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의 정전도 끄떡없는 환자의 일상.
부끄럽다.
몇 주만의 글인가, 100일간의 글쓰기 챌린지 후 한 달을 쉬었다. 바로 또 이어서 할 계획이었다. 작가라면 '매일 쓰고, 매일 읽어'야 작가 아닌가? 매일 안 썼고, 매일 안 읽었다. 뭔가 마음은 원이로되, 내 몸은 이것저것 하나씩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 가득이었다. 그리고 마음 한쪽으로 소원했다.
그냥 다 놓고 최소한의 해야 될 것만 하고 며칠만 지내봤으면 좋겠다.
대체 왜 이런 망할 노무 생각을 했을까, 그 소원이 너무 불시에 확 이루어졌다. 6일간, 하루 20시간씩 잤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약만 먹고 쓰러져 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들이쳤다.
아이 셋이 돌아가며 장염 앓듯 배앓이를 한 이틀 했나? 그리곤 둘째 다엘의 기침과 고열을 시작으로, 셋째 요엘까지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는 첫째 별 차례가 왔다. 뭐 언제나 그랬듯이 집안에 유행성 질병이 와도 코로나가 와도 이름 모를 바이러스가 와도 다섯 식구 한 바퀴 돌고 끝났다. 아니, 때론 나만 멀쩡하게 지나가는 날이 많았다. 늘 남편이 마지막 주자를 맡았다. 우리 가족 누가 뭐래도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건강한 사람'으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만약, 내가 제일 마지막에 앓는다면 이건 정말 센 녀석이 왔구나 싶은 때였다. 이번엔 달랐다. 우리 집에서 제일 심하게, 제일 오래 앓은 사람이 나였다. 침대와 물아일체, 자고 싶어 자는 게 아니다. 잠이 온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약 먹고 자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그래야 살아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아프다가 먼저 떠나버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을 정도로 앓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약을 먹기 위해 최소한의 음식을 먹고 약 먹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거의 1주일간 잠만 잤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잘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중엔 걷는데 허리가 삐끗한 느낌도 들고 뼈가 우두둑 거리기도 했다. 엉치뼈와 허리에 욕창이 생길 것 같을 정도였다.
뼈마디가 쑤시는 몸살로 시작된 증상에 집에 있던 약들을 주섬주섬 찾아서 먹으면서 버텼다. 이어 점차적으로 나타는 증상이 줄을 이었다. 끊이질 않는 마른기침, 찢어질 것 같은 목의 통증,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입술, 건조한 피부, 막히는 코, 몸이 뜨거운 게 아니라 오한이 들어 달달 떨었다. 화창한 이 봄에 전기장판을 다시 4도까지 올렸다. 약 기운이 돌면 몸이 더워 땀이 났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추워졌다.
이거 코로나 증상 아니야? 무슨 포스트 코로나 증상? 후유증? 그런 것도 있다고 기사에 나오는데 당신이랑 증상이 똑같아? 근데 왜 나는 괜찮지?
기관지가 약해서 헛기침, 가래기침 달고 사는 남편이다.
어디만 아팠다하면 인터넷 서치부터 하고 보는 사람이 이번에도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 혼자 같은 말을 반복한다. 본인이 아프지 않은 게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그저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몰라.'라고 말하며 말할 기운도 없는 나는 새우 자세로 웅크리고 누워 계속 잠을 청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오래 잔 적도 처음이고, 이렇게 아파본 적도 처음이다. 타지에 살면서 아플 때면 참 서럽다. 그 서러움보다 당장 집 앞 약국에 가서 쌍화탕 하나 살 수 없는 이 나라가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때이기도 하다. 뭐 인터넷 찾아보니까 코로나 상비약이 있다는 데 얼른 가서 확다 끌어다 사서 입에 털어 넣고 싶은 지경이다. 이곳 약국에서도 파는 약들이 있지만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마음이 그랬다. 검사만 안 했지 가족 모두 코로나일 거라는 90%의 동의를 했다. 집 밖에 안 나가고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사한다고 치료제를 주는 구조가 아니라 검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돈만 나간다.
정신이 좀 돌아와 가슴에서 나오는 가래를 위한 항생제를 좀 받아둘까 싶어 병원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예약이 안된다. 결국 어차피 코로나 검사하면 돈만 나가고 아파서 어디 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꼬박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셈 치고 침대생활을 했다.
세상에, 다시 시작된 로드 셰딩(정전)은 하루 2시간, 4시간씩 나가다 못해 6시간을 찍었다. 꼭 나가도 밥 먹을 시간에 나가는 게 세상 불편하다. 정수기 물도 안 나와, 전기스토브 대신에 휴대용 버너 한 개에 의지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아프니 밥도 못하겠고, 약 먹을 때 빼곤 물도 안 먹히고 계속 잠만 자니까 전기 그까짓 거 좀 나가도 별로 불편한지 모르고 잠만 잔 거다. 아이들도 같이 아플 때는 집안에 모두 다 낮잠을 자고 남편은 미리 공수해둔 물 마시고, 힘든 몸 일으켜 끓여 놓은 국으로 며칠 재탕하면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고마운 건 남편이 직접 음식도 하고 2층에서 1층 주방까지 내려가기 조차 힘든 나를 위해 쟁반에 한 그릇 식사도 가져다 대령해줬다. 약은 절대 빈 속에 먹으면 안 된다며 자상함을 뽐냈다.
불편함을 이기는 불편함이라니, 참 세상은 그렇게 살아가나 보다.
조금 불편하던 것도 더 불편하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이전의 불편함은 작은 콩만 해지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툴툴 털고 지나갈 수 있는 넓은 아량이 생기니말이다.
없어지지는 않는, 함께 공존하지만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생긴다.
아무튼,
그 긴 시간을 지나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일상에 돌아왔고 매일 해야 할 일을 또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재껴나가는 중이다. 그토록 좀 빠졌으면 했던 살이 아픈 사이에 빠졌는지 얼굴도 더 갸름해 보이고, 바지도 살짝 헐렁해진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소원이 하나 더 이루어졌구나. 며칠 좀 다시 챙겨 먹으니 도루묵이 된 것 같지만, 잠시 3킬로 루즈 웨이트의 꿈이 이루어졌었다. 계속 더 아플 수는 없으니 감사키로 하자.
이은대 작가님의 3권의 전자책 출간 소식, 7번째 종이책 출간 소식이 들려왔다. '넌 뭐하니?' 나한테 묻는 질문이다. 톡방에서 매일 출간 계약 소식과 출간 소식에 박수와 헝가레 폭죽이 터진다. <확! 휘어잡는 글쓰기 멘탈>부터 집어 들었다. 책을 읽으니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책을 열심히 읽고 , 매일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써야 산다. 쓰자. 읽어야 된다. 읽자.
다시 글 쓰고 싶은 마음까지.
소원 3종 세트가 이루어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