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을 추억하다.
“OO아, 너무 멀리 있지 않게, 선생님이랑 가까이 있게 그렇게 하자.”
고등학교 3학년 무렵 교회 중등부 담임 선생님이었던 김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문자였다. 중등부 1학년이 되었을 때 김 선생님을 만났다. 헌신적으로 섬기며 신앙의 본이 되었던 분이었다. 선생님은 소위 말하는 날라리, 그 시대의 일진인 아이들까지 다 불러서 어르고 달래면서 비위를 맞춰주었다. 교회에 나오라고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예배 후 공과 공부까지 끝나면 거의 매주 간식을 사비로 사주셨다. 아이들은 이런 선생님의 친절함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다 알면서도 속아 주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굉장한 부잣집 사장님인 줄 알았다. 어떻게 매주 한두 명도 아닌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피자, 떡볶이, 햄버거 등 꼭 사서 먹여 보냈을까? 그 당시에는 교사가 되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탓에 회식을 시켜주지 않는 반 선생님을 만나면 아이들을 선생님을 졸라 매주 얻어먹으려고 애썼다. 혹은 회식을 잘 시켜주는 선생님 반으로 옮겨 달라고 떼쓰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 내 생각으로는 교회 오기 싫은 아이들의 마음을 그나마 사로잡을 방법이라 선생님들이 돈을 쓴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런 목적도 있었겠지만, 친목 도모에는 함께 앉아 음식을 먹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아이들의 학교를 직접 찾아가 심방 목적으로 개인적으로 만나면 또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꼭 음식을 먹여 보냈다. 중등 1학년을 지나 다른 반이 되어서도 선생님은 한결같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대했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매주 문자와 이메일로 안부 인사와 함께 좋은 성경 말씀을 보냈다. 철없던 당시, 반복되던 안부 문자는 스팸 문자 취급했고 굳이 뭐 그렇게까지 따로 만나야 하나 싶어 귀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집사님을 통해 김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자 혹은 대단한 직업을 가져서 돈 쓰는 데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직업은 동네 철물점 주인이었다. 게다가 장사도 잘 안되어 운영이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동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할 거 없이 일과에서 시간을 떼어 전도하러 나간다고 했다. 그때 들었던 선생님의 직업에 적지 않게 놀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절대 사명 없이는 그렇게 못 할 거 같다며 친구들과 했던 대화가 기억난다. 청소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사랑이 풍성하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정도로 퍼부었던 분이다. 때로는 아빠처럼 때로는 선생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다고 종종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청소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나 보다.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부서가 갈렸고, 선생님과 만날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이따금씩 선생님은 문자와 이메일로 안부를 전했다. 서두에는 항상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 신실한 주의 자녀, 아름다운 영혼’이라는 단어가 빠짐없이 적힌 메일을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까지 종종 이렇게 안부 메일로 내 존재를 세워주는 메일을 받았다.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때론 귀찮고 그러려니 하며 문자며 이메일이며 그냥 덮어뒀다. 고등학교 3년 때 학교에 다녀온 어느 날 집에서 받았던 문자가 마지막 문자가 될 줄은 몰랐다.
“OO아, 너무 멀리 있지 않게, 선생님이랑 가까이 있게 그렇게 하자.”
이날 문자를 보고 뭐라고 문자를 보내야 할지 몰라 몇 자 적다가 지우고 휴대전화를 내려놨었다. 그 뒤로 며칠 후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받았다. 걸려온 친구의 전화 수화기 너머로 울음 섞인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인은 심장마비였고, 주무시다가 숨을 거뒀다는 비보였다. 빈자리는 선생님에 대한 호평으로 메워졌지만, 이별은 아쉬웠다. 아내인 권사님도 성인인 자녀들도 무척 힘들어 보였다. 가족이 내 곁을 떠난다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나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지인 중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선생님을 두고 자다가 돌아갔으니 호상이라는 둥, 아직 젊은데 안됐다는 둥 여러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적어도 선생님은 신실하게 신앙생활 했고, 전도에 힘썼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일찍 데려간 거 아닐까 생각하기로 했다.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부담스러웠던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한결같이 제자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다짐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나도 선생님이 되면 선생님처럼 그렇게 아이들을 섬기겠노라고…….
대학생이 되고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게 되면서 선생님이 자주 떠올랐다. 나는 선생님처럼 할 수 없었다. 내 살길만 해도 바쁘고 지쳐 주일에 교사로 섬기고 주중에 전화 한 통 돌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선생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몇 십 년을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할 수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그 후 메일함을 정리할 일이 있었다. 필요 없는 메일을 지우려고 열었던 메일함에는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편지가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차근차근 둘러보며 오래전에 받았던 편지까지 하나하나 다 열어 봤다. 먹먹함과 아쉬움, 슬픔과 죄송함이 밀려왔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노랫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도 만들었다. 항상 가족이든 지인이든 내 곁에 있을 때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메일은 물론이고 휴대전화의 선생님 전화번호와 메시지도 한동안 지울 수 없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메일이 내 메일함에 그대로 남아있다. 선생님은 곁에 없지만, 선생님이 남겨둔 그 글귀들을 보니 다시 선생님의 음성과 표정이 되살아 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