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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28. 2023

비에 홀딱 젖었지만 기분이 괜찮네  

내 자리에 앉아 내 일을 할 수 있는 지금. 



홀딱. 그야말로 홀딱 젖었다. 

이렇게 젖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건물 문에서부터 주차장까지 족히 300미터는 되는 거리를 세찬 비를 그대로 다 맞으며 내달렸다.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도 바닥이 미끄러워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신나게 뛰는 아이들 뒤를 쫓아  꺄악 꺄악 소리를 질렀다. 온몸에 척척 감겨 붙는 느낌에 아이들이 잘 가고 있나 볼 겨를도 없이 내 몸 하나 챙기기에도 버거웠다. 물은 점점 신발에 차고, 머리끝부터 물을 들이붓는 기분이 무척이나 새삼스러웠다. 왜 매일 샤워를 하는데 빗물을 맞는 기분이랑은 다를까. 천둥 번개가 어찌나 매섭게 치는지, 하늘이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마치 구름마차가 행렬을 지나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차문을 열고 의자에 엉덩이를 대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세찬 비바람이 차까지 흔들어댔다. 한여름에서 갑자기 겨울로 가는 느낌에 오싹하기까지 했다. 앞이 안 보여 차는 물길을 뚫고 기었다. 추워 달달 떨면서도 히터가 아닌 에어컨을 켜고 시야를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고개를 내 뺀 상태로 시야를 확보하면서 운전하는 내내 아이들과 나는 생쥐꼴을 하고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그렇게 웃는 동안 자동차 바퀴 반이 빗물에 잠기는 구간을 만났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고, 제발 집까지만 가자고 읊조렸다. 그러는 동안 낮은 세단에 점점 더 못 마땅해졌다. 사륜구동에 포바이포(4x4) 정도는 되어줘야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오늘 저녁 아이들 태권도 심사가 있었다. 보통 평소에는 할 일이 많아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는 집에서 일을 한다. 오늘은 아이들 심사도 있고, 기다리는 2시간 동안 좀 걸을까 싶어 따라나섰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지, 요즘 유독 다리가 퉁퉁 붓는 느낌이다. 자꾸 걷고 움직여야 혈액순환이 되는데 오늘 오전에는 하지정맥류가 생길까 봐 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나 건강에 대한 염려증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것 같다. 그저 매일 루틴에 운동만 넣으면 되는데 최근에는 오전에 스케줄이 많아 운동시간을 확보를 못했다는 핑계를 대본다. 암튼 그렇게 가서 1시간을 걸었다. 꽤 만족스러운 산책이었다. 새도 보였고, 하늘의 노을도 예뻤고, 오리가족도 보면서 자연과 함께였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난 후로 하늘이 검게 변하더니 크릉거렸다. 그리고 이 사태가 났다. 


집에 와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면서 들어올 수 있는 집이 있고, 샤워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음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덥다고 투덜대던 참이었다. 어찌나 더운지 요즘 밤 잠을 이룰 수 없어 타일바닥에 대자로 누워있을 판이다. 아이들은 밤 12시에 일어나 냉수 샤워를 하고 자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벌써부터 땀이 줄줄 흐른다. 그 탓에 오전 내내 입에 "이놈의 집구석, 이놈의 날씨"를 탓하며 살겠네 못 살겠네를 요 며칠 계속 말했다. 비도 갈수록 안 온다며 투덜거렸다. 비가 오면 온다고 불편해서 싫고, 비가 안 오면 건조해서 싫고, 날이 추우면 춥다고 싫고, 더우면 덥다고 싫고, 사람 마음에는 만족이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내 마음이 평온할 때는 날씨가 어떤들, 환경이 어떠한들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넓어지는데 보통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정리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오늘 할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남아 있는 온기로 만족하며 창 밖의 빗소리를 즐기고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비에 홀딱 젖은 채로 집에나 올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말이다. 


때로는 이러하고, 때로는 저러하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음이 감사한 시간이다. 비 맞은 생쥐가 되었다가 다시 사람이 된 기분으로 글을 한편 쓰는 기분도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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