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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20. 2023

나라고 생각해

남편의 화를 잠재우는 방법 



온몸이 앞뒤로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충격을 흡수했다. 일촉즉발의 급 브레이킹이었다.


“아…!!! 가야지!! 지금 갔어야지. 왜 서냐 여기서!!”


빨간 불로 바뀌기 전에 우회전을 해야 하는 앞 차가 비보호 우회전에서 급 정차했다. 하마터면 앞 차 엉덩이를 툭. 아니 세게 들이받을 뻔했다. 스마트 폰으로 책을 보던 나는 앞 상황을 보지 못했고 몸이 흔들린 탓에 화들짝 놀랐다. 철렁한 가슴에 즉각적으로 왼손으로 창문 위 손잡이를 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입에서 욕이 나올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놀라면 입에서 아무 소리로 안 나온다. 남편이 화를 내는 동안 숨을 골랐다. 


"왜 지금 서가지고, 아효." 

"캄 다운 자기야. 저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 나라고!!" 


우회전할 거라 생각했던 차는 천천히 앞으로 간 후 좌측으로 차를 틀었다. 직진도 아니었던가,  그 덕에 멀어져 가는 운전자를 볼 수 있었다. 여자였다. 


"거봐. 나라고 생각하라고 했잖아."

"아! 그래." 

"화 안 나지?" 

"어. 이해가 되네." 


그렇게 웃으면서 상황이 종료 됐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얕은 신경질이 올라온다. 오늘은 내가 했던 말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해가 된다는 남편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 반, 황당한 마음 반이 들었다. 


'그래 내가 하는 거면 잘 못도 이해해 주겠다는 거구나.' vs '뭐야, 지금 나 운전 못한다고 그러는 거야?' 


우리는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반응이 달라진다. 오늘이 딱 그랬다. 어쩌면 남편이 기분이 좋지 않았거나 또 다른 이슈가 있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수긍하고 화를 가라앉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순한 사람이라 화를 잘 안내는 데 화를 참지 못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운전하다 만나는 상황이다. 


운전병 출신인 남편은 운전을 잘한다. 남편은 계급 높은 분을 태우고 다닐 때는 차를 소리 없이 조용히 몰아야 해서 운전 스킬이 늘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역 제대한 지가 25년도 훌쩍인데 그 사이 어떤 차를 운전해도 주변에서 운전에 대해 칭찬일색이었다. 그 덕에 남편이 운전하는 차는 승차감이 좋다. 이렇게 급정차하거나 잠시 한 눈을 팔아 위험천만한 상황이 펼쳐질 때만 빼고 말이다. 그럴 때면 나는 언성 높인다. 


"운전 왜 그렇게 해. 잘 봐. 어우 무서워 진짜." 


평온하던 삶에 갑자기 뭔가 확 끼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타이밍이다. 가뜩이나 나는 차에서 스마트 폰으로 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 그 집중하던 순간이 깨지는 것도 썩 달갑지 않다. 남편이 운전을 할 때 조금 불안한 기운이 느껴질 때면 여지없이 이렇게 말한다. 


"좀 제대로 해봐." 


솔직하게 너무 잘한다. 평소에도 항상 방지턱 넘을 때도 왼쪽으로 차를 바짝 붙여(우핸들) 최소한의 넘어가는 대미지를 줄여가며 운전해 준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참 야박하게 군다. 8번 잘하고 2번 못하면 핀잔을 놓는다. 그럴 때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8번 잘 한일은 당연한 거고 2번 못한 일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며 말이다.  

반대로 8번 못하고 2번 잘하는 일에는 엄청난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강화를 시키면서 더 잘하도록 만드는 게 칭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난 토요일에는 돌아다니면서 찾아야 할 소품들이 있어서 하루가 길었다. 이 상점 저 상점 찾아다니면서 계획했던 물품을 한 개도 얻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허무했다. 다음 주에 또 돌아다녀야 한다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나에 대한 걱정이 한 번에 밀려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사고 날 뻔 한 상황이 3번이나 연출됐다. 한 번이 아니라 하루에 3번이라니,  그저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운전하다가 앞뒤좌우 운전자가 실수를 할 때 "우리 아내 같네"라고 생각하면 적어도 "집에서 밥이나 하지 왜 차는 끌고 나와가지고"라는 말은 안 튀어나오지 않을까. 

언제 적 화법인지 모르겠지만 썩 달가운 말은 아니다. 

그래도 오늘은 남편에게 '나라고 생각해 봐'의 말 한마디로 기분 예민해질 일이 부드럽게 넘어가서 어록으로 남겨놨다. 그리고 그렇게 내 말 한마디에 웃음으로 넘겨준 남편에게 잘했다고 손뼉 쳐줬다. 


본의 아니게 며칠 남편 이야기를 적는다. 

이전에 쓴 글 <팬티를 찢어질 때까지 입는 남편> 발행 글은 대한민국의 인구 중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읽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했다. 

"괜찮아 남편, 그 사람들은 당신 얼굴을 모르니까." 


https://brunch.co.kr/@namagong2018/322



https://blog.naver.com/with3mom/223248688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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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with3mom/223265112079


https://blog.naver.com/with3mom/223265016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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