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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Nov 23. 2023

우리 집 주방에 버섯이 자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기는 일




한낮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올 만큼 뜨거운 기온이 밤이 되면 제법 떨어진다. 그런데 요즘 밤 기온이 제법 올라간다. 오늘 얼음 동동 띄운 냉수만 벌컥벌컥 5잔도 더 마셨다. 날이 더울수록 찬물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자꾸만 시원한 걸 찾는다. 아이들과 남편을 태권도에 보내고 혼자 코칭을 하던 중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주방으로 갔다. 낮에 사다 놓은 수박을 꺼내 깍둑 썰다가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에잇! 입으로 소리를 내며 엎드렸는데 어라, 이게 뭔지 버섯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내가 버섯을 요리하다가 떨어뜨렸나? 떨어뜨렸던 버섯을 안 치웠나? 그럼 저 버섯이 틈새에서 어떻게 자랐지? 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가 휴대폰을 가지러 방으로 뛰어왔다. 얼른 카메라를 가져다 들이대 사진찍었다. 그 덕에 주방 싱크 아래 타일이 깨진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타일 사이에 낀 더러운 때도 함께 말이다.  


버섯? 독버섯? 먹으면 안 되는 버섯? 어떻게 자랐지?

남편에게 카톡으로 보냈고, 남아공에 사는 지인 톡방에 버섯을 올렸다.


그 사이 버섯이 잘 자랄 수 있는 온도, 환경을 검색했다. 우리 집에서 왜 버섯이 자랐지? 대체 저 자리에 뭐가 있어서 버섯이 자랐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수개월 전, 주방에서 하수도로 내려가지 못한 설거지한 물이 거꾸로 역류해서 싱크대 아래로 흐른 적이 있다.

당시 역류한 것도 모른 채 설거지했다. 바깥에 하수로 내려가는 소리가 콸콸 들려야 정상인데, 안쪽에서 쪼르르 소리가 났다. 보통 남아공의 주방에는 식기세척기 자리와 세탁기 자리가 있다. 배수관을 연결하기 위해서 잘라놓은 배관을 주방 안에 마련해둔다. 우리가 이 빕에 들어오기 전, 집주인은 주방 리모델링을 했다. 넓은 싱크 착장을 위해 한쪽을 가렸던 모양이다. 그쪽에 배관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물이 역류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곳에 숨은 배관이 있었다는 걸.

수개월 전이다. 냄새도 났고 여간 신경쓰였다. 이미 다 말랐겠지만, 설마 잔여 찌꺼기가 거름이 됐을까, 알 수 없는 질문만 던졌다. 어디서 버섯씨가 날아왔다. 온갖 벌레가 함께 사는 이곳에서 벌레가 가지고 왔을까 왜 하필 싱크 아래 타일에서 버섯이 자랐을까? 우리 집에 야생도 아니고, 어디에 흙이 있나, 개미들이 모아 놓은 흙에서 버섯이 뿌리를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난무했다. 그저 독버섯일지도 모르니 만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집주인에게 이 기이한 현상과 깨질 타일을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타일에서 버섯이 자랐다. 가슴 도로 아스팔트에 꽃이 피는 것을 본 적 있다. 담벼락 벽돌 사이에서도 새싹이 자란 걸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잠시 멈춤을 만드는 상식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생명력을 가지는 자연의 강인 함이다. 아마도 내가 뽑아내기 전까지 저기서 계속 자랄 것 같다. 진짜 독버섯이면 얼른 그 강인함을 꺾어 버려야 한다. 뿌리 몽땅 뽑아내야만 한다. 더 큰 독이 퍼지기 전에 말이다.


부정적인 생각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걱정으로 자리 잡은 마음에서는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던 걱정, 불안,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상황까지 혼자 예견하면서 소설을 쓴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진행하면서도 확신이 없을 때가 있다. 불안함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쿡쿡찌르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더 퍼지지 않도록 부정적인 생각들을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한다. "의지"를 세워서 뿌리 뽑으려고 하면 뽑아진다. 주방에 자란 버섯은 머지않아,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뽑아 버릴 거다. 그저 버섯을 뽑는 일은 단순한 사건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뿌리 뽑는 것도 그냥 사건일 뿐이다. 뽑고 안  뽑고는 내 "의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작가를 만드는 건 문장력이 아니라 어떻게든 ‘쓰고자 하는  의지'다.”

<타이탄의 도구들>, 밀리 , 126p 패드


의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오전에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인생도, 생각도, 글쓰기도, 내가 하려는 그 어떤 일도 모두 다 "의지"다. 의지를 세우면 하지 못할 게 없다는 거다.


버섯이 자랄 수 있었던 환경은 집중인이 오면 꼭 조사해 봐야겠다. 어쩌면 그 뒤로 숨겨진 장소에서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세계의 일이. 그러나, 걱정 안 된다. 내가 직접 그것들을 소탕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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