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남편의 레몬 부심
평소 건강 염려증 있는 남편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암부터 떠올린다. 남아공에 7년 살면서 면역이 많이 약해졌다. 비염이 심해져 천식이 되었고, 비염이 없던 막내도 비염이 심해졌다. 나는 피부염이 생겨서 1년 한 번은 꼭 앓이를 하고, 첫째 둘째 아이도 비염으로 때마다 고생한다. 요 며칠은 누구한테 옮았는지, 나도 감기기운이 코와 목으로 싸하게 왔다.
지난주 중남부 아프리카 선교 대회 차 더반에 갔었다. 의료 선교로 선교사들을 섬기러 온 예수 병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초음파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 후 남편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돌아와 말없이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만 스크롤하고 있었다.
답즙에 그냥 돌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수술'이라는 단어가 귀에 때려 박혔다. 생각보다 크기가 크니, 한국 가서 복강경으로 수술하길 권유받았다. 남아공에서는 하기가 매우 꺼려지니 남편은 절대 여기서는 하지 않을 거다. 여태껏 아무런 증상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런 진단을 받으니 전조 증상 없이 큰 병 찾아오는 것도 진짜 가능하구나 싶었다.
남아공살이 2년 차쯤 되었을까, 당시 남편은 위경련으로 땅을 떼굴떼굴 구르며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던 경험이 몇 차례 있었다. 그저 위경련이나 위궤양이려니 하며 더 심해지지 않게 예방해야겠다 생각했다.
자연 식물 추출 천연 치료제 메스틱검, 감자 전분, 양배추, 알로에 꿀 등 위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었다. 1년 동안 서 너 차례 심하게 앓았다. 그 사이 알로애 꿀을 공복애 먹으면 위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1년 정도 꾸준히 먹었다. 그 다음 해에 한국에 나가서 건강 검진을 받았다. 위 내시경에서 "깨끗"하다는 소견을 받았고, 그동안 겪었던 위경련 증상이 엄살로 느껴질 정도였다. 어찌 이렇게 깨끗할 수 있단 말인가, 알로에 꿀 덕인가 깊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담석증"이라는 소견을 받고 보니 이게 어쩌면 그때부터 이어져 왔던 증상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등이 아팠고, 위 아랫부분이 아팠고, 체한 기분도 있었으며 때론 옆구리도 아팠다는 말이 퍼즐같이 맞춰졌다. 이야기를 듣고 선교 대회에 모인 선교사 몇 분에게 물어보니, 생각보다 주변에 쓸개 없는 사람이 많았다.
농담같이 허허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막상 남편은 자기 일이 되고, 나는 남편 일이 되니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 당장 한국에 가려니 12월 비행기 값은 평소 1.5배인 200만 원에 육박하고, 한국에 간다고 해도 바로 진료 날짜 잡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남편은 그래도 원래 몸에 있던 쓸개, 떼어 내는 것보다 몸에 달고 있는 게 나으니 수술하지 않고 치료될 수 있는 방법을 원하고 있다. 유튜브, 구글링 열심히 한 결과 "레몬"이 담석을 녹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당장 그 길로 마트에 가서 레몬을 샀다.
레몬 한 개 즙을 짜서 아침 식사 30분 전 공복에 희석하지 않은 채로 먹는다. 남편이 레몬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 음식은 입에도 안 대는 사람이라 슬라이스 레몬에 혀를 대보라고 하면 기겁했다. 과일도 조금 신맛 나는 키위는 고개를 절레거리던 남편이다. 그런데 오늘 내게 남편은 황당한 말을 했다.
그리고 레몬은 공복에 먹으면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다는 둥, 속이 편해졌다는 둥, 식전 공복에 한 알 즙 짜서 먹고, 낮에는 물과 희석해서 수시로 먹으니 좋다나, 레몬의 이점에 대해서 술술 풀어놓았다. 고작 일주일 지났는데 신 맛 혐오가에서 예찬가로 변했다.
며칠 전, 첫 째 별이가 곧 크리스마스이니 가족끼리 모여서 위시 리스트를 적자고 했다. 별이가 준비한 종이를 펼쳐놓고 각 항목에 맞게 적으라고 했다. 그 목록에는 좋아하는 상점 이름, 좋아하는 디저트, 받고 싶은 선물 등이 있었다. 내 걸 다 적고 나서 남편이 적은 걸 보는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 좋아하는 음식 : 레몬
- 받고 싶은 선물 : 레몬
신 맛 혐오가가 적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레몬이라니, 내 두 눈을 한 번 비비고도 재차 확인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입맛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사람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레몬뿐 아니라 음식도 기름진 음식이 아닌 건강한 음식, 신선하고 생생한 야채와 과일 위주로 먹고 있다.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를 직접 삶아 먹고, 토마토를 익혀서 믹서에 갈고, 오트밀로 주스를 만들어 먹는다. 대충 때우던 식습관, 좋아하던 기름진 고기도 일주일째 멀리하고 있다. 꼭 만들면 내게도 한 입 권하는데, 마치 신혼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신혼 때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음식도 싱겁게, 몸에 좋다는 재료만 골랐던 나였다. 그 덕에 잠시나마 남편은 어린이 입맛에서 탈피했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싱거운 음식 입에 안 맞아 애써 먹었단다.
남편의 변모가 놀랍디만 한 건 아니다. 정말 레몬이 남편의 담석을 녹여줄지 기대 중이다. 어쩌면 진짜로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당장 갈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대로 좋은 습관을 만들겠다는 게 남편 의지다. 옆에서 나와 아이들도 덩달아 요즘 음식에 대한 재해석을 하며 식습관 바르게 만들기를 하나씩 실천 중이다.
지금껏 많은 상황을 겪으며 상황과 환경에 맞게 살고, 두렵고 걱정되는 일들을 예방하고 대비하며 살아왔다. 이번 일로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입증되었다. 놀랍게도 남편의 입맛 변화에 감탄하며 건강도 변화하는 결과를 목도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이참에 레몬 박사가 좀 돼 보면 어떻겠냐고 부추기는 중이다. 담석증을 수술과 자연 치유 사이에 갈등하는 사람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