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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22. 2023

120퍼센트 맛있는 엄마 밥

경험에 의한 신뢰




저희 집 아이들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에 대한 찬사가 남다릅니다. 남편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지만 길들여진다는 게 무서운 거 아시죠? 길들여져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늘 음식을 해주면 맛있게 먹습니다. 특히 한식상을 내 줄 때는 맛없다고 한 적이 없어요. 이것도 어쩌면 이곳에서 한식 메뉴가 귀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한식당에 가서 먹을 때는 맛없다고 할 때도 있거든요. 저는 여기서 자신감을 얻습니다. 내가 한 것 다 맛있대!


요 며칠 막내 요엘이 부쩍 크려나 봅니다. 막 잘 먹어요. 남편이 '강철부대' 프로그램을 좋아하거든요. 아이들에게 몇 번 보여주고는 매주 강철 부대를 같이 봅니다. 저는 그다지 앉아서 볼 여유가 없어서 이야기로만 듣는 편이거든요. 지난번에 한 번은 같이 앉아서 보는데, 아이들의 거의 흥분의 도가니더라고요. 별, 다엘도 흥미진진하게 봅니다. 서로 누가 이길 것 같다느니, 누가 이겼으면 좋겠다느니 하면서 말이지요.

그 탓에 내년 아홉 살 되는 요엘은 자기는 특수 부대를 가겠답니다.  UDT, USSF 등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고르고 있더라고요. 저는 이것도 가능할 것 같은 게, 요엘은 에너자이저급 에너지가 많은 아이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진짜 나중에 특수부대를 가겠구나 싶은 생각도 있어요. 자기 특수 부대 가려면 힘도 세야 하고, 키도 커야 하니까 밥을 잘 먹고 우유도 잘 먹어야 한다네요. 그래서 요즘 우유도 잘 먹습니다. 그러다 이틀 전 하루에 투머치 유제품을 먹는 바람에 구토와 설사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오전에 루이보스티에 우유를 타서 두 잔, 낮에는 한국 마트 갔다가 사온 빙수 아이스크림에 우유를 반 컵 부어서 먹고요. 오후에는 오랜만에 사 온 바나나 우유를 못 참고 또 하나 먹었습니다.  이른 저녁 식사 후 8시경 배가 고프다며 요플레를 먹었다더라고요. 요플레 먹은 건 몰랐거든요. 다음 날 새벽부터 배가 아프다더니, 설사와 구토를 했죠. 이렇게라도 빨리 크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죽을 끓여 주고, 뜨끈한 샤부샤부 국물을 끓여서 준비해줬어요. 아침은 죽을 먹고 점심에는 국물에 밥을 먹으라고요. 다행히 심하지는 않았는데 수 차례 화장실은 들락 거렸습니다. 그렇게 반나절 넘게 고생하고 다음날 멀쩡해졌습니다. 참 다행이지요. 오늘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해서 그 귀한 금치로 찌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흔한 김치찌개가 여기서는 어쩌다 한 번 해 먹는 메뉴가 됐어요. 가족 중에 싫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엄마가 만드는 거는 백이십 프로야!  
안 먹어봐도 알아. 흠 맛있는 냄새~


샤브 국물을 만들어 줬을 때도 숟가락도 들기 전에 같은 말을 하고 밥을 맛있게 먹더라고요. 오늘 김치찌개를 먹을 때도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한 그릇 뚝딱, 아니 두 그릇을 먹었습니다. 엘 형제가 한 숟가락 뜨더니 나란히 앉아 서로 고개를 돌려 눈빛 교환 후 "역시!" 라며 맛있게 먹더라고요. 엄마로서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은 백 이십프로, 안 먹어도 봐도 아는 맛' 이런 말을 아이들에게 듣다니 감개무량하더라고요. 가끔 편식도 하고, 입에 맞으면 잘 먹고 입에 안 맞는 음식은 싫다고 손도 안 대는 날도 있기는 합니다. 별이는 생 슬라이스 치즈를 싫어하고요. 다엘은 빵 종류 중에서 머핀이나 파운드케이크를 싫어합니다. 단 음식은 안 좋아해요. 요엘은 두루 잘 먹지만 그냥 맘에 안 드는 날에는 적은 양을 먹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음식을 먹기도 하죠.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비슷하죠.

  

남아공에서는 김치가 금치예요. 알배추, 포기배추를 구할 수는 있지만 국산 못 따라가고,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중국산도 있고, 남아공산은 주로 알배추만 나오는데 쉽게 보이지 않거든요. 한국 교민이 하는 농장에서 키우는 배추는 국산 답더라고요. 속이 꽉 찼습니다. 그렇게 배추를 구해서 1년에 두세 번 김장을 하고, 먹고 싶을 때 겉절이를 해서 먹기도 했습니다. 남아공살이 초반에는요. 올해는 직접 김장하기 힘들던 찰나에 종갓집 김치 할인을 해서 앞뒤 안 보고 그냥 질렀습니다. 김장 안 하니까 세상 편하더라고요. 배추 절이기, 배추소 만들기, 양념 만들기, 무쳐서 통에 담아 김치 냉장고에 넣기까지 못할 일도 아닌데 참 번거롭습니다. 그래도 냉장고에 김치통 2통 담아 두면 1년이 든든합니다. 직접 담그는 것보다는 좀 더 돈이 들어가지만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맛있어요. 종갓집이니까요.


이렇게 이름만 보고도 믿고 사 먹는 음식들이 몇 있습니다.

그만큼 그 제품의 맛에 대해서 신뢰한다는 거겠죠.


모두 경험에 의한 신뢰입니다. 내가 먹어봤고, 사용해 봤고, 느껴봤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거요. 경험이 부정적이었다면 신뢰는 당연히 형성될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 뱃속에서 나와 13년, 12년, 8년을 함께 살면서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들이 음식에 만족했다는 사실이 엄마로서 무척 뿌듯합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도 '최주선'이라는 이름 석자를 내밀었을 때, 신뢰할 만한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밨습니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까 말이에요. 오늘 영어 코칭을 하는 회원이 에이스 합격 후 남긴 후기에도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어제는 무료 특강에 참석해 주신 분께서 제가 또 어깨 춤출만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감사해요~)


저는 작가이고,  영어 코치이고, 남아프리카의 선교사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교사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공신력이 크다거나 유명한 사람도 아니에요. 그러나, 저와 함께 하는 글로 다 짓기 멤버가 있고, 또 함께 하겠다고 오는 분들이 늘어날 때마다 뿌듯함과 동시에 어깨도 무거워집니다. 더 똑바로 살아야 할 것 같거든요. 성장의 욕구가 큽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책 읽고, 글을 씁니다. 일상에서 배운 것들을 잘 소화시켜 다시 또 흘러갈 수 있도록 애쓰지요. 그래서 사색하고 노력합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신뢰의 대상이 된다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있을까요.

음식 맛있다고 엄지 치켜세워주는 가족 덕분에 단숨에 글을 써버렸네요.

15분 걸렸습니다. 뿌듯 ^^




https://blog.naver.com/with3mom/223298738182

 


https://blog.naver.com/with3mom/22329875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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