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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Sep 28. 2023

남아공 치과이야기

치과에 대한 기억, 치료에 대한 기억



치과는 언제 가도 긴장되는 장소다.

어른이 된 지금은 담력이 좀 생겨서 그나마 ‘뭐 그 까이거’ 심정으로 치과 베드에 눕지만 긴장이 안될 리 없다. 어렸을 때는 치과 냄새만 맡아도 긴장했다.

가슴에 올려놓는 수건과 휴지, 다른 사람이 치료받는 윙윙거리는 소리, 딸각거리는 썩션 페달소리는 '나도 그런 치료를 받아야겠구나'란 생각에 긴장이 두 배는 더 됐던 것 같다.  

경험이 무섭다고 역시나 의자에 누워 의사가 오기를 두 손 두 발 가지런히 모아 천장의 티브이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시간이란, 긴장 그 자체다.

얼굴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어쩌면 핏방울도), 그라인더로 치아를 갈 때 느껴지는 진동, 아무리 벌리려 해도 더 벌어지지 않던 내 작은 입은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불가항력적으로 더 크게 벌어졌다. 아랫니를 갈고 있지만 그라인더 헤드가 자꾸 내 윗니를 건드렸다. 이러다가 아랫니와 윗니가 동시에 갈리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움찔거렸다.


며칠 전, 아니 지난주부터 아래쪽 어금니 하나가 계속 시렸다. 물을 마실 때 음식을 씹을 때 심지어 양치할 때조차도 시리디 시렸다. 한 달 전, 남편은 치통에 시달렸다. 찬음식이 아니라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시리다는 거였다. 음식 먹을 때마다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턱을 부여잡았다. 그리곤 한동안 침묵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같이 시린 기분이었다.


“나이 먹어서 그래~”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치과에 가보라며 덧 붙인 농담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8살이나 많다. 외모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만, 어제 가수 변진섭의 오래된 노래(나는 모르는)를 가사 토씨하나 안 틀리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세대차이를 느꼈다. 아 이런 세대 차이란,

남편이 잇몸이 아프고 이 시리다고 할 때 옥수수 사다가 삶고, 삶은 물로 가글을 해보라고 했었다. 어디서 주워 들었는데 치과 의사들이 싫어하는 민간요법이란다. 이 민간요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치과에 사람이 안 온다고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손해 볼 거 없는 장사 옥수수 삶은 물로 가글 한 지 3일 만에 남편은 치아가 덜 시리다고 했었다. 또 어디 찾아보니 뜨거운 음식에 이가 시린 거라면 이가 썩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남편은 그 뒤로 치과에 가서 3회 치료를 받았다. 가장 결정적인 치료는 여기서는 너무 비싸서 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머지않아 한국에 가서 임플란트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할 정도다. 급한 불은 껐고 그 뒤로 별일 없이 지내왔다. 그러다 갑자기 내 이가 시려온 거다. 남편에게 옥수수 물도 삻아 주고 나름 신경을 썼지만, 그것 말고 해 줄 수 있는 건 공감뿐이었다. 공감을 많이 못 해준 게 흠이었다. 꼭 이럴 때는 그다음 차례가 나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생기게 말이다.




남아공에 처음 왔을 때 만난 한인 부부에게 치과가 어딨는지 물었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살면서 적응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는데, 그중 하나가 병원이다. 둘째 다엘의 고도 원시와 내사시 치료로 인해 안과는 필수로 알아야 했다. 치아는 문제가 생길 때 방치하면 안 되기에 치과 정보도 필요했다. 그때 이야기 하며 들었던 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걱정을 불러왔다.   


"우리는 여기서 치과 안 가요. 에이즈라도 걸리면 어떻게 해요. 얼마나 청결하게 하는지 모르니까."


당시 그 말을 듣고 나도 치과 가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현실은 그러거나 말거나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음식을 씹지도 못할 거란 생각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라는 생각으로 치과에 갈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위생적으로 운영했다. 의사 옆에서 어시스트는 일회용 비닐을 바꿔 끼우고 의료기기를 소독하고 있었다. 안심이 됐다. '그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다들 치료받아야 사는데 말이야.'

어쩌면 편견, 선입견 심하게는 인종차별이 될 수도 있는 생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 일단 살고 봐야니까.


오늘 치과에 가서 베드에 누워 다시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고 진동을 느꼈다. 클리닝(여기서는 스케일링을 클리닝이라고 한다)까지 해야 한다며 얼굴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과 피맛을 느꼈다. 바늘이 치아사이를 긁고 잇몸을 찔러 머리끝까지 신경이 전달될 때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찔거렸다.

의사와 어시스트는 누워있는 내 위에서 치료가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대화를 쉬지 않았다. 맙소사. 이게 문제구나. 치과에 대해 들었던 지인의 첫 말을 들었던 그 말이 다시 상기됐다. 물론 마스크를 낀 채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프리칸스로 대화해서 무슨 말인지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지, "You guy are talking a lot. Could you please stop chatting?"이라고 속으로 열 번도 더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이건 좀 문제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암튼 나는 지금 마취가 덜 풀린 턱과 입술을 좌우로 움직여가며 빨리 마취가 풀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치과 치료는 일단락 됐고,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등가죽에 붙을 것 같은 배를 부여잡고 카페로 들어왔다. 음식을 주문하고 마취가 풀리지도 않은 채로 음식을 채워 넣었다. 마취한 반대쪽 입술에 숟가락으로 수프를 넣을 때마다 입 밖으로 새어 흘러나왔다. 칠칠맞게,


오전 내내 치과일화를 겪으며 내 머릿속에는 온통 '글 써야지' 생각이 가득했고, 실행에 옮겼다.  


받아야 하는 치료는 미루면 병이 되고, 써야 하는 글을 미루면 마음의 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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