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해야지만 벗어날 수 있는 지독한 알레르기
눈이 몹시 가렵다. 이러다가 눈이 튀어나와버리면 어쩌나, 눈이 멀어 안 보이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가려워 긁었다. 실제로 눈이 가려워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비비다가 눈의 점막이 튀어나와 부은 경험이 있다. 이러다가 눈이 어떻게 돼버릴 것만 같아 살짝 겁도 난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가려움'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닭살이 돋았다. 가려움이라고 하니, 외국 방송에서 밀폐된 공간에 얼굴만 넣어 놓고 수백 마리의 벌레와 함께 있는 환경을 걸리면 7억을 준다는 방송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상상만으로도 극한의 가려움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얼음팩을 대보기도 하고, 바셀린을 눈앞 꼬리에 발라도 본다. 결국 그토록 안 먹고 버텨 보려고 했던 알레르기 약은 또 먹어야 한다.
재채기 발작이다. 정말 이러다가 미칠 것 같다. 재채기가 한번 시작하면 연속으로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에잇!' 하고 소리를 지른다.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어떨 때는 코를 떼어 버리고 싶다. 줄줄 흐르는 콧물과 물 먹은 듯 답답한 콧 속, 간질간질 곧 에취! 하고 나올 것 같은 재채기 탓에 기분까지 나빠질 지경이다. 눈은 떼꾼하고 코는 부은 느낌이다. 결국 알레르기 약을 먹으러 주방으로 간다.
엄마! 엄마! 우리가 재채기하잖아요.
그럼 재채기할 때 심장에
아주 잠깐 0.5초 정도 멈춘대요!
엄마 들어봤어요?
심장이? 그럼 나는 연속적으로 재채기가
계속 나올 때는 대체 심장이
얼마나 오래 멈추는 거지?
오늘 별이랑 이야기하다가 어디서 봤다면서 나에게 한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재채기와 심장이 순간적으로 멈춘다는 이야기 사이에 하루에 몇 번이 재채기를 했었는지 세어보았다. 세지도 못할 거면서! 우습게도 이러다가 심장마비로 죽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University of Arkansas for Medical Sciences의 보고에 따르면, 사람의 심장은 재채기를 해도 멈추지 않습니다. 재채기가 심박수를 제어하는 전기 신호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재채기를 할 때 가슴의 압력 변화가 큽니다. 심장으로 가는 혈류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이러한 갑작스럽고 극적인 변화는 심박수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심장 박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말이 속설인지 실제 연구 결과인지 궁금해 검색을 했다. 속설이라고 나와있었지만 실제로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은 발작재채기는 몹시 끔찍하다.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아직도 몸은 시려워 두꺼운 이불과 전기장판을 포기하지 못하는데 이미 코와 눈은 봄이 온 걸 안다. 사방에 날아다니는 꽃가루와 풀, 먼지까지 나에게는 쥐약이나 다름없다. 공기 좋은 남아공 땅에서 이렇게 비염에 시달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에는 공기가 좋아 한국의 미세먼지로부터 벗어났으니 비염 때문에 고생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남아프리카 지역 중에서 내가 사는 프레토리아 지역이 가장 날씨가 좋다. 풀과 나무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도시화된 곳에서는 공해로 인한 먼지가 많겠지만, 풀알레르기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녹음이 푸르른 지역의 경치도 하나의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실제로 남편과 둘째 다엘은 알레르기 검사에서 풀 알레르기와 갈대 알레르기가 나왔다. 남아공은 풀과 갈대가 무성한 곳이다. 나는 검사해보지는 않았지만, 검사해 볼 것도 없이 분명 있는 거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대체.
감기에 걸려도 3일 치 5일 치 약을 꽉꽉 채워 먹어본 적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몇 달 경과된 내복약 봉투가 서랍에서 발견돼 엄마한테 등짝스메싱을 당한 날도 있었다. 약이 왜 그렇게 싫은지, 청소년기 이후 생리통에도 게보린 한 알 안 먹고 버텨왔다. 약의 효능을 안 믿는다기보다는 약이 그냥 싫었다. 귀찮았다. 영양제도 잘 안 챙겨 먹는다. 잘 잊어버린다. 비타민도 띄엄띄엄 먹어서 남편이 매번 잔소리를 한다. 먹으려고 사다 둔 여러 영양제도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날이 더 많다.
알레르기 약은 아침에 한 알 먹으면 제법 하루를 버틸만하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약에 손이 잘 안 간다. 그런 내가 도저히 못 참겠을 때는 약을 찾는다. 비강 스프레이를 뿌리고, 코 세척을 하고, 비강 훈증 요법도 해 본다. 알레르기 약이 어디 있는지 찬장을 뒤진다. 감기라도 올라치면 발포 비타민과 몸살 예방해 주는 발포 영양제를 찾아서 물에 타 먹는다. 사람이 몸이 아프고 불편하면 낫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를 쓰게 된다. 가끔 재채기가 나오려고 할 때 양쪽 콧구멍을 잡으면 순간적으로 쏙 들어간다. 반대로 콧구멍을 더 크게 벌리면 멈추는 때도 있는데 전자가 더 효과적이다. 재채기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써먹는 방법이다. 단점은 그렇게 해서 재채기가 참아지지 않아 입안에서 터지면 목구멍이 따끔할 때도 있다. 이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때 오만 잡다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애쓴다. 살기 위해 애쓰는 게 사람의 본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재는 힘들고 괴롭고 아프지만, 살겠다는 의지와 낫겠다는 의지가 있기에 애를 쓰는 거다. 언제까지 먹어야 될까 궁금하긴 한데, 매일 알약 하나씩 먹어서 증상이 완화된다면 매일 해야 되는 게 아닐까. 벗어나고 싶다면 말이다. 약을 먹는 게 귀찮지만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약을 먹는 행위 자체가 노력이다. 뭐든 똑같은 것 같다. 배우고 싶고 성장하기 원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더 나은 환경으로 가고 싶다면 어떤 노력이든 해야 한다.
오늘도 미친 듯이 졸리고, 알레르기로 힘든 컨디션과 사투를 벌이면서 글 한편 완성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나도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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