜짝 놀라 집어던진 바게트를 싱크대 위에 들고 두드리면서 신나게 털었다.


"떨어져라. 제에발 떨어져라."


주문을 외우 듯 빵 안쪽 구멍에 들어가지는 않았을지 샅샅이 뒤지면서 털었다. 손가락을 튕기면서 어디 들어간데 없나 빵 사이 결까지 윙크를 하고 들여다봤다. 안 먹더라도 털어내서 일단 정리를 해야 할 판이었다.  


개미 시체처리는 남아공에서는 일상이다. 처음 남아공 왔을 때 거실 구석 곳곳에 쌓인 개미 흙더미를 보고 기함을 했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아니, 집 전체 벽 안쪽, 바닥 아래쪽이 개미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다. 그냥 같이 산다. 한국에서 살 때 하루는 아랫집에 몰린 개미가 벽 가스 배관을 타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던 경험이 있다. 그때 주방 쪽으로 들어와 개미가 떼를 이룬 걸 보고 소리쳤었다. 남아공에서 처음 개미떼를 봤던 날 그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온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근질거렸다.

개미 한 두 마리쯤이야 검지 손가락으로 눌러 쉽게 뭉개버린 경험이 허다하다. 한두 마리 죽일 때는 '아 내가 잔인하군'이라고 콧웃음 치며 말할 정도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주방 싱크대 위를 점령한 개미떼를 비장한 마음으로 손바닥으로 쓸어서 싱크대에 버린다. 약을 뿌려 휴지로 닦아낼 때도 있다. 뭉쳐진 흰색 휴지 밑면은 까만색으로 변해있다. 일상이 돼버렸다.


봄, 여름, 가을이면 늘 개미떼 구멍을 찾아다니면서 실리콘으로 막는다. 어디서 또 줄지어 나오는지 보이면 또다시 막아야 한다. 주방, 싱크대, 식탁, 책상, 소파할 것 없이 개미는 여기저기 사방에서 나타난다.  

밤이면 물기 하나 없이 깨끗이 닦아 둔다. 혹시 몰라 아침에 파티를 벌였을 개미들을 소탕하기 위해 아침엔 주방 싱크대와 상판을 가장 먼저 점검한다. 탐정수사하듯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를 돌려 눈을 싱크대 상판에 가져다 댄 상태 포복을 낮춰 스캔한다. 아무튼 이런 개미들의 등장은 언제고 반갑지 않다. 겨울에 먹을 식량을 봄 여름 가을 동안 부지런히 도 모으는 개미들이 대단하고 딱하기도 한 생각도 든다만, 나는 개미 떼가 싫다.


결국, 빵을 개미 한 마리 없는 것까지 확인을 하고 탈탈 털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 그거...... 먹... 는 거야.....?"


남편이 말을 늘리면서 물었다.


"응, 자 생각해 봐. 여기가 지금 무인도인데, 빵이 이거 하나뿐이야. 그럼 먹겠어 안 먹겠어?"


사실 고민을 엄청했다. 매일 아침 아이들 도시락을 싼다. 도시락 쌀 때까지 분명 개미가 없었는데 몇 분 만에 갑자기 몰린 걸 알았기 때문에 털고 먹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그래도......"


"자, 먹어볼까? 먹고 죽나 안 죽나."


웃음소리로 공백을 메우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완성했다. 그리고 한입 베어 입에 넣고 와구와구 씹었다.

맛은 꿀맛이었다. 내 가설도, 내 행동도, 내 생각마저도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점점 더 털털하고 의연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사나 보다. "그게 뭐 대수라고." 하는 마음이 어떤 문제 상황을 만날 때마다 의연하게 찾아온다. 좋은 의미로 마음이 넓어지고 관점을 달리하려 애쓰다 보니 달라졌나 생각도 든다. 벌써 먹은 게 한 달 전인데 아직까지 멀쩡한 걸 보니 별일 없었다.


그래도, 다음에는 개미 바게트는 안 먹어야겠다. 미리 꽁꽁 잘 싸매놓던가 당일에 먹어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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