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라이프 (Rebuilding life)
무기력했다. 성취감은 바닥을 찍었다. 2025년은 내게 그런 한해였다.
올해를 시작하기 전 20024년 12월 나는 2025년을 위한 one word, 내 삶의 중심 단어로 "balance"로 정했었다. 그러나 올해 내 삶은 완전 UNbalance 했고, 중심도 없이 성취감은 바닥을 내리쳤다.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못한 채 그저 삶의 수레바퀴에 끼여서 겨우 굴러왔다. 정신 차려보니 12월이다. 그저 매일의 삶에 새롭게 적응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남아공을 떠나온 6월부터, 독일에 있던 열흘, 한국에서의 3개월 그리고 다바오에서의 2개월. 누구는 새로운 나라 다니며 여행하고 좋았겠다 말하지만, 안정감 하나 없는 떠도는 삶을 사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워도 어딘가 배긴 것 같은 느낌으로 거의 6개월을 지나왔다. 아무리 힘들고 마음이 답답하다고 이야기해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 네 선택이니 감수하라고 하는 것 같은 말로만 들렸다. 굳이 왜 그런 길을 선택했냐며 탓하는 말 같았다.
그렇다고 나 조차도 내 인생인데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알턱이 없었다. 계속 바닥난 우물에서 겨우 말라버린 물을 바가지로 닥닥 긁고 있는 기분이었다. 1년 중 절반을 바람에 떠밀리듯 지나왔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한동안 무기력했다.
2025년 한 해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는데 왜 크게 기억나는 일이 없는 걸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다 때려치우고 숨고 싶은 생각이 나를 눌렀다.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는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목구멍이 답답했다. 책임이 나에게 자꾸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정죄감 안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끈기, 열정, 노력 이제는 나와는 상관없는 말 같이 느껴졌다. <악착같이 꾸준하게> 책도 썼는데 나는 거짓말하고 거짓 삶을 살고 있는 작가로 창피했다. 책 쓰기 코치면서 매일 글쓰기를 거부했다. 열었다 닫았다 몇 자 쓰다 저장하고 노트북 덮기를 반복했다. 변화를 위한 하나의 모션이기도 했고, 이전의 삶을 이어가고 싶은 덜 꺼진 불씨 같기도 했다.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한 번씩 고개를 내밀었다. 자기 계발을 처음 시작하던 때 새벽 기상을 했다. 3일만 일어나 보자고, 5일만 성공하면 100일 챌린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5일 새벽기상에 성공했고, 100일을 거뜬히 넘겨 6개월을 지속했다. 영어 공부, 글쓰기, 그림 그리기, 일기 쓰기 등 각각 100일 챌린지에 기록하며 성취감을 맛봤던 때를 떠올렸다.
주변사람들, SNS에 올라오는 글에 달리기 붐이 일었다. 붐이 일기 전부터 달리기를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도해 봤다. 혼자 의지가 약해 남편과 같이 달려보기도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컨디션 핑계도 대고 환경 핑계도 댔다. 꾸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내가 무척 나태해졌다고 자책했다.
다바오에 온 뒤 이사만 하고 뛸 수 있는 환경이 되면 하겠다고 생각했다. 꼭 한 번 해보겠다고 말이다. 많은 사람이 무기력할 때 시작했던 것이 달리기였고, 무엇을 할지 모를 때 제일 먼저 했던 것이 달리기였다는 말을 들었다. 하기는 해야겠는데 시기만 보고 있었다. 이사하고 바로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컨디션과 체력이 받쳐주질 않았다. 매일 밤 10시만 되면 침대에 기절하듯 누웠고, 아침에는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기 급급했다. 오전 중에 코칭을 끝내야 아이들 도시락 싸고, 아침 차려주고, 청소하고 바깥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착 초반이라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집안 수리 및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니 여유가 없었다.
가장 나를 옥죄었던 건 코칭 스케줄이었다. 시간 변경을 위해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 일찍 끝내야 그다음 스케줄이 편하기도 했기에 시간을 변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려면 아침 8시는 늦다. 새벽 5시 반이면 해가 뜨는 다바오에선 아침 8시면 해가 점점 뜨거워지는 탓이다.
5시 반, 6시에 뛰는 게 가장 좋다. 달리기 시간을 고민하던 끝에 그냥 해보기로 했다. 코칭 파일을 추가로 녹음하고 전송해야 하기에 30분이든 1시간이든 미뤄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또, 좀 미뤄지면 어떤가, 양해 구하면 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6시 이전까지만 보내면 되는데, 오전 9시, 10가 무슨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욕심과 고집이구나, 나는 무엇을 위해 타협을 안 하려고 했던 건가 싶어 일단 시간을 조금 미루고 달리기부터 하자 싶었다.
어느 날 아침, 5시 50분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모자를 쓰고, 손목에 시계를 차고 운동화를 신고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새소리가 들리고, 평온한 길에 해가 빛을 막 내고 있었다. 바닥을 쓸고 있는 빗질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가 한 두대 지나갔다. 나는 런데이 어플을 켜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반짝 내리쬐는 햇볕을 손으로 가리면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머릿속엔 얼른 뛰고 들어와서 도시락을 싸야겠단 생각이었지만, 아침 거리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동네 한 바퀴를 크게 걷고 뛰니 25분이 훌쩍 지났다. 집 앞에 오자 종료 알림이 울렸다. 1.7km, 첫날은 2km를 못 달렸지만 뭔가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 들었다. 도시락 싸고, 아침 준비 해서 아이들 주고 학교에 보내고 난 뒤 바로 내 방에 와 코칭 파일을 마저 녹음해서 전송했다.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많이 미뤄지지 않았고 마음도 편했다.
무조건 3일만 해보자 시작했고, 5일은 무조건 달성하자고 생각했다. 계획대로 5일 차까지 무난하게 달성했다. 내 안에 묘한 평안과 성취감이 올라왔다. 런데이 어플 달력에 매일 찍힌 스탬프를 몇 번이고 열어봤다. 내가 달린 코스를 찍어낸 화면을 들여다봤다. 빠르지 않은 슬로 조깅에 거리는 1km에서 3km까지 늘어났다. 일주일도 아닌 5일이 주는 성취감은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에어컨이 없는 거실, 주방에서 요리하고 나면 더워서 옷을 펄럭거려야 하는데, 달리기 후 도시락과 아침을 준비하는 내내 열린 땀구멍에서 흐르는 땀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런데이에서 보여준 8주 플랜을 다 채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짐한 지 바로 다음날 6일 차에 나는 아침에 일어났음에도 나가지 못했다. 다시, 해야 할 일에 눌려서 오늘은 쉴 생각으로 오전에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야 끝나는 일을 했다.
끽해야 5일밖에 안되고 끊겼지만, 내 안에 실패했다는 마음보다는 내일 이어가면 되겠단 맘이었다. 스탬프 하루 건너뛰었지만, 괜찮았다. 실패도 포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기력할 땐 몸을 움직이세요.
우울할 땐 바쁘게 만드세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달리기를 하세요.
자기 계발러들이 많이 하는 말이고, 자기 계발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1시간 하이킹도 해보고, 수영도 하고, 필라테스나 헬스장에서 땀 흘리며 여러 가지 운동도 해봤던 경험 덕에 몸을 쓰면 에너지가 돈 다는 것을 안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경험도 여러 번 했다. 그걸 알면도 전에는 무기력한데 어떻게 움직이라는 건지, 우울한데 왜 바쁘게 움직이라고 하는 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왜 달리기를 하라는 건지, 그냥 그 말이 '말'처럼만 들렸다. 이제 좀 다시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오늘 4시간에 걸쳐 요약독서법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 책에서 나온 "계획을 수정해 목표를 향해 재 출발하라!" 문장과 연결해서 액션 플랜으로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30분 슬로 조깅 한다.” 를 목표로 다시 잡았다. 재출발을 위한 나의 액션 플랜이다.
변화를 위한 시도.
무엇을 더 할지, 무엇을 덜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것부터 꾸준히 좀 해봐야겠단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