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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Feb 22. 2024

정전에 단수, 이건 반칙이지!

언제나 문제는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이럴 수가. 한 번에 두 개는 반칙 아닌가.

정전이면 정전이고, 단수면 단수여야지!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오다니.. 이러면 반칙인데...

오전에 한 차례 단수가 됐었다. 콤플렉스에 40 가구가 사는데, 누군가가 싱크 하수에 기름을 부었단다. 그래서 콤플렉스 전체 물을 단수시켰다. 누군지 모르지만 남편은 나에게 “당신이 부은거 아니지?”라고 물었고, “우리 최근게 튀김 요리 한 적이 없는데?”라며 나를 정당하게 입증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난 뒤라 다행이었다. 오전에 외부 일을 보고 오후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수도를 여니 수도에서 전쟁이 났는지, 크를 크를 쿠룩쿠룩 이상한 소리를 내며 물이 터져 나왔다. 늘 그렇듯 단수된 후에 막혀있던 물이 터지듯 쏟아지는 증상이다. 그럴걸 알면서도 늘 물이 요란한 소리를 터뜨리며 물이 나올 때면 아주 깜짝깜짝 놀란다. 어쨌든 물이 나오니 일상을 살았다. 오늘은 글쓰기 정규 수업이 있는 날이라 수업을 듣는 사이, 남편과 별이에게 알아서 라면을 끓여먹으래고 나는 수업을 들었다. 그 사이에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세면대 물 트는 소리가 익숙하게 들렸다. 라면을 끓여 먹었으니 그릇을 담가놓으려고 했을 거고, 뭐 사실 별 신경을 안 썼다.


1시간 후, 남편이 다엘과 요엘을 학교에서 데리고 왔다. 강의가 끝나고 배고프다며 먹을 것을 달라는 요엘의 말에 주방으로 갔는데, 물이 매우 쫄쫄 나오고 있었다. 다시 단수가 시작되었나 싶어 불편한 그대로 아이들 도시락 통 설거지를 겨우 마치고 방으로 왔다. 마침 정전이 된 상태라 설거지도 어두컴컴한 곳에서 랜턴에 의지해서 겨우 했다. 물이라도 잘 나왔으면 금방 했을 것을 몇 분이나 더 붙잡고 있었다.  


잠시 후 샤워실에서 별이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그새 단수 풀렸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주방으로 갔는데 물이 나오질 않았다. 2층 집이라서 위층만 나오고 아래층은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 됐나 싶다가도 뭐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어찌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정전은 됐는데, 배고프다는 성화에 버너를 꺼내고 압력 밥솥을 꺼내 밥을 하고 어둠 속에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음식을 했으니 또 설거지거리가 쌓였다. 그저 김치를 볶는 동안 쫄쫄 나오는 물을 받아두는 게 최선이었다. 진짜 쫄쫄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가녀리게 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오는 물에도 설거지가 되기는 되는구나 생각하며 설거지에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이러고 있을 줄이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설거지거리를 쌓아두면 검은 개미떼가 수백 마리는 몰려들게 뻔하다. 그러다가 문득 수전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싱크대의 수도만 문제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전 끝 호수를 세워서 혹시 잠겼나 싶어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수전의 구부러지는 호수 부분에는 물의 수압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나오는 물의 양은 똑같았다. 남편을 불러서 이것 좀 보라고 말하는 중간에 문득 어? 그럼 이 필터가 문제인가? 생각이 들었다.


남아공은 물에 석회가 많은데, 여태 그냥 쓰다가 3개월 전부터 브리타 필터를 수도에 끼워서 사용하고 있다. 설거지하다가 필터를 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 점검할 겸 말이다. 필터를 열어서 빼고 물을 틀자마자 물이 콸콸 쏟아졌다. 예상이 맞았다. 단수된 후 물이 쏟아져 나올 때 필터에 석회와 모래가 나와서 입구를 막고 있었던 거다. 순간 머리가 띵하니, 바보 같기도 하고 내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이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필터를 분리해서 필터망도 닦고 모래도 빼냈다. 설거지하며 튄 음식물 찌꺼기도 좀 닦고 다시 정비해서 끼웠다. 평소와 같이 물이 콸콸 잘 나왔다. 기껏 설거지 다하고 그릇 2개 남았을 때 일이다.


그리곤 남편에게 약간 건방을 떨며 말했다.

"역시, 모든 일은 근본이 해결되어야 하는 거였어!"

그러자 남편이 내게 썩소를 날리며 말했다.

"눼눼, 어련하시겠어요 작가님~"


그렇게 웃으면서 주방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오지 말라고 싱크 상판까지 말끔하게 싹 닦고 방으로 오는 기분이 가뿐했다.


 일상을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일어난다. 글을 쓰기 전에도 여러 일을 겪으면서 깨닫는 게 있었다. 그때는 그저 깨닫고, 말로 옮길 수 있을 때 옮기는 게 전부였다. 교회에 다녀서 내 이야기할 일이 많았고, 살면서 깨달은 것을 나눌일이 종종 있었다. 신앙에 빗대어 주로 이야기했었다. 글을 쓰고 난 후에는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단순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고, 꼭 무언가와 연결을 시켜보려고 애쓰기도 하고, 때론 그냥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때도 있다. 글을 쓸수록 쓸게 더 많아지고, 더불어 생각도 더 많아진다. 이게 글쓰기를 통해 얻은 성장 수확이다. 그래서 오늘은 모든 문제에는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들여다보려고 애쓸수록 문제는 생각보다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덕분에 저녁에 쌓일 뻔한 설거지와 개미떼 걱정은 하지 않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가 있다.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걱정하는 문제, 하고 있는데 아직 끝내지 못해서 불안해하고 있는 문제, 하기는 했는데 뭔가 맘에 썩 들지 않아서 고민인 문제 등 뭐 살면서 만나는 일반적인 문제가 여전히 널려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내가 불편할 수는 있어도 불행하진 않다. 그저 불편한 것이 해소될 수 있도록 움직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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