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인연에 대한 고찰
“나랑 살자.”
그 사람이다. 헤어지 잘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다시 만나자고?
네가 내 뺨을 세게 돌려지며 내가 원하는 대로 헤어져준다며 했던 건 기억 안 나나 보지?
다시 만나자며 애 셋까지 책임지겠단다. 나원참,
자기 와이프랑 아이까지 책임져야 하는 남자가 말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옆엔 12년 동안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내 남편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꿈이었다. 정신 차리고 나서 일어야 나야 하는데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엔 그 사람 얼굴 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웃음이 피식 났다. 20년 전에 만났던 까마득한 사람인데 가끔 뜬금없이 꿈에 나온다. 잘 살고 있겠지?
이따금씩 지나간 인연들의 삶이 궁금하다. 난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연인도 친구도 스승도 제자도,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 중 종종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요즘엔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알아내는 게 무척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부러 그렇게 할 요령은 없지만 가끔 몇몇의 삶은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다.
얼마 전, 결혼 전에 교제하던 사람의 소식을 우연하게 알게 되었다. 완벽한 우연이었다. SNS를 통해 한 다리 건너 또 한 다리 건너 마주한 화면 속의 그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와 가족이 되어 있었다. 나와 가족이 될뻔한 그가 말이다. 헤어질 때 나 아니면 죽는다던 그는 진짜로 10년간 연예도 안 하고 홀로 지냈다. 중간에 애인이 한번 있었는데 몇 개월 만나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기록되어있었다. 이 과정의 이야기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은근 기분이 좋았고, 한편으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무슨 심뽀일까, 나는 12년 전에 결혼해서 남편에게 사랑 듬뿍 받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잘 살고 있으면서 그는 결혼하지 않고 살길 바랬던 걸까? 그건 아니다. 진심으로 그가 좋은 사람 만나길 기도했다. 나보다 예쁘고 좋은 사람 같고 좀 늦었지만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진심으로 축복했다. 그저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 사랑받던 존재라는 사실은 자존감을 세워주는 하나의 파편이기 때문이다.
"내가 번 돈으로 꼭 구두 한 켤레는 사주고 싶었어."
헤어지고 난 후, 취업이 되었고 5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 늦은 밤 집 앞에 찾아왔었다. 8cm의 검은색 구두에 흰 리본, 내 앞에 내민 박스를 받아 들고 집으로 올라와 박스를 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10년 전 그는 20대 후반의 꿈이 있는 청년이었다. 돈 없는 복학생이었던 그는 여자 친구 구두 한 켤레 사줄 능력이 안됐었다. 그는 꿈을 꾸며 사회적 기업가로 일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현재 꽤 큰 규모의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멋진 사회적 기업가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친구, 연인들은 종종 꿈에 나오는데 10년 전의 그는 꿈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열심히 살아내느라 바빴으리라,
(아!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안 살아서 내 꿈에 나온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내린 결)론이다.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났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고 만난다.
내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사람, 평생 갈 줄 알았는데 끊어진 관계, 별로 안 친했는데 어려울 때 손 내밀어 준 사람, 한 번씩 생각날 때 안부를 물어 주는 사람, 뜬금없이 생각나 안부를 물으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평생 공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가 아닐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순간들도 꽤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이 순간에도 보고 싶고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내가 먼저 연락 안 해도 먼저 연락한 번 하진 않을지 기다려 보기도 한다. 이유도 모른 채 외면당한 관계가 그리워 연락을 했었다. 몇 번 씹히고 나니 언제부턴가가 먼저 연락하는 것도 녹록지 않게 느껴진다. 관계는 내 맘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