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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08. 2023

감동의 어둠 속 조기

엄마는요? 




또 정전이다. 참 야속하게도 식사 때마다 오늘 2시간씩 3번 나갔다. 제발 부탁인데, 식사 시간 좀 피해 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고 싶을 정도다. 


아침에는 버너에 의지해 찬밥에 계란 올려 계란밥을 해 먹었고, 빵을 프라이팬에 구워서 계란, 과일이랑 먹었다. 점심에는 비빔면 하나 있는 후딱 끓여서 먹고 아이들을 파이로 대충 때웠다. 급기야 저녁까지 나가버린 전기 탓에 저녁은 뭘 해 먹나 고민하다 냉동실에서 조기 3마리를 꺼내서 구웠다. 

며칠 전 동역하는 조사모님이 조기를 먹고 싶다는 내 말에 지니의 램프처럼 다음날 조기 5마리를 턱 하니 전해주셨다. 생물이든, 냉동이든 조기 구경하기 힘든 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는 엄청 귀한 반찬이다. 마트에서 생선을 팔기는 하지만 고등어도 한국 고등어랑 다르게 생겼고, 특이한 생선들이 손이 잘 안 간다. 기껏해야 대구나 옐로 피시 정도인데 나는 조기가 좋다. 아이들도 조기 반찬 참 좋아하는데 한국 시장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고등어, 조기, 삼치가 여기서는 보이질 않는다. 


작년, 브루마라는 지역의 차이나 타운에 가서 조기를 한 박스 산 적 있었다. 집에서부터 약 40-50분 걸리는 거리에 있어서 잘 가지 않기도 하지만, 그 지역이 안전하지 않은 탓에 자주 가지 않는 것도 맞다. 당시 함께 갔던 조사모님과 한 박스를 사서 반으로 나눠 가져왔었다. 약 20마리 정도 되는 조기를 지느러미, 꼬리 잘라 손질해 소금에 절여 냉동실에 소분해 넣어두고 야금야금 꺼내 먹었다. 조기 한 마리만 식탁에 올라와도 아이들 밥 먹는 속도가 달라진다. 오랜만에 식탁에 놓인 조기 반찬에 다들 손이 무척 바쁘다. 사실, 제일 바쁜 건 내 손이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가시도 껍질도 잘 발라 알맹이만 쏙쏙 빼서 새끼들 밥그릇에 올려준다. 


오늘 전기가 나갔지만, 버너에 노릇하게 구워냈다. 약불로 뭉근하게 구워 어둠에서도 랜턴을 켜고 잘 익었는지 확인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요엘은 밥그릇에 놓아둔 살코기를 제비새끼처럼 반찬을 잘도 받아먹는다. 어제 2마리 먹고 오늘 3마리 먹었는데 다들 더 없냐고 아쉬워하는 통에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앞에 앉은 별이도 떼어주고, 대각선에 앉은 다엘도 떼어주고, 오른쪽에 앉은 요엘도 떼어줬다. 늘 공평하게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막내 요엘을 더 챙겨주고 있었다. (남편은 알아서 먹거나 말거나) 

내장과 머리, 뼈와 가시를 제외하고, 튀김가루 뿌려 노릇 바삭하게 구운 생선 껍질까지도 야무지게 발라 먹었다. 생선 살을 발라 그릇에 놓아주던 찰나였다. 


"엄마는요?" 


요엘이 내게 말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한 마디였다. 순간 무덤덤하게 "응. 엄마도 먹고 있어."라고 대답했는데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런 걸 심쿵한다고 표현한다. 섬세한 마음 표현을 참 잘하는 아이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 남편과 요엘이 섬세하고 관찰력도 좋다며 어떤 일화를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다. 별 말 아닐 수 있는 그 한마디에 왜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배불렀다. 사실 나는 몇 점 못 먹었다. 그래도 맛도 봤고, 이미 밥 하기 전에 러스크를 와그작거리며 커피랑 씹어 먹은 통에 그리 배고프지도 않았다. 요 귀여운 녀석은 눈 한번 지긋이 마주치고 오물오물 음식물을 다 삼키지도 않은 채 얼른 일어나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곤 소파로 가버렸다. 

아직 밥 먹고 있는 별이 그릇에도 마저 생선을 알뜰히 발라서 놓아줬다. 이번에는 별이도 내게 말한다. 


"엄마는요?" 


아까 요엘이가 엄마는요?라고 물을 때 물 뜨러 가서 없었던 별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들 엄마 생각해 주는 말에 어두컴컴한 식탁이 환해졌다. 


말이라는 게, 마음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어도, 아이들이 내게 물어본 적절한 단 한 마디가 내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었다. 엄마로서 사랑받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라는 걸 종종 느낀다. 


잠자러 가기 전 방에 인사하러 들어온 요엘은 씩 웃으며 한 마디 던지고 갔다. 


"오늘 조기 맛있었엉용 "


조기 찾으러 돌아다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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