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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08. 2023

대중목욕탕과 엄마

추억의 바나나 우유는 덤. 




오랜만에 욕조에 몸을 담갔습니다. 남아공에 온 뒤 대중목욕탕 갈 곳도 없고 집에서 샤워하는 게 전부인데요. 가끔 그렇게 뜨끈한 욕조에 들어가 전신을 녹이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몸이 찌뿌둥한 날이 그런데요. 오늘 또 갑자기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이슬 이슬 추우니 탕에 몸을 담그고 싶어 졌습니다. 


낮 동안 단체 티셔츠를 고르고, 로고 프린팅을 알아보느라 집에 들어오니 5시 반이 넘었더라고요. 이곳에서는 저녁 8시면 아이들이 자기 때문에 6시 전에 얼른 저녁을 준비해서 먹여야 하는데 저녁이고 뭐고 빨리 탕에 들어가고 싶더라고요. 다행히도 늦은 점심으로 햄버거를 한 개씩 먹은 덕에 저녁은 좀 늦게 가볍게 먹기로 하고 탕에 물을 받아 몸을 녹였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다 못해 하나 넣었다가 홀라당 데어버릴 같아서 용수철 같이 얼른 욕조 선반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찬물을 틀어 적당히 뜨끈한 상태에서 몸을 담그고 눈도 감았습니다. 한국의 대중탕이 간절히 생각나는 타임입니다. 

중학교 때 만난 친구 중에 대중목욕탕 한 번도 안 가봤다는 친구가 있었어요. 더러워서 안 간다는 거였죠. 엄마가 못 가게 한다고요. 이해도 됐지만, 살면서 한 번도 대중목욕탕에 가본 적 없다고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에 얼마나 쇼킹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매주 엄마랑 집 앞 대중목욕탕을 갔었거든요. 

어렸을 때 아빠 따라 남탕도 가봤습니다. 남탕의 모습은 기억 안 나지만, 아빠가 꼬꼬맹이 때 몇 번 데려갔던 기억이 나요. 

매주 토요일 아침은 목욕탕 가는 날이었어요. 

대중목욕탕하면 뭐니 뭐니 해도 "바나나 우유"잖아요? ^^ 

목욕 마치고 나오면 꼭 바나나 우유 한잔씩 먹었어요. 엄마가 안 사줄까 봐 냉장고 앞에 가서 뚫어지게 쳐다봤던 기억도 납니다. 참 그게 뭐라고, 그때는 목욕탕 가서 때를 빡빡 밀고 나와서 마시는 시원한 우유 한잔이 그렇게 맛있대요. 

제가 남아공 오기 전에 엄마랑 같이 대중목욕탕에 갔었어요. 친정 앞 대중목욕탕인데, 엄마는 제게 세신을 받으라고 했죠. 마지막이라면서요. 엄마는 아주머니에게 제 몸을 맡기라고 하고 옆에 누워 다른 아주머니에게 세신을 받았어요. 양쪽의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멀리 간대요. 아주 멀리." 

"어디요?"

"아프리카요. 거기 가겠대요." 

"에고, 왜 그렇게 멀리 간대요." 

"몰라요. 기어이 가겠다네요......." 

말끝을 흐리면서 서운함이 밀려오는 울음을 참는 엄마 모습을 떠올리니 지금도 코 끝이 찡해집니다. 

그렇게 돈 아까워 잘 받지도 않던 세신을 마지막으로 받고 그다음 날 비행기를 탔어요. 

엄마 등을 한번 안 밀어주고 오는 게 못내 맘에 걸렸습니다. 아주머니가 이미 다 잘 밀어준 등을 보면서 여기 때가 덜 밀린 것 같다며 괜스레 엄마 등을 한 번 만져봤네요. 어렸을 때 그렇게 넓던 엄마 등짝이 작게 느껴지던 순간이었습니다. 내 딸 주려고 바나나 우유를 산게 아니라, 엄마랑 나눠 먹으려고 냉장고에서 꺼냈습니다.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건넸어요. 


오늘 샤워 후에는 바나나 우유가 더 그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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