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에 미친 엄마
"네 학교입니다. 별이가 팔이 아프다고 해서요. 와서 데려가세요."
영어로 전화가 왔지만 한국어로 적었다.
오전에 운동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휴대폰에 뜬 번호는 아이들 학교 번호였다. 언제나 그렇듯 학교에서 수업 도중 오는 전화는 달갑지가 않다. 분명 달갑지 않은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던 운동을 접고 학교로 향했다.
이틀 전 정전이 됐던 시각, 오후 5시경. 집에는 전기가 나갔고, 오히려 밖이 더 밝았다. 밖에서 동네 아이가 우리 아이들을 불렀고, 때는 이때다 싶어 아이들은 콤플렉스 공동 정원으로 나갔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져 점점 어둑해지고 있었다. 창문 너머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러다 웃음소리가 끊겼다. 순간 머릿속에 '나가서 놀다가 다치는 거 아니야. 해도 짧아졌는데...... 들어오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별이가 들어왔다.
"엄마, 나... 여기 부딪혔는데 아니, 안 보여서 뛰다가 여기를 부딪혔는데 아파......"
이런 예감은 왜 이렇게 잘 맞는 걸까?
'부딪혔으면 멍들었겠네 통증은 좀 가겠구먼' 하면서 손목을 잡았는데 악! 소리를 내면서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거 아닌가.
통증에 효과가 있는 젤을 꺼내 발라주고 손부채질해서 말린 후에 압박붕대로 고정을 해줬다. 혹시 실금이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고, 오늘 아침 아이들이 등교한 지 3시간 만에 연락이 왔다.
순간, 방치했나 싶은 마음도 들고 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전에 머리 펌 해달라는 분이 있어서 약속을 잡아놨는데 약속시간 30분을 남기고 아이를 데려왔으니 마음이 급했다. 결국 펌 부탁한 분께 연락을 해서 죄송하다 사정을 말한 후에야 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병원에 가는 길에 깁스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왼팔이고 알아서 이것저것 잘하는 아이라 크게 내가 손이 안 가겠지만, 별이는 얼마나 불편할까를 생각하니 염려가 됐다. 그 다음으로는 병원비가 신경 쓰였다. 보험처리는 기대하기 어려운 이 나라에서는 병원 진료는 기본 10만 원이 넘어간다. 케이스에 따라 다르지만 Emegency의 경우는 더 많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니, 혹여 엑스레이 찍고 의사 만나고 깁스까지 하면 몇 십만 원은 훌쩍일게 분명하다. 아이가 아픈데 돈이 대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생각이 안 날 수 없다.
여하튼 병원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속으로 '앗싸!'를 외쳤다.
'앗싸! 글감이다. 오늘 이야기는 브런치에 적어야지.'
순간 입 밖으로 '허' 소리가 나왔다.
남편은 "왜?"라고 물었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을 돌렸다.
큰일이나도 당황스런일 앞에서도 걱정되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글감이 생겨서 좋다.
누가 들으면 사이코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고 삶과 글을 연결시켜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 어떤 이야기에 어떤 의미를 담을지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대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냥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다작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암튼, 오늘 남아공에서 와서 정형외과는 처음이라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라 지인들 4-5명에게 전화 걸어 경험을 물었다. 정보를 얻었다. 알게 된 지 얼마가 됐든 물어볼 수 있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건 이 외국 땅에서 감사거리 중의 하나다. 나도 도움을 받고 이번에 내 경험으로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주게 될 테니 말이다.
별이를 병원에 데리고 찾아간 첫 번째 병원에서는 하루 종일 예약이 꽉 찼다며 내일 오라고 했다. 결국 몇 군데 더 알아전 후에야 다른 병원으로 찾아갔다. 다행히도 바로 접수가 됐고 의사를 만난 후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다. 기계 예열 및 검사 결과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바로 의사를 만났고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던 것도 감사 중의 하나다.
국립병원, 준사립병원, 사립병원 등 이곳에도 병원은 많다. 전문의는 큰 병원 혹은 사설 병원에 있다. 그러나, 전문의를 만나는 건 어렵다. 검사 이후에 소견을 듣기 위해서 일주일도 더 걸려서 전문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오늘 들은 이야기로는, 팔 부러진 아이가 엑스레이를 찍고 깁스를 해야 하는데 의사를 바로 만날 수가 없어서 임시로 보호대만 하고 일주일 지난 뒤 전문의를 만났다는 케이스가 있었다.
이 어디 한국에서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런 상황 생각하면 오늘의 일처리 속도는 빛의 속도였다. 의사가 백인 할머니 었는데 어찌나 시원시원한지 맘에 쏙 들었다. 검사 결과 실금도 부러진 것도 아닌 근육 이상의 진단 결과가 나왔다.
학교에서 나와 병원에 들어갈 때는 죽을 상이던 별이가 진료를 마치고 나와서 잠시 앉아서 음료 한잔 마시면서 대화를 나눌 때 손이 어찌나 가벼워보이는지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맘이 가벼웠는지 몸도 가벼워진 듯 보였다. 통증이 아직 남아있지만 그것 조차 잊고 대화에 열중하면서 손짓 발짓 다하는 모습을 보니 참.
사람의 몸의 질병은 마음에서 절반은 담당하나 보다. 심리적인 요인에 몸에 주는 영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뜻이다. 나도 남편도 별이도 검사 결과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 않아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서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약간의 엄살인 걸 알면서도 혹여나 부모로서 이 아이의 상처를 방치했다가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됐다. 그래서 더욱 확인하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우리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의 아픔을 억지로 들여다보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될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알아야 속 시원하다.
그래야 근본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와 질병 앞에서 그 사실을 염려하고 고뇌하고 힘들 때 조차도
마음을 달리 먹으면 좀 더 삶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사실은 변하지 않을지언정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주어진 시간의 모든 삶이 좀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별이 손동작처럼.
오늘의 별이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