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지 않되,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12월이다. 밖에는 눈이 아니라 비가 온다.
12월인데 비 오는 여름밤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한 시즌이다. 지난 7년간 늘 이 시기가 되면 뭔가 연말도 아닌 것이 연초가 오는 것도 아닌 것이 요상한 기분이다.
실은 지금 밖에 비 와서 좋다. 일 해야 하는데, 일 안 하고 글 쓰다가 음악 들으며 책 읽다가 그냥 디비져 자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일 제쳐놓고 여기부터 찾아왔다.
지난 주말부터 밤마다 무섭게 비가 내린다. 마치 1년 치 비가 마구 퍼붓는 것 같다. 밤새 창문의 진동을 어마하게 느끼도록 울려댄 천둥 덕에 창문이 깨질까 겁나면서도 밖을 내다보지도 않은 채 이불만 계속 끌어당겼다. 며칠 전에는 맑은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더니 어제는 맑고 밝은, 심지어 빛까지 내리쬐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 덕에 널어놓은 빨래가 젖어 다시 말려야 했다. 날씨가 이상할 때마다 전 세계 이상기온에 걱정만 늘어진다. 그러나 저러나 지금은 한국 뉴스를 온종일 듣는 남편 덕에 지금 이상 기온이 문제랴 싶다. 남아공의 크리스마스는 여름이지만, 한국의 겨울에는 봄이 오길 기다려 본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매년 하는 일인데, 다른 집들은 12월 아니, 11월부터도 준비하며 집에 장식을 해 놓더구만 나는 왜 그렇게 이게 미리미리 안되는지 모르겠다. 매년 의도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정신 차리고 보면 크리스마스가 2주 정도 다가왔다. 이번엔 1주 앞으로 성큼이다.
"우리 집은 트리 장식 안 해요?"라며 12월 초부터 나를 들들 볶던 별이는 반 포기 상태였는데, 오늘 오전 트리 장식하자고 말하는 내 말에 벌떡 일어나 주섬 주섬 장식들을 풀어헤쳤다. 1년간 묵었던 트리를 봉투에서 꺼내 먼지를 털면서 "왜 우리 집에는 큰 트리는 없어요?"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남아공 올 때 가지고 왔던 내 허리춤도 안 되는 작은 트리로 7년을 지냈던 탓이다. 별이는 자라는데 아무리 가짜 모형 나무라지만, 나무는 하나도 자라지 않았으니 이상하리만도 하다. 나무 하나 사주려고 마트에 가보니, 사이즈가 조금 더 큰 트리만 10만 원 육박이다. 매년 한 번씩이라도 오래오래 쓸 생각이니 그 정도 투자 못할까 싶지만. 내년 우리의 거처가 어찌 될지 모르는 판국이기에 올해는 참기로 했다.
나무도 작은 걸로 만족하기로 일단 있는 것부터 걸어두고 몇 가지만 사기로 했다. 막상 마트에 가니 이것도 비싸고 저것도 비싸다. 다 제 값어치 하겠다만 또 가격을 보니 주춤한다. 굳이 사야 할까 싶은 생각에 장식품 앞에 서서 작은 토론을 열었다.
"이거 할까?"
"아뇨. 그냥 사지 말아요."
"이건?"
"음. 그것도 또...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이것만 사자."
오히려 나보다 별이가 더 나를 제지하면서 그거면 충분하단다. 결국 사려고 마음먹고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손에 들려온 건 빨강, 초록, 금색 그리고 나무 재질로 된 트리 줄이 전부다.
그래도 모처럼 나갔는데 못 내 아쉬워 크리스피 크림 도넛만 한 박스 사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돌아와 장식을 마저 붙이면서 제법 우리 집에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음에 마음이 들뜬다. 크리스천인 우리에겐 성탄절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에 이런 장식이 뭐 어떤 의미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이 시즌엔 장식도 좀 해주고 주변 사람들과도 인사도 나누고 금방 지나갈 날이지만, 24일, 25일을 기다리는 것도 시즌을 맞이하는 자세가 아닐까.
별이의 작품 세 개의 색 트리 줄을 꼬아서 하나로 만들어 어디에 붙일까 한참 고민하다가. 거실 통로에 붙였다. 아치형의 붉은 벽돌 덕에, 여름인데도 따스한 느낌이 난다.
본디 크리스마스는 겨울이어야 제맛이라는 나의 지극히 보편적인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그저 이번 크리스마스도 여름의 한복판에 있을게다.
부디 태양과 푹 찌는 기온 탓에 뜨겁고 더운 크리스마스가 아닌, 따뜻한 온기 같은 시간이 되길 고대해 본다.
붉은 벽돌과 반짝이는 색, 작지만 이 시기에 없으면 안 되는 전구의 불빛이 만나 이룬 하모니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