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를 위하여.
기억에 남아 있는 생일 중 하나는 눈이 퉁퉁 붓게 울며 패밀리 레스토랑에 앚아 친한 친구들이 위로 해주던 장면이다. 그날 나는 퍼머머리를 하고 있었고, 베이지색 가디건을 입고 있었으며, 너무 울어서 개구리 눈이 됐다. 내 기억에 그 날은 아마도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설움이 폭발해서 엉엉 울며 생일을 맞이 했던 것 같다. 정확히 그날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도.
또 다른 기억은 약 8년 전 다엘이가 아래 위로 쏟으며 괴로워 아파 내 품에 안겨 생일 촛불 쳐다보기도 싫었던 날이다. 응급실에 다녀온 후 시간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내 맘에 가족들은 촛불이라도 켜줘야겠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마음은 축하는 개뿔.이었다.
어렸을 때 부터 누군가의 생일을 꼼꼼하게 챙겼다. 그게 내가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유난히 사람들 기념일도 잘 기억하고, 그 날만큼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선물이며 메세지며, 할 수 있는 한 축하했다. 일부러 당일 저녁에 집 앞에까지 찾아가서 서프라이즈 혹은 선물을 건네곤 했다. 그렇게 할 수록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나름 만족했다.
결혼 이후로도 그랬지만, 남아공으로 온 후 생일은 지극히 가족 중심적이 됐다. 아이들 생일, 남편 생일, 가까운 지인의 생일 말고는 챙길 사람이 없다. 덕분에 경조사 비용이 확 줄어서 가계 부담은 줄었지만, 적적함은 늘었다.
내 생일은 이미 두 달 전에 지났다.
2월 17일. 생일은 늘 졸업시즌과 맞물렸다.
방학을 이미 했거나 방학식이거나 오빠 졸업식 혹은 내 졸업식과 겹친 날도 있었다.
생일이면 친구들 한껏 불러 모아 생일 파티도 하고 축하도 받고 친구들의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면서 생일 기분을 내고 싶었다. 방학 혹은 졸업과 맞물린 덕에 생일은 조촐하게 지나간 날이 대부분이었다.
어렸을 때는 생일을 무척 손꼽아 기다렸다. 받고 싶은 선물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장난감이었던 것 같고 나이가 좀 들면서는 옷, 신발, 가방, 지갑 등 가지고 싶은 영역이 점점 달라졌다. 부모님, 친구들, 선생님, 선후배 등 생일이 되면 적지 않게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서프라이즈 선물은 물론이고 필요한 것을 선물해 준다며 미리 지정해놓은 선물을 받기도 했다.
생일을 깜빡 잊은 엄마가 미역국도 못 끓였다며 동동 구르며 밤이 다 되어 갈 무렵 부랴부랴 파티를 해준다고 생일 케이크를 사 왔던 날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땐 많이 서운했었는데 일부러 내 생일인지 알아챌 때까지 한마디도 안한 날도 있었다.생계를 이어가기 바빠 내 생일을 잃어버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린 마음에 서운한 마음은 오기로 바뀐 날도 있었다.
20대 이후로부터는 생일날 기분이 째지게 좋았던 날이 별로 없다.
생일에 내가 아프던가, 가족 중 누군가 아팠다. 시련의 아픔도 있었고 생일 턱을 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결혼 후에는 생일이 되면 아이가 아팠다. 세 아이 중 한 아이가 아파 하루 종일 우울하고 간호하느라 밤을 꼴딱 새운 날도 있었다. 세심하지 못한 남편에게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그깟 생일 뭐 그리 중요하다고 호들갑을 떠나 싶어서 "됐어. 이번 생일은 그냥 지나가도 돼. 촛불도 켜지 말고 케이크도 안 사도 돼."라고 말했지만 진심이 아닌 때도 있었다.꽃 다발 사면 돈 아깝다는 생각, 내 돈이 네 돈인데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생일 선물을 퉁 치운 날도 있었다.물론 식당에서 분위기 낸다며 식사도 했지만 생일이면 이젠 너무 익숙한 스케줄이 되었다.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남편은 신혼 이후로 지금까지 꽃바구니, 꽃 다발을 사 온 적이 없다.큰 선물을 바란 것도 아닌데 내가 그렇게 말했어도 알아서 꽃 한 송이 정도 사 오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에 혼자 토라진 날도 있었다.
그렇게 12년을 살았다.
나이가 먹을수록 생일에는 꽃 한 다발을 꼭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러는데, 부부간에는 원하는 게 있으면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라고 하더라. 나 아는 분이 남편한테 매년 생일에는 꽃을 사달라고 말했대. 그렇게 말하고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라 좀 기분이 그랬다는데 그래도 그렇게 표현하고 생일 때마다 꽃다발을 남편이 사 오는데 기분이 좋고 너무 행복하다는 거야. 나는 엎드려 절받기 싫기는 하지만,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서도 살짝 돌려서 남편에게 전했다.
남편은 얼마든지 원하면 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동안 내가 돈 아까워할까 봐 안 사 왔던 거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런데 이제는 아까워도 받을 거니까 생일이면 꽃을 사줘. "
콕 집어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까불거리듯 단호하게 일렀다.
올해 생일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비자 문제로 40분 거리의 VFS(비자업무대행업체)에 가서 6시간을 기다리기만 하고 일은 처리하지도 못 했다. 결국 하루 종일 둘 다 쫄쫄 굶고 비싸지만 맛없는 김밥 한 줄을 반으로 갈라 나눠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돼서야 케이크에 촛불 하나 붙일 수 있었다. 미안한 마음 한가득이었던 남편은 집 앞 마트에서 화분에 담긴 보라색 난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꽃다발 대신 화초를 말이다.
"이왕이면 꽃다발 사 오지..."
"엄마~ 아빠가 꽃다발은 금방 시든다고, 화분 샀어요."
같이 갔던 별이가 들어오자마자 아빠를 대변했다.
생일에 다른 필요한 선물을 받기도 하고,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한다.
나도 여자인지, 생일엔 다른 선물을 받아도 꽃 다발 하나쯤을 받고 싶다.
"여보, 내년 생일엔 예쁜 생화 한 다발 부탁해."