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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Dec 20. 2021

내 생일도 아니면서,

어색한 귀걸이와 오버 드레스  




“Can you come to my little girl’s birthday party? and whole family must come.”


오랜만의 초대다. 별이 친구도 아니고 친구 Sienna의 동생 Bailey 생일에 온 가족이 초대를 받았다.

남아프리카에는 흑인 80%, 백인 20%가 사는 나라, 인디언, 아시안까지 다민족이 섞여 산다. 우리 주변에는 흑인보다 인도 사람이 유난히 많다. 별이와 친한 친구들만 해도 절반이 인디언이다. 코로나로 근 2년간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자유롭지 못했다. 생일파티도 못하고 플레이 데이트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예전보다는 경계가 많이 풀어져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1년 전 Sienna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집으로 우리 가족만 초대했는데 다녀온 다음날 Sienna의 아빠는 covid-19 확진을 받았었다. 이 사실은 약 두 달뒤 알게 되었었는데 아무 증상이 없던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모처럼의 만남에 마음이 바빠졌다. 이번엔 집이 아닌 외부 레스토랑으로 초대를 받았고 격식은 좀 차려야겠다 생각했다. 초대 문자에 고민하지 않고 당연히 가겠노라 대답했던 이유는 만나서 조언을 구하고 부탁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현지인들만 아는 집 정보이고, 다른 하나는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지난주에 비자 거절 레터를 받은 통에 여간 머리가 복잡한 일이 아니다. 여하튼 아침부터 부랴부랴 꽃단장을 시작했다. 한여름인데도 요즘 부쩍 비가 많이 와 추워진 날씨 탓에 옷차림이 애매했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폴짝거리는 막둥이 요엘이에게 남방과 긴바지로 갈아입으라고 말하자 눈치 보던 다엘이는 덩달아 옷을 갈아입었다. 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별이에겐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쳐 입으라고 했다. 나도 묵혀둔 긴팔 시폰 원피스를 꺼내고 모처럼 마스카라도 하고 아이섀도도 발랐다.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도 단정하게 드라이해서 앞머리를 뒤로 올려 빗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베이지 톤으로 남방과 면바지를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몇 년 만에 하는 귀걸이인지, 구멍이 막혔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으로 귀걸이를 귓불 구멍에 찔러 넣었다. 10년 전에 구입했던 크리스털의 귀걸이가 귀 끝에서 반짝거렸다. 귀걸이가 1.5배는 더 예쁘게 보이게 해 준다는 가설들을 많이 봤는데, 이날 거울 앞에 선 나는 1.5배 더 예뻐 보였다. 집을 나서면서 핸드백을 메고, 웨지 굽의 검정 구두를 신었다. 오랜만에 듣는 또각거리는 소리에 날이 청명하지 않아 애석했다. 


“와, 엄마 옛날 같아. 예쁘다 우리 엄마, 다시 젊어진 것 같아.”

“네가 엄마 옛날은 언제 봤냐? 그리고 우리 엄마 아직 젊거든!”

“내가 봤어. 엄마 옛날 사진에서~”


차에 타려는데 차 문을 열어 둔 채로 다엘이 와 은별이가 썰전을 벌였다. 그때 마침 옆집 이웃과 마주쳤다. 우리 옆집 이웃은 한국인이다.


“대체 어딜 가는데 이렇게 차려입었어요?”

“아… 별이 친구 가족 생일 파티요. 집이 아니고 레스토랑으로 오라는데 격식을 좀 차려할 것 같아서요.”

“하하 꼭 자기 생일 같네~ 주인공인 줄 알겠어요.”

 


멋쩍게 웃으며 인사하고 차를 타고 나오면서 조수석 머리 위에 있는 거울을 열어 나를 한번 들여다보고 조용히 귀걸이를 빼서 만지작거렸다. 그 말을 듣자 그렇게 특별하거나 과하게 차려입은 것도 아닌데 내가 좀  오버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그른가? 에잇 빼야지.”

화려한 귀걸이만 빼도 덜 튀어 보인다는 생각에 핸드백 안 작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처녀 때는 의상에 따라 귀걸이를 바꿔 걸었고, 장소에 따라 바꾸었다. 목걸이도 팔찌도 때에 따라 번갈아 꼈다. 키가 작아 웬만한 모임에는 가능한 힐을 신었고, 계절에 따라 원피스의 두께도 디자인도 달라졌다. 패셔니스트는 아니었지만 나름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이 있었고 주로 러블리한 스타일과 댄디한 옷을 좋아했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안고 엎고, 유모차를 밀고 뛸 일들이 생겼고, 아이는 하나둘, 셋이나 되면서 짧은 치마, 하이힐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좋아서 신던 신발과 입던 옷들은 거추장스러워졌고, 편하고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과  발 아프지 않게 오래 신을 수 있는 단화와 운동화가 좋아졌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냉장고 바지에 티셔츠를 하나 걸친 평소 차림으로 그렇게 앉았다. 그렇게 살아온 지 12년이다. 12년 동안 아이가 있다고 해서 한 번도 원피스, 구두를 안신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아공에 온 4년 전부터는 단정하게 차려입거나 예쁘게 차려입고 갈 곳도 갈 일도 거의 없었다. 액세서리는 귀찮고 거추장스러워질 뿐이었다. 오랜만에 귀에 건 귀걸이는 그냥 보면 하나도 과하지 않지만, 이목구비가 작지 않은 내 얼굴은 조금만 화려한 액세서리를 해도 무척 화려해 보였다. 이웃의 한 마디에 귀걸이까지 뺄 일인가 싶었지만 나 스스로도 좀 오버인 듯한 생각이 든 탓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인공이 올 때까지 추위에서 벌벌 떨었다. 

"아씨, 그냥 다른 옷 입고 올걸, 겁나 춥네. 무슨 여름이 이렇게 추워!" 

비가 막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서 약속시간이 넘었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점핑 캐슬을 보면서 치마를 입으라고 했던 엄마를 야속한 듯 별이는 한숨을 쉬었다. 처음 들어본 약속 장소인 Graceland라는 곳을 꼼꼼히 사전 조사해보지고 않고 간 탓이었다. 넓은 초원과 뛰어다니는 말들, 모래사장, 큰 놀이터, 점핑 캐슬, 그네와 시소가 눈에 들어왔다. 


"아, 미리 홈페이지에서 좀 꼼꼼히 보고 올걸, 당신 거기 홈페이지 들어갈 때 잘 안 봤어? 이런 거 있는지 확인 좀 하지."

나는 찾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괜히 남편을 탓했다. 그리고 다음번에 올 때는 꼭 바지를 입고 좋은 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Sienna 가족과 친척들까지 네 가정이 함께 모였고, 이 사실도 미리 몰랐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모임은 즐거웠다. 아이들은 옷차림에 상관없이 신발도 양말도 벗고 신나게 뛰 놀았고, 치마는 놀이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나 역시 4시간 정도 말하고 웃고 떠들고 나니 완벽하지 않았음에도 뿌듯했다. 최근 가장 오래 영어로 떠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이런 기회들을 많이 갖지 못하게 되어 아쉬울 뿐이다. 


"엄마, 여기 이름이 뭐예요? 나 내 생일날 여기 또 오고 싶어요." 


막내 요엘이 내년 생일 기념으로는 가족 모두 꼭 바지를 입고 갈 거다. 

좋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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