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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26. 2022

엄마의 꿈이 아이들에겐 반짝이지 않는다.

엄마는 반성 모드 



"엄마, 엄마는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실실 웃는 거야?" 


울 7살 막내 요엘이가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한테 대뜸 한 말이다. 밥 먹는 도중 어이없는 남편의 행동에 실소를 하던 참이었다. 옆에 있는 다엘이가 한 술 더 떴다. 

"엄마는 요즘 잘 안 웃잖아. 아빠가 이상한 장난칠 때만 웃고." 

"엥? 엄마가 안 웃었다고?"

"네. 우리 보고는 잘 안 웃었잖아요."

요엘이가 하는 말 꼬리를 이어 다엘이가 딱 잘라 말했다. 

순간 얼음이 됐고 억울했다. 그 순간 막내 요일에는 엄마가 실실 쪼개면서 웃는 모습이 한번 더 보고 싶었는지 몸 개그를 시연한다. 엉덩이만 손으로 치면 웃긴 줄 아나. 

"내가 안 웃었다고? 오다엘 너 똑바로 얘기해. 엄마가 너네 보고 요즘에 안 웃었다고? 잘 생각해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억울하단 듯 말하는 나를 보면서 다엘이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웃었네. 웃었어!" 


이 대화를 여기에 다시 옮겨 적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온다.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엘 형제, 두 아들 녀석 덕에 자주 웃는다. 사실 이 대목에서 내가 요즘 아이들을 보고 웃었는지 안 웃었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몇 번을 웃었든, 아이들 눈에 요즘 내가 아이들을 보고 많이 웃지 않았다고 느낀다는 사실이 다소 씁쓸했다. 어제도 함께 앉아서 분명히 저녁을 먹었고 오늘 낮에도 함께 앉아서 점심을 먹었지만, 오늘 저녁식사 자리가 매우 오랜만인 듯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저녁시간의 '여유'가 그동안 없었나 보다. 


영어 소리 코치가 되기 위해 활동하면서 하루에 2-3시간은 녹음기를 붙잡고 산다. 

내가 보낸 영어 소리를 듣고 피드백을 다시 보낸 대표님과 코치님의 소리를 듣는다. 나도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피드백을 보낸다. 그럼 녹음기를 귀에 바짝 대고 주변 소음으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은 제스처를 취한다. 일단 내가 전화통화가 아닌데도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뭔가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소곤거리며 말을 한다. 꼭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행여나 큰 소음이 나서 나를 방해하는 순간에는 하던 말을 멈추고 다시 녹음을 한다. 내 꿈과 바람을 이루는 동안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시간을 쪼개서 사용하기 위해서 밥상에 밥을 차려 놓고 나는 얼른 먼저 먹는다. 사실 밥을 차리면서 대충 먹는다고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때론 이전에 먹는 끼니가 소화가 되질 않아 저녁은 거르는 날이 많다. 

(그래도 왜 살은 안 빠지는 걸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줌 미팅을 하고 노트북을 켜고 영어를 듣고 녹음을 하는 모든 시간이 아이들에겐 눈치를 봐야 하는 시간이 되어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 밀려왔다. 


"엄마! 이거 이거 읽어 주세요." 

요엘이가 동화책, 그것도 글밥이 많은 긴 동화책을 가지고 왔다. 분명 열 번은 읽어 준 책인데 또 그 책을 들고 왔다. 

"응. 알았어. 내려갈게. 가서 기다리고 있어. " 

대답만 하고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 3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올라와 재촉을 한다. 

"엄마, 이 문제 잘 모르겠어요. 이거...... 아빠! " 

물어보러 왔다가 집중하고 있는 엄마를 보고 아빠에게로 간다. 

"엄마,  나 금요일에 OO가 필요한데..."

"그거 지금 필요한 거 아니잖아 아직 3일이나 남았는데 나중에 다시 얘기해." 

쌀쌀맞은 엄마의 반응에 은별이는 그냥 방으로 간다. 


위의 대화만 보면 엄마는 아이들에게 잘 못하고, 아이들은 상처만 가득 안고 있는 불화한 가정으로 보이질도 모르겠다. 지극히 부분적인 모습을 글로 담았지만, 우리 가정은 화목하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스킨십도 거침없다.  그런데 서로의 필요를 채우려고 노력... 에서 걸린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꼭 해줘야 하는 일 아니면 알아서 하라고 뒀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고, 해야 할 일들에 쫓겨서 하루가 정신없이 바쁘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바빠진 일상에서 쉬는 시간은 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게 진심이다. 그런 내 이기적인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됐나 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바로바로는 못해줘도 적절한 때에 채워주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은 몰라요 노래의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의 가사가 가슴을 콕 찌른다. 아이들에게 채워줘야 할 필요에 구멍이 나있었나 보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무척 좋아한다. 다른 가족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외국에 살면서 가족적인 분위기,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은 한 공간에 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한 번씩 아이들 통해 보는 세상의 눈은 번쩍 하고 뜨인다. 


좀 자주 웃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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