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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26. 2023

초6 셰프의 라따뚜이, 감바스, 뇨끼 그리고 마카롱

뭐든 하겠다 너는!



** 이번 크리스마스 스페셜 데이 **

라따뚜이

감바스 알 하이요

뇨끼

마차마카롱



별이의 수첩에 적힌 메뉴다.

2주 전부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자기가 직접 음식을 하겠다고 했다.


"뭐 할 건데?"

"라따뚜이, 감바스 알 하이요, 뇨끼, 말차마카롱이요!"

"그거 다? 안돼. 힘들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 그냥 한 개만 해~"

"음, 오래 걸려도 할 수 있어요!"


별은 자기가 직접 요리하겠다고 필요한 재료를 적었고, 내게 내밀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아몬드 가루와 마차파우더였다.


남편과 나는 별을 "비싼녀"라고 부른다. 어휘가 좀 고급지지는 못하지만, 고급 메뉴, 고급 디저트 메뉴를 좋아하고 식당에 가도 별이 고르는 음식은 대부분 비싼 메뉴일 때가 많다.

한 때  <꿈빛파티시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파티시에 꿈을 키우던 별이는 이제 유치하고 시시하다고 벗어난 지 꽤 됐다. 꿈빛파티시엘 덕분에 베이킹, 디저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장래희망 또한 파티시에였다. 그때 나이가 아홉 살, 열 살 때였다. 자기는 커서 디저트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예쁘고 멋진 카페를 차려서 자기가 만든 디저트를 팔 거라고 했다. 나는 그 꿈을 지지하면서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오븐사용을 허락했고,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알려줬다. 별이는 그 뒤로 오븐을 이용해서 수십 번 망친 케이크와 쿠키를 보며 눈물을 닦았다. 그때마다 정말 맛있다며 오버액션도 해줬지만, 그 뒤에는 "이렇게 하면 더 맛있을 것 같은데?" 라며 피드백을 주었다. 레시피를 수정해 보고 재료를 대체해보기도 했다.

나이가 들 수록 별이는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떡볶이 제가 만들어 보면 안 돼요?"

"제육볶음 해 보고 싶어요."

"김치볶음밥 할게요!"

"계란볶음밥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나씩 새로운 메뉴에 도전했다. 어떤 날은 대 실패로 돌아가 아무 말없이 먹은 날도 있었고, 억지로 맛있다고 한 날도 있었다. 실제로 정말 맛있어서 칭찬일색인 날도 있었다. 작년 결혼기념일에는 남편과 나를 위한 연어 덮밥도 해주었고 종종 놀라게 해 줬다. 오늘은 역대급이었다. 요엘의 말을 빌리면 "레전드"이다.


어제는 마차마카롱을 만드느라 1시간이 걸렸다. 열심히 휘핑 치고, 휴지 시키고, 오븐 돌려가며 제발 뻥카롱이 되지 말라며 두 손을 간절히 모아가며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필링을 발라서 맛을 봤을 땐 가족 모두 혀를 내둘렀다.


"이거 가져가서 팔자!" (큰일이다. 뭐만 잘 되면 팔자고 해서)



저녁을 거하게 먹을 거라고 점심을 건너뛰었는데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어버릴 것 같았다. 시계는 7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4시에 시작한 별이의 요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처음부터 한 번에 메뉴를 3가지를 한다니 무리다 싶었다. 도와줘야 할걸 그랬나 싶었지만, 혼자 하겠다고 했다. 내 할 일 하면서 마냥 기다렸다. 방에 앉아 있는데 식욕을 자극하는 온갖 냄새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얼른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다 됐다고 부를 때까지 기다렸다. 별이 딴에는 짠! 하고 완성된 식탁을 보여주고 싶을 것 같았다. 냄새가 점점 더 짙게 날수록 배에서 요동을 쳤다. 진심 배가 고파 신경이 날카로워질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걸렸다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신경을 낼 판이었던 찰나, 요엘이 불렀다.


"엄마, 아빠 다 됐어요~ 빨리 오세요."


먼저 내려간 남편의 야단법석이 시작됐다.


"빨리 와~ 빨리 와봐. 우와! 우와! 야야 사진기~~"


별소리가 다 났다.


식탁을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것 같은 비주얼의 음식이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진심으로 감동하고 놀라웠다. 사진을 찍고, 멋지다. 잘했다. 레스토랑 저리 가라며 온갖 난리부르스를 쳐대며 포크를 들었다.

감자를 삶아 직접 반죽해 뇨끼를 만드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단다. 감바스 알 아히요를 만들 때 기름에 마늘을 볶고 면을 삶으면서 처음에 망한 줄 알았는데, 잘 돼서 다행이라고 했다. 감바 알 아히요는 정말로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였다. 라따뚜이는 약간 싱거운 것 같지만 건강한 맛이 났다. 마차마카롱은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 통 들어 오늘이 최고였다. 팔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참고로 남아공에서 파는 마카롱은 아주 작고, 비싸며 맛도 별로다.

식사 내내 나는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별은 쑥스럽게 웃었다. 남편, 다엘, 요엘도 나도 모두 대 만족의 식사 시간이었다. 맛이 좀 없었다고 해도 별의 노력이 가상해 칭찬하며 맛있게 먹었을 거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가히 놀랄 맛이었다.


"별아, 다시 꿈을 셰프로 바꿔도 되겠다. 진짜 지금부터 하면 너 최고가 되겠어!"


별은 씩 웃으며 수줍게 브이를 그렸다. 요리하느라 힘들어 상기된 두 볼에서 광이 났다.


낮에 아이들과 성탄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의 발표를 보면서 한 차례 뿌듯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자라서 성극 하고, 율동하는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에 코 끝이 찡했다. 한국에 살지 않아서 느껴볼 수 없는 기분을 한인 교회에서 경험하는 아이들이다. 유초등, 중고등 아이들의 모습에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일은 무엇보다 행복하다. 어찌 내 뱃속에서 생명이 나왔고, 저렇게 쑥쑥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지 새삼 신기하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뛰어든다. 나이가 어려서, 나이가 많아서라며 시기와 자격에 제한을 둘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진하게 느낀다.

도전은 언제나 아름답고, 실패와 실수 또한 값지다. 어렵지만 도전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어 별은 오늘 자신감과 자존감이 동시에 올랐다. 멋지다!


"넌 뭘 해도 다 해낼 거야. 진짜 I'm very proud of you!"



https://www.instagram.com/reel/C1SO9lzMwA0/?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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