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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22. 2023

남아프리카 블랙프라이데이 책 사는 기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자기야 봐봐. 이게 900 란드 짜리인데, 지금 240 란드라고!!" 


최근 몇 년 간 봤던 남편 모습 중에 가장 신난 모습이었다. 이유는 기독교서점에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할인 품목을 만났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할인폭이 큰 상품을 만났을 때는 탄성이 나온다. 


남아프리카는 종이가 비싸다. 처음 남아공에 와서 한국 아이들이 사용하는 스케치북 하나가 없어서 당황했다. 어딜 다녀도 저렴하고 귀여운 스케치북이 없었다. 찾다 찾다 만났던 스케치북은 전문 스케치 드로잉북이었다. 가격은 생각이상으로 비쌌다. 당연히 그 비싼 스케치북을 살리 없었다. A4용지를 사서 아이들이 맘껏 그림 그리라고 줬다. 스케치북만 비싼가 싶었는데 종이란 종이는 모두 생각보다 비쌌다. 게다가 한국에서 봤던 형형색색의 아주 평범한 색종이도 없었다. 색종이 찾아 삼만리, 아직도 못 찾았다. 여기서 색종이는 구할 수 없다. 단, 큰 색지를 사서 잘라서 쓸 수 있다. 


책 값도 저렴할 리 없었다. 아이들 책도 일반 도서도 가격이 원화의 2배 정도는 됐다. 처음 책 한 권 사려고 서점에 갔다가 구경만 실컷 하고 입맛을 다시며 나왔다. 한국에서 15000원 하는 책은 여기서는 환율이 다르다고 해도 25000원은 줘야 살 수 있었다. 책의 두께나 크기에 상관없이 그냥 책은 다 비쌌다. 그렇게 서점도 가고 도서관도 이용하면서 아이들 영어 책을 보거나, 궁금한 책을 뒤적거렸다. 서점 유리에 'For Sale'이라고 붙으면 그 그간에 한 번은 구경하러 들어갔다. 3년 전에 남편과 여느 때처럼 기독교 서점에 책을 보러 들어갔다. 800 란드 짜리 성경책을 180 란드에 팔고 있다. 뒷면에는 정가가 붙어있었고, 앞면에는 할인 가격이 적힌 노란 딱지가 붙어있었다. 


그저 나는 보물찾기 하듯 노란 딱지가 붙은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도 그 사이 책 더미 사이에서 노안온 눈을 위해 안경을 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심지어 휴대폰을 꺼내 지금 시가가 얼마인지 책을 찾기도 했다. 그러더니 무슨 산삼을 찾은 사람 마냥 성경주석과 성경책, 보고 싶었던 책이 세일한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찾아냈다. 오늘은 꼭 사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다른 일을 볼 때는 얼른 보고 후다닥 나오던 사람이 서점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나갈 생각이 없었다. 같이 따라간 엘 형제는 한계에 다다랐는지 몸을 베베 꼬고 이었다. 그 즈음 아이들 볼만한 뭐 좋은 책 있나 보다가 역시 세일 품목 중에 괜찮은 책을 발견했다. 

다엘은 남자아이들을 위한 큐티책, 요엘은 성경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이었다. 다엘은 하루에 딱 한 장만 읽으면 되는 365일 큐티책이었고, 요엘은 글밥이 좀 되지만 제법 읽어주고 다시 읽어보라고 하면 읽을만할 듯했다. 책도 괜찮은데 세일도 하니 한 권씩 사줄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요엘은 주변에 있는 책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도, 이것도, 저것도"라며 사고 싶은 걸 하나씩 들고 와 내게 들이밀었다. 그냥 고개만 그 떡 하며 "어, 그래"라고 대답할 뿐 도로 가져다 놓으라고 신호를 줬다. 다엘도 처음에는 큐티책에 좀 시큰둥하다가 마지막 한 개를 골라 손에 들었는데, 남편이 다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건 어때 디엘아? 성경책."

다엘이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짧은 큐티책도 사다 놓고 안 읽을까 봐 고민하더니, 영어 성경에 관심을 보이는 걸 보니 조금 더 비싸지만 안 사줄 수 없었다. 그래서 50 란드 짜리 큐티책을 놓고 240 란드 짜리 성경을 집어 들었다. 성경책의 원래 판매가는 600 란드가 넘었다. 품에 성경책을 안고 사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는 통에 사서 매일 한 장씩 읽자고 이야기했다. 


이날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남편이었다. 무려 4권이나 본인이 원했던 책을 사면서 그렇게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데 싫지가 않았다. 4권만 해도 벌써 1000 란드인데(한화약 8-9만 원), 한 권 살 돈으로 4권을 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도 1권은 내가 볼 큐티책, 1권은 어린이집 교사들 아침마다 읽으라고 줄 큐티책, 각 1권씩을 사서 가지고 왔다. 종이책 노래를 부르면서 그렇게 좋다고 했는데, 한글이 아닌 게 좀 아쉽지만 영어책으로라도 현물로 사서 집에 가져올 수 있다는 기분이 묘하게 설렜다. 


 오늘은 소확행이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어제부터 글로 다 짓기 회원들과 <행복의 ㅎ 40일 채집> 챌린지를 시작했다. 일상에서 지날 칠 수 있는 모든 순간 속에서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찍고, 짤막한 글귀와 함께 서로 공유하는 챌린지다. 11월 21일부터 12월 30 일면 딱 40일이다. 2023년 한 해를 살면서 지금까지 바쁘게 사느라 발견하지 못했다면, 한 해를 "기록"하면서 마무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말이다. 


기록이 주는 의미와 느낌을 알게 될 거다. 

그래서 매일 내 소확행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확행까지 보면서 서로 행복해지는 순간을 만끽해보려 한다. 

그저 남편과 아이들의 손에 들린 책을 보면서 내 마음에 미소가 번진 것처럼. 




 늦게라도 참여하고 싶은 분은 오세요 ^^ 환영합니다. 

https://open.kakao.com/o/grLMxRh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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