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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19. 2023

이상적인 가족, 뷰티풀 패밀리

행복에 행복더하기



아이들 방학이라 오전에 함께 산에 하이킹을 다녀왔다. 원래 목적은 테니스 치는 거였는데, 테니스장 아저씨가 휴가를 갔나보다. 사람도 없고 테니스장은 잠겨있고, 전화번호는 3개나 다 잘못된 번호라니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산에 갔다. 사실, 나는 그 전날 부터 내일은 하이킹이다! 외치고 잤는데, 아이들이 자꾸만 '짧은 코스'를 외쳐서 그럴바엔 그냥 테니스를 치자고 했다. 테니스 치자는 말에 반색했던 삼남매는 풀이 잔뜩 죽었다.


"아이고~ 어쩔 수 없이 산에 가야겠네~~"  


속으로는 반색하며 겉으로는 아쉽다는 듯 말을 뱉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다 눈치챈 후였다. 내 뜻대로 됐다며 발 끝으로 바닥의 흙을 찼다. 지난 주에 지인에게 테니스 공 100개도 빌렸는데 이번 방학에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른 테니스 장을 찾으면 가능할터다.


산에 가는 걸 좋아한다. 무척 오랜만이었다. 산에 가는 건 좋은데 오랜만에 가면 자주 가던 때에 비해 두배는 힘들다. 그래서 가려면 적어도 주 2회는 정기적으로 가줘야 한다. 거의 한달이 넘은 것 같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아 많이 바빴구나) 역시나 오랜만인 티를 팍팍 내며 올라가는 동안 숨이 어찌나 차는지 헉헉거렸다. 산에 가기 싫다던 세 다람쥐는 평소와 다르게 엄청 빠른 속도로 산에 올랐다. 무슨일인지 따라 잡기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 아이들이랑 다니면 아이들 뒷 모습을 물끄러미 보게 된다. 그리곤 만감이 교차한다.

언제 이렇게 컸지. 뒷모습이 저렇게 생겼구나. 잘도 걷네.

다리 모양이 누굴 닮았지? 어깨가 생각보다 넓네. 수영을 해서 그런가,

근데 쟤는 왜 안 넓지. 나를 닮았나.

뒷 꽁무니 따라가면서 폴짝거리며 뛰듯 걷는 막내 요엘의 모습이 마냥 귀엽고,

나만큼 훌쩍 커버린 별이의 뒷모습에서는 나도 보이고 남편도 보인다.

아직 한참 더 커야할 다엘의 뒷모습에는 친오빠도 보이고 내 모습도 보인다. 친오빠를 많이 닮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면 하이킹 코스를 마무리하고 내려오게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추억도 먹으면서 운동하는 시간이다. 힘들지만 상쾌한 하이킹 타임을 마무리하고 차에 올라탔다. 다음 목적지는 브런치 타임! 배가 고프다. 아침부터 공복 하이킹을 했으니, 나는 괜찮은데 둘째가 위가 아프단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밥을 먹여야 하는데 아침부터 운동이라니.

우리의 아지트 같은 장소가 있다. 바로 5천원도 안되는 브런치 레스토랑이다. 다른 메뉴 다 비싼데, 딱 이 메뉴만 저렴하다. 그래서 이 곳에는 아침에 사람들이 붐빈다. 그냥 저렴한 게 아니라 음식의 질이 다르다.



미니 럼프 두 덩이, 스크램블 에그 두 개, 베이컨스트립 세 줄 그리고 빵 한조각을 반으로 잘라 두 조각 여기에 블랙 커피 한잔에 5천원도 안된다. 최근에는 조류 독감으로 계란값이 급증해 (2개월 째 안 내려가는 중) 레스토랑에서도 6란드를 더 받는다. 이것만 더 추가하면 한 접시를 5천원 정도의 가격에 푸짐하게 누릴 수 있다.이 전에는 더 저렴해서 둘이 먹으면 1만원도 안되는셈이었다. 여기에 기본 사이드 샐러드까지 추가하면 영양소로도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저렴해도 아주 가끔 가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오전 11시 30분까지만 먹을 수 있는 아침 메뉴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니 다시 배고파진다. (이글은 이미 한번 다 끝까지 완성해서 적었는데 저장이 안되고 날아가는 바람에 다시 쓰고 있다. 그러니 사진을 두 번 보고 있는 셈이다.)


각각 가성비 끝내주는 식탁에 앉아 나올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했고, 배가 등가죽에 붙을 것 같다며 배를 홀쭉 넣어 보이는 다엘이 덕에 웃음꽃이 피었다.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데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백인 중년 부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Such a beautiful family!
Where are you from?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마치 아는 사람에게 인사하듯 반가워했다. 고급진 차림의 골져스한 모습을 한 중년 여성은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에 한국 남자 아이가 자기 학생 중에 있었다고 했다. 요엘을 보니 그 아이가 생각난다며 추억했다. 중년 여성은 내 어깨에 손도 올리고 다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짧은 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먹으려던 음식을 더 기분좋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행복해요" 라고 말하지 않아도 행복이라는 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내가 행복한 걸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는 느낀다. 그리고 같은 눈으로 바라봐준다.


이렇게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각자가 들은 영어 해석이 맞는지도 확인한한다. 가끔 서로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는데, 이제 아이들이 훨씬 잘 알아듣는다. 오전에 하이킹 하던 중 흑인 부부를 만났는데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를 보더니 "안녕하세요" 라고 했다. 보통 이 나라에서 10명 중 9명은 니하오!를 외치는데, 그 때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지 않고 중국사람이겠거니 하는 태도에 이골이 났다. 그러다 이렇게 한국 사람인 걸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정체성을 갖는다는 게 이런 건가보다. 중년의 백인 부부도 만나 본 경험이 있어서이겠지만 한 눈에 한국 사람일거라는 생각에 말을 걸면서 신사답게 확인한 모습에 기분도 절로 좋았다.


자주가는 한인 마켓에 직원 분이 있다. 그 분은 항상 우리 가족을 보면 아이들이 예쁘다. 인사를 잘한다 칭찬을 해준다. 다른 집 아이들도 인사 잘하고 가족이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볼 때 화목하다. 단란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아마도 그 분은 우리 가족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기분과 같은 것 같다. 그리고 이내 한 마디 하셨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족 같아요. 보기 좋다고요.

 

기분이 좋았다. 차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이상적인'이라는 단어를 묵상했다. 이상적인 건 어떤걸까,  크게 모나지 않고 함께 하는 모습이 좋은 그 상태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상적이라는 건 매일 행복한 시간만 있지 않을 거라는 것도 포함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다. 집에서 지지고 볶고, 서로의 말에 기분이 나빴다가 좋았다가, 서로를 이해했다가도 이해하지 못하겠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 또한 있다. 그렇지만 서로 조금씩 맞춰서 살아가는 톱니 바퀴의 연결이 그 이상을 만들어내고 이상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잠깐이지만 이렇게 우리 가족을 보고, 나를 보고 행복해보인다는 말을 건네면 행복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된다.


나를 알아봐 준다는 것은 행복의 한 형태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관점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일을 배우거나 터득해 할 줄 알게 되는 순간 가지게 되는 그 만족과 성취감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는 관계적인 관점이다. 한 사람의 성장을 보면서 기뻐해주고 그 옆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다. 혼자도 행복할 수 있지만, 함께 하면 배가 된다는 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고,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찐 행복이다. 그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안정함을 느끼는 상태. 그게 최소 단위의 사회인 가정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다.


행복은 무색 무취다. 색깔도 없고, 형태도 없고, 냄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안다. 행복은 맛이 있고, 느낄 수 있고, 각자가 느끼는 따뜻한 색깔이 있다는 것을, 내게 행복은 풋풋한 포근함이다. 익숙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가끔 톡톡 터지는 아이스크림의 슈팅스타같은 달콤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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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수요일 밤  글로다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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